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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황순원문학상] 소설가 윤성희




윤성희 작가는 “내 이야기가 아닌 걸 쓰는 기쁨, 단어의 힘을 찾아내는 기쁨을 작가가 된 뒤 알았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올해 황순원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윤성희와 최종심 후보로서 인터뷰를 할 때였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 외에 자질구레한 일상, 농담을 한참 동안 나눴다. 그 중 작가가 던진 말 중 하나는 “올해 수상자도 남자 아닐까요? 황순원문학상은 여자한텐 안 주잖아요”였다.

 그랬다. 2001년 제1회 수상자가 고(故) 박완서 선생이었다. 그 이후 황순원문학상은 내리 남성 작가에게만 영광을 안겼다. 비단 남녀의 도식이 아니라도 윤씨는 수상 가능성을 거의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첫마디도 “네? 부담스러운데요”였다.

 올해로 등단 13년차. 등단 10년도 되기 전에 현대문학상, ‘올해의 예술상’ 문학부문상, 이수문학상을 받았다. 대산문학상·황순원문학상·이상문학상 등 굵직한 상을 모조리 휩쓴 김연수 작가만큼은 아닐지언정, 또래 작가들에 비해 일찍 수상한 편이다.

 “열심히 십 몇 년, 이십 몇 년씩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상 한두 개 안 받은 분도 많잖아요. 평생 다시 상 같은 걸 안 받아도 괜찮겠다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뜻밖에 또 상이 오니, 그럼에도 또 받으니 좋구나 하는 걸 깨달으며 스스로 약간 부끄럽기도 하네요. 황순원문학상이라 더 좋기도 하고요.”

윤씨에게 황순원은 교과서에 ‘소나기’가 실린 부작용으로 오히려 읽고 싶지 않은 작가였다고 한다. 황순원의 작품을 정독한 건 작가가 된 뒤였다. 첫 소설집이 나올 즈음 전집을 사서 2주일에 걸쳐 읽으며 푹 빠져들었다.

 “작가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남들은 첫 번째 소설집이 중요하다지만, 두 번째 소설집을 낼 때까지 신인 작가가 어느 정도 헤매는 기간은 너그럽게 봐줘야 하지 않나 싶어요.”

 윤성희는 등단 이후 단편집 3권과 장편 1권을 냈다. 다음 달에 새 단편집이 나올 예정이다. 다작은 아니지만 꾸준히, 성실하게 써온 편이다.

 “읽는 사람은 ‘윤성희 소설은 맨날 비슷하다’고 말할 지 모르지만, 제 나름대로는 언제나 어떤 시도를 하려고 노력했거든요. 이번 수상작인 ‘부메랑’은 특히 쓰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이렇게 쓰면 되지 않을까’하는 감이 잡혔다고나 할까요. 즐겁게 쓴 소설이 상을 받게 되니 더 좋네요.”

 그럼에도 ‘어떻게 상을 받았을까’란 의문은 풀리지 않는단다.

 “더 나은 작품이 많았던 것 같은데 왜 하필 심사위원들은 ‘부메랑’을 택했을까…. 농담인데, 저희 어머니가 올해 본인 운이 좋으시대요.”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오니 윤성희 소설 특유의 농담과 유머가 떠올랐다.

“유머 감각이 특출난 가족은 아니에요. 그냥 평범한 식구들인데, 다들 낙천적이죠.”

 그의 작품은 한 번 읽으면 이 문장에서 웃음이 나오고, 두 번 읽으면 그 옆 문장에서 웃게 된다. 그렇다고 배꼽 잡고 웃게 하는 건 또 아니다. 전혀 우습지 않아야 할 상황에서도 피식 웃음이 나오게 하는 재주가 있다.

 윤성희도 초기작에선 출구 없는 인생, 날카로운 자의식 등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활동 기간이 길어질수록 조금씩 더 편안해갔다. ‘낙천적’이라는 말은 그래서 윤성희 작품의 보편적인 색깔을 설명하는 데 더 없이 적절한 단어다.

 설령 작품 안에서 사람이 죽을지라도 살아남은 자들은 마냥 비탄에 빠지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심지어 죽음의 상황 자체에서 웃음이 나기도 한다.

가령 장편 『구경꾼들』에선 대가족이 큰 맘 먹고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는데, 요행히 모든 가족이 목숨을 건졌으나 큰삼촌만 병원 옥상에서 투신 자살하던 사람의 몸에 깔려 죽는다. 그 죽음 하나를 두고 ‘(죽은 게) 내 아들이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을 하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엄마, ‘조금만 더 오래 말을 걸었으면 건물 밖으로 나가지 못해 살았을 텐데’라 생각하는 사람 등의 이야기가 거미줄처럼 이어진다.

 윤씨의 작품 속에선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행동 하나 하나가 연결돼 소소한 듯 커다란 이야기가 빚어지곤 한다. 전혀 사소한 이유 때문에 어이없는 결정을 하게 되는 순간순간들, 영화를 보거나 다른 이의 삶을 보면서 자신의 인생을 대입해 추억하게 되는 일들까지.

 수상작 ‘부메랑’은 거짓으로 부풀린 자서전을 쓰고 있던 늙은 ‘그녀’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 모든 거짓 쓰기에 제동이 걸리는 건 공교롭게도 선풍기가 고장이 나면서다. 고장 난 선풍기는 이러저러한 사물에 얽힌 기억과 연결되면서 그녀가 꽁꽁 숨겨뒀던 부끄러운 유년의 기억까지 떠올리게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전개 방식은 윤성희식 서사의 특징인 셈이다.

