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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회사” 덫에 걸린 22세 지방대생 … 합숙 1년 만에 병 얻고 2000만원 빚




지난달 24일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있는 한 불법 다단계 업체의 지하 학습장에서 20대 초반의 남녀 대학생 수십 명이 업체 간부로부터 교육을 받고 있다. 압수수색영장을 받은 경찰이 들이닥쳤지만 학생들은 동요 없이 계속 교육을 받았다. [변선구 기자]


지난 2월 중순. 경기도 일산의 한 여관방에서 김모(52)씨가 목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당황했다. 중소기업 임원인 데다 안정된 가정을 갖고 있는 김씨가 자살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수사 결과 그를 죽음으로 내몬 주범은 불법 다단계였다. 불행은 김씨의 딸 지연(22·가명)씨에게서 시작됐다. 지연씨가 지방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9년 10월, 휴대전화에 낯선 번호가 찍혔다. 중학교 졸업 후 한 번도 연락이 없던 친구였다. 그날 이후 친구는 2~3일에 한 번꼴로 전화를 걸어왔다. 겨울방학이 되자 일자리를 제안했다. 서울 인테리어 회사의 사무보조 자리라고 했다. 서울에서 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교육은 혹독했다. 밤낮으로 학습과 1대1 면담이 이어졌다. 세뇌교육이다. 지연씨는 나흘 만에 마음을 빼앗겼다. 황홀하게 불어나는 수익구조가 마력적이었기 때문이다.

합숙소 생활이 시작됐다. 49㎡(약 15평)의 지하 월세방에서 20명의 남녀 대학생이 혼숙했다. 회사 소개로 저축은행에서 연 39%의 고리로 학자금 800만원을 대출받았다. 돈은 대부분 업체의 물품 구입비로 들어갔다. 집에서 매달 보내 주는 생활비 30만원은 모두 대출 이자로 들어갔다. 8개월 후 불결한 환경 탓에 이질에 걸렸다. 이사를 핑계로 집에서 보증금 300만원을 받아 치료비로 썼다. 업체는 지연씨가 병에 걸리고 수익에 도움이 안 되자 그를 방치했다. 합숙소 생활 1년 만인 지난 1월 지연씨는 집으로 돌아왔다. 빚은 2000만원으로 늘어났다. 아버지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김씨는 식음을 전폐했다. 그리고 1주일 후 목숨을 끊었다.

 유족들은 “딸의 자취방 한 번 가 보지 못한 것을 자책했다”며 “무남독녀인 딸을 지켜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컸던 것 같다”고 전했다. 사건 후 어머니는 식당 일을 시작했다. 지연씨는 우울증에 대인기피증이 겹쳐 외출도 못 한다. 지연씨 이모는 “돈만 뜯은 게 아니라 가정도 파탄 냈다”며 “피해 보상은커녕 하소연할 데도 없어 억울하 다”고 가슴을 쳤다.




합숙소 싱크대 통 안에 꽂혀 있는 칫솔 수십 개. 거마 대학생들의 생활상을 보여 준다. [변선구 기자]

 불법 다단계업체는 허상으로 대박을 내세운다. 대박은 업체에 돌아갈 뿐이다.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A사는 이런 방식으로 단 15개월 동안 2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핵심은 ‘사람 장사’다. 몇만원짜리 물건을 수십 만원에 구입하도록 한다. 비타민·석류즙·블루베리·화장품·양말·지갑 등 다양하다. 이런 터무니없는 가격에다 이윤을 붙여 되파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또 다른 희생양을 끌어와야 한다. 세뇌·합숙을 통한 감시와 통제가 필요한 이유다. 즉 회유→세뇌→강매→불법 대출 혹은 부모 돈 갈취→물품 대금 및 이자 지급→신용불량자 전락→방치의 수순이다.

 업체는 자금 마련법도 세세하게 일러 준다. ‘머니 잡(Money Job)’이라고 부른다. 학자금 명목의 대출이 일반적이다. 제2금융권 대출이 가능하도록 모든 과정을 처리해 준다. 은행의 확인 전화에 대한 대응요령도 알려 준다. 부모 동의가 필요하지만 형식적이다. 대학생 피해자 최모(23)씨는 “저축은행에서 부모님께 전화를 하지만 대출 얘기는 꺼내지도 않는다”며 “택배회사를 사칭해 부모님 이름과 휴대전화번호가 서류에 적힌 내용과 일치하는지만 확인하면 즉시 대출을 결정한다”고 전했다. 대출은 연 38~40%의 고금리로, 한 번에 800만~1000만원 정도를 받는다. 통장에 입금된 지 하루 만에 이 돈은 모두 날아간다. 500만~600만원은 물품 구입비, 200만원은 방세와 소개비, 나머지 수십만원 정도만 생활비로 본인에게 주어진다. 하위 판매원이 성과를 올리면 직급별로 대리 10%, 부장 25%, 이사 40% 정도의 수수료를 수당으로 가져간다.

부모에게 돈을 받아 내는 ‘BMW(Bumo Money for Work)’도 있다. 서울에 있는 회사에 취직했다고 하면 전·월세비 명목으로 목돈을 보내 준다. 업체는 가짜 전세계약서를 준비해 주기도 한다. 유학을 핑계로 돈을 타내기도 한다. 역시 관련 서류도 업체가 준비해 준다. 취재팀이 만난 한 여대생 피해자는 해외 대학 입학금과 생활비 명목으로 3년 동안 5500만원을 뜯겼다. 그는 업적을 인정받아 방장 직급까지 올라갔다. 경찰서에서 피해자 조사를 받는 순간까지 그는 “회사로 돌아가겠다”며 소란을 피웠다. 송파서 수사팀 관계자는 “집으로 돌려보내려 해도 거부하는 학생이 많다”며 “사이비 종교가 따로 없다”고 혀를 찼다.

 서울 거여·마천동이 다단계 천국인 이유는 세 가지다. ▶불법 다단계업체 사무실이 가까운 가락·석촌동 지역에 몰려 있고 ▶재개발 예정 지역이라 방값이 주변의 절반 수준이며 ▶‘서울 강남 지역’이라는 상징성이 지방 학생들을 유인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 일대 합숙소가 줄어드는 추세다. 경찰 수사의 여파도 있지만 집주인들이 집단 숙식을 하는 젊은이들을 꺼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사팀 관계자는 “불법 다단계가 근절되지 않으면 제2의 거여·마천동 지역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거마 대학생=서울 송파구 거여·마천동 일대에서 합숙을 하며 불법 다단계 일을 하고 있는 20대 초반의 대학생. 경찰은 거마 대학생을 5000 명으로 추산했다.

◆탐사기획부문 = 이승녕·고성표·박민제·이서준 기자, 이정화 정보검색사

▶남녀 대학생 5000명 ‘쪽방 동거’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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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