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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은행 파산 → 프랑스 국채 투매 →‘유로 최후의 날’

앙겔라 메르켈(57) 독일 총리가 19일(한국시간) 선거에서 졌다. 올 들어 일곱 번째 패배다. 그리스 등에 목돈을 퍼부은 게 화근이었다. 그리스 쪽을 향한 그의 말은 한결 까칠해졌다. “긴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구제금융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하루 전까지 “그리스를 돕는 게 독일에 이익”이라고 한 말과는 딴판이다.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59) 그리스 총리가 바짝 긴장했다. 그리스는 올 4분기 구제금융 80억 유로(약 12조4000억원)를 받지 못하면 낭패다. 이르면 다음 달 중순께 부도가 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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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판드레우 총리는 미국 방문을 전격 취소하고 비상 각료회의를 열었다. 회의는 그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공기업 정리해고를 한 차례 더 하기로 했다. 마른 수건을 한 번 더 비트는 꼴이다. 그런데 그는 “유럽과 국제기구 사람들이 자신들의 무능을 은폐하기 위해 그리스가 더 이상 희생양이 되거나 변명거리가 돼서는 안 된다”고 소리쳤다. 독일 등 채권국들을 향한 불만 표출이다.

어느 때보다 양쪽 분위기가 냉랭하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메르켈이나 파판드레우 모두 자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막다른 골목(deadlock)’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메르켈은 구제금융에 반대하는 여론에 시달리고 있고 파판드레우는 고강도 긴축에 대한 저항에 애를 먹고 있다. 전형적인 ‘정치 부재’다. 위기 대응 능력이 어느 때보다 떨어져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 듯한 분위기다.

 ‘헤지펀드의 귀재’ 조지 소로스(81)는 최근 칼럼에서 “금융위기는 대부분 정치 부재 상황에서 발생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주 말 폴란드에서 회동한 유럽 재무장관들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모레(22일) 워싱턴에서 모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획기적 돌파구가 나오기 힘들 전망이다. 23일 시작되는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다. “눈치 빠른 미국 월가와 영국 더시티 쪽은 ‘최후의 날(Doomsday) 시나리오’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가 전했다.

 월가 전문가들이 추정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방아쇠는 유럽 구제금융 중단이다. 파판드레우는 몇 차례 지급을 촉구하다 디폴트를 선언한다. ‘사전 조율되지 않은(disorderly) 디폴트’다. 파장은 두 가지 경로를 따라 퍼진다. 그리스 내부와 글로벌 시장 채널이다.

 먼저 그리스 은행들이 위기에 빠진다. 자금 조달 창구가 막힌다. 뱅크런(예금인출)이 발생한다. 자금 순환 고리가 끊어지면서 그리스 기업 부도 사태도 일어날 수 있다. 동시에 유로존 은행들도 흔들린다. 글로벌 돈가뭄(신용경색)이 뒤따른다. 시장에선 ‘울프팩(Wolfpack)’이 형성된다. 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 등의 국채 투매다.

 그리스 디폴트 선언이 곧 최후의 날은 아니다. 소로스는 “미국·유럽·중국 등의 대응에 따라 디폴트 이후 상황이 크게 바뀔 수 있다”며 “주요 국가들이 그리스·유럽 시중은행 예금을 전액 보장하고 이탈리아 등의 채무이행을 보증하면 파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글로벌 정치 리더들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영국 런던 정경대학 찰스 굿하트(경제학) 교수는 이날 더타임스와 인터뷰에서 “3년 전인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미 의회·중앙은행·재무부가 파격적 조치를 취했다”며 “그리스가 부도나면 유럽 리더들도 각성하고 신속하게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 그리스에 추가 자금이 무제한 공급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엔 달러 파도(유동성 주입)가 일어난다. 덕분에 그리스 등이 유로화를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정치 부재가 그리스 디폴트 이후에도 이어진다면 유로 체제는 최후의 날을 맞을 수도 있다. 미 UC 버클리대 배리 아이켄그린(경제학) 교수는 “유로 체제 붕괴가 남긴 상처는 어떤 금융위기보다 크고 깊을 것”이라며 “그 상처가 아물기까지 세계는 10년 동안 많은 자원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많은 비용이 들더라도 유로 체제 붕괴를 막는 게 남는 장사라는 얘기다.

강남규 기자

 
◆울프팩(Wolfpack)=늑대들이 먹잇감을 포위 공격하는 모양새.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잠수함들이 무리 지어 연합국 선박을 공격하는 모습을 일컫기도 했다. 요즘엔 헤지펀드들이 무리 지어 위기 조짐을 보이는 나라의 채권 등을 투매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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