 “생각이 곁가지로 잘 뻗는 편이에요. 그런 종류의 소설을 좋아하고, 그렇게 생각하고 쓰는 훈련도 좀 하고요. 글이 안 써질 때 책상에 앉아 머리를 쥐어짜지 않아요. 차라리 산책을 하면서 만난 단어를 배열해 연결하는 편이죠. 가령 시계에서 막혔는데 길을 가다 토끼 모양의 돌을 보았다면 ‘시계 토끼 모양 돌’이라는 식으로 연상하죠.”

 한동안 그의 소설은 영화를 보는 듯, 영상의 이미지가 강했다. 단편 ‘그 남자의 책 198쪽’이 영화화됐던 것도 그런 까닭에서였을 것이다. 그가 이야기의 틀거리를 짜는 방식도 이미지 연상법에 가깝다. 머릿속에 스냅 사진 수십 장을 배열한다거나, 영화 필름을 돌리는 방식으로 서사를 떠올리는 식이다. 그러나 과거엔 그런 장면을 눈 앞에서 보이게끔 묘사했다면, 이제는 강렬한 영상 이미지도 한 줄의 문장으로 진술하면서 넘어간다.

 “가령 여자가 전화를 받는 장면을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그려내는지가 문득 궁금해지면, 그런 장면만 찾아 읽는 무식한 방법으로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작가마다 생략하는 방법이 다르더군요. 그 전엔 묘사와 아름다운 문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문장의 배치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죠.”

 지금은 음악으로 치면 ‘슬픈 발라드에 웃긴 이야기를 집어넣는 느낌으로 써야지’라며 간단한 틀거리에 문장의 빠르기만 잡아놓고 쓰는 편이란다. 작가는 음악에 빗대 작법을 설명했지만, 막상 음감은 없다고 했다.

 “글쓰기 말고 다른 건 다 못해요. 아니, 글쓰기도 실은 간신히 되는 거예요. 제가 고등학교 때 문예반도 떨어진 사람이에요. 독후감이건 뭐건 단 한 번도 잘 쓴다고 칭찬받은 적 없어요. 소설을 쓰면서 픽션의 세계로 오고 나서야 조금씩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죠. 지금도 에세이는 못 써요. 글 중에서도 간신히 소설만 쓰는 거예요. 어쨌든 소설가란 자기 문장 뒤에 숨고 이야기 뒤에 숨는 존재니까, 저처럼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는 거죠.”

 문득 ‘문학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란 질문을 던지자 그는 “박민규 선배한텐 그런 거 안 물어보던데”라며 웃었다. 그리곤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우리 삶이 모호한 것처럼 그 모호한 것이 신비로움의 세계라는 것, 그냥 그런 거죠. 별 게 아닌 삶인데, 명료하게 뭘 주장하거나 정의하지 않더라도 모호한 세계를 그대로 펼쳐놓았을 때 인간이 이해되는 측면이 이야기 안에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문학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가 무언진 알 것 같아요. 세상을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왜 필요하겠어요. 명료하게 압축할 수 없기 때문에 이야기가 필요한 거죠.”

글=이경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윤성희 약력=1973년 경기 수원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 『감기』. 장편소설 『구경꾼들』. 현대문학상(2005)·올해의예술상(2005)·이수문학상(2007년) 등 수상.


황순원문학상 심사평

지면으로 끄집어낸 현대인의 기억, 이것은 이야기의 승리





황순원문학상 본심 심사위원들. 왼쪽부터 류보선·이승우·최윤·성민엽·방현석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역시, 이번에도, 만장일치는 없었다. 원만한 합의도 없었다. 그러기엔 한국소설은 너무 다양했다. 또 모두가 비교 불가능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처음엔 네 편을 같이 놓고 읽었다. 박형서의 ‘아르판’은 야심 찬 작품이었다. ‘이야기의 새로움이란 무엇인가’ ‘문명에서 문명 바깥을 바라보는 이율배반적인 시선’이라는 간단치 않고 묵직한 주제를 동시에 거느리고 있었다. 하지만 종종 작위적인 장면이 돌올(突兀)해 자연스런 독서를 가로막았다.

 한강의 ‘회복하는 인간’은 상처 안에서 미세하게 돋아나는 회복의 징후를 서로 외면해 결국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주고받는 자매에 관한 이야기였다. 미래의 시점을 도입해 순간의 상처에만 매달리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인지를 간접화하여 제시하는 방법이 놀라웠다. 하지만 소설의 중핵에 해당하는 상처의 내용과 과정이 소략하다는 느낌이었다.

 끝까지 남은 작품은 두 편이었다. 조경란의 ‘학습의 생’은 사람들 사이의 친밀성마저도 거래하는 지금, 이곳에서 진정으로 친밀한 관계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다뤘다. 서로의 꿈에 대한 이해와 기대가 진정한 친밀성을 가능하게 한다는 도발적인 메시지인데, 이러한 새로운 관계의 필연성을 제시하기 위해 기존 관계의 형식들이 지닌 보편적 가치를 폄훼하는 대목이 걸렸다.

 윤성희의 ‘부메랑’은 이야기의 가능성과 힘을 소설적으로 증명했다. 신성하기는 하지만 마냥 흩어져 있는 디테일을 횡단해 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혁신적인 세계상을 만들어내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한데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 그토록 되풀이되는 자서전 되쓰기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자신의 실재적 기억은 외면하는 현대인의 존재의 형식을 실감 넘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또한 문제적이었다. ‘이야기의 승리’라 부름직하다. 이는 이제까지 우리 소설사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변종에 속한다. 11번째 황순원문학상이 여러 작품을 돌아 끝내 ‘부메랑’에게로 (되)돌아간 것은 이 때문이다.

◆심사위원=류보선·방현석·성민엽·이승우·최윤(대표집필 류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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