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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맞은 조인트 어때” … “그 상처가 경제대국 만들어”




“19년 만이네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9일 포스코 한마당 체육관에서 열린 퇴직 임직원들을 위한 문화행사에 참석했다. 400여 명의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던 박 명예회장이 1971년부터 20년 동안 근무한 한윤교씨(75·전 포스코 압연부 안전담당)와 악수하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박태준(84) 포스코 명예회장의 입가가 떨리기 시작했다. 10여 초가 흘렀을까.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사람들이 박수를 치자 던진 박 회장의 첫마디. “미안합니다….”

 19일 오후 6시30분 경북 포항시 남구 지곡동 포스코 한마당체육관. 박 회장은 1992년 10월 자신이 포스코에서 퇴직하기 전까지 근무했던 현장근로자 400여 명과 재회했다. 한국 철강산업의 역사를 함께 만든 무쇠 영웅들이 다시 한자리에 뭉친 것이다.

 단상에 오른 ‘철의 사나이’도 남다른 감회 앞에는 어쩔 수 없었는지 그의 입가는 떨렸고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미안하다”는 말에 이어 나온 박 회장의 목소리는 근로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여러분 뵈니까 눈물부터 나옵니다.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박 회장은 환영사를 하는 내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우리가 영일만 모래벌판에서 청춘을 보내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지만 우리는 후세들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 희생하는 세대였다”고 회상했다. 또 “대한민국이 눈부신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동력은 여러분의 피땀이었다”고 덧붙였다.

 호랑이 눈썹을 휘날리며 현장을 휘젓는 박 회장은 근로자들에게 호랑이보다 무서운 존재였다. 철의 형태를 만드는 압연부에서 일한 한윤교(75)씨는 “회장님이 팔뚝 길이의 지휘봉을 들고 현장에 뜨는 날이면 모두가 덜덜 떨었다. 나오면 뭘 지적하는데 그게 너무 정확해 꼼짝할 수 없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박 회장의 일명 ‘조인트 까기’도 회자됐다. 총무과에 근무했던 강원수(67)씨는 “회장님이 현장순찰 나왔다가 현장이 지저분한 걸 보고 담당자 ‘화이바’를 지휘봉으로 때렸다. 그때 지휘봉이 부러지는 걸 보고 기절할 뻔했다”며 웃었다.

 포항제철소 제3고로를 지을 때 공기가 두 달가량 늦춰지자, 박 회장은 이를 앞당기라는 불가능한 미션을 내리기도 했다. 이를 위해 전국의 레미콘차가 모두 포항에 집결했다. 김창섭(75·압연부 근무)씨는 “24시간 공사를 하는 와중에 콘크리트 기사들이 조는 걸 막기 위해 직원들이 그 옆에 타 감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이에 박 회장은 “콘크리트 타설이 공기를 단축하는 데 큰 영향을 줘 내린 조치”라고 설명했다. 졸음 금지 명령은 직원들에게도 떨어졌다.

김씨는 “야간근무 하면서 졸다가 걸리면 옷을 벗어야 했다. 당시 회장께서 중요한 국가시설을 졸면서 지키다간 큰 손해가 난다며 단속했다”고 기억했다. 박 회장은 또 “역사적인 사업을 하는 데 뛰어든 직원들을 교육시키려면, 교육자가 무서워야지. 누구라도 나한테 혼났을 거야”라고 웃었다. 이에 한 퇴직자는 “그 가르침과 상처가 오늘날 한국이 세계 경제대국이 되는 데 밑바탕이 됐다”고 화답했다.

 박 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도 거론했다. 그는 “그분을 잊을 수 없다”며 울먹였다. 박 회장은 “제철소가 있어야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다는 그분의 신념과 의지로 포항제철이 있었다. 온갖 정치적 외풍을 막아준 굴다리 역할을 해줬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2004년 ‘박태준’ 평론을 쓴 이대환 작가는 “지난해 55세 이상 퇴직자를 중심으로 제철보국의 국가적 소명을 이룩하고 근대화의 중심에 우뚝 선 박 회장님을 뵙고 싶다는 건의에 따라 이런 자리가 마련됐다”며 “한국이 선진국 진입을 준비하면서 포스코의 도전정신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자리”라고 말했다.

포항=한은화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박태준=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했다. 육사 6기 출신. 대한중석 사장을 거쳐 68년 포항제철 사장이 된 뒤 우리나라 철강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81년 11대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국무총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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