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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삶과 경영 ④ 매일 5분 발명 … 1억 엔짜리 아이디어 짜내




지난해 4월 손정의 회장이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탑재한 일본 샤프사의 새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손 회장은 UC 버클리대 재학 시절 개발한 다중어 번역기 기술을 샤프에 판매함으로써 사업 밑천을 마련할 수 있었다. [블룸버그]





손정의 회장이 본지 연재를 기념해 써 보내온 좌우명 “뜻을 높게(志高く·고코로자시타카쿠)!”

열아홉 살, 어렵게 들어간 미국 UC버클리대에서 경제학 공부를 시작했다. 한편으로 발명에 몰두했다. 잡지에서 우연히 본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사진과 기사에 완전히 매료됐기 때문이다. 사진을 오려 매일 들고 다녔다. 잘 때는 베개 밑에 넣어두기까지 했다.

 ‘이 작은 칩 하나가 인류의 미래를 바꿀 것이다. 나도 여기, 컴퓨터에 걸겠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현실적 이유도 있었다. 당시 집에선 내 유학자금으로 학비를 포함해 매달 평균 20만 엔가량의 돈을 보내주었다. 아버지가 쓰러진 상황에서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매일 5분을 발명에 할애하기로 했다. 5분.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걷고 밥 먹을 때조차 책을 볼 만큼 목숨 걸고 공부하던 나에게는 그야말로 금쪽같은 시간이었다.

 하루 한 가지씩을 고안한 뒤 그중 가장 가능성 높은 것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한 1000만 엔 정도는 벌 수 있지 않을까, 대범한 계획을 세웠다. 여기저기서 비웃음이 쏟아졌다. “비현실적이다” “차라리 학교 앞 카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라”는 얘기들이 나왔다. 난 흔들리지 않았다.

 ‘마쓰시타전기의 마쓰시타 고노스케 창업자도 작은 발명을 토대로 회사를 일으켰다. 나라고 못할 리 없어. 반드시 할 수 있다.’

 
#공대 교수에게 “당신을 고용하겠다”




사사키 다다시 (제공 : 현문미디어)

 정말 매일 하나씩 뭔가를 생각해내기 시작했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세 가지 접근법을 택했다. 첫째, 주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찾는다. 둘째, 큰 것을 작은 것으로, 둥근 것을 네모난 것으로 바꿔보는 식의 변환을 시도한다. 셋째, 기존의 것들을 새롭게 조합해본다. 그러기를 100일, 150일…. 대부분 시시한 것들이었지만 그중 하나, 말이 될 법한 것이 있었다. 음성발신기와 사전, 액정화면을 결합한 제품. 다중어 번역기였다.

 나는 경제학도다. 엔지니어링 지식이 부족하다. 시간도 없다. 나는 아이디어를 면밀히 다듬은 뒤 다짜고짜 공대의 포레스터 모더 교수를 찾아갔다. 그는 음성 발신 기술의 권위자였다.

 “선생님, 절 좀 도와주십시오. 근사한 아이디어가 있는데 돈도 시간도, 기술도 부족합니다. 절 위해 팀을 꾸려 이 제품을 만들어주세요. 당신을 고용하겠습니다.”

 모더 교수는 ‘뭐 이런 미친 놈이 다 있나’ 하는 얼굴로 나를 봤다. 난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협상 같은 건 싫어하니까 일당은 선생님께서 정하세요. 특허가 팔리면 바로 정산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제품 개발에 실패하면 선생님 몫도 없습니다. 공짜로 일한 게 되는 거죠. 이런 조건, 어떠십니까?”

 교수가 웃음을 터뜨렸다. “황당한 얘기지만 어디 한번 해 보자”고 했다. 곧 내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한 팀이 꾸려졌다. 이들은 내게 매일 “헤이, 보스. 오늘은 뭘 하지?” 하고 묻곤 했다. 나도 가능한 모든 시간을 짜내 개발에 매달렸다. 내가 유독 관심을 쏟은 건 ‘사용자 시각’이었다. 나 자신 영어실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사전만 찾아선 정확한 영어 발음을 알 수 없었다. 그런 아쉬움을 발명과 연결시킨 게 바로 번역기 아이디어였다. 그런 만큼 ‘기술적으로 얼마나 뛰어나냐’가 아닌 ‘사용하기에 얼마나 편리하냐’에 초점을 맞췄다. 1977년 특허를 땄고, 이듬해 시제품을 완성했다. 가장 친한 친구인 홍루(중국 이름 루훙량)와 ‘유니손 월드’라는 벤처기업도 차렸다. 78년 여름, 방학을 이용해 일본으로 갔다. 특허를 팔기 위해서였다.

#모두가 비웃던 발명, 대박을 치다

 먼저 오사카에 있는 마쓰시타전기를 찾았다. 마쓰시타 측은 “이미 제품을 개발 중이다. 관련 특허도 있다”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산요전기도 방문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식으로 수십 개 회사를 전전했다. 샤프 본사를 찾았을 때 우연히 미국에서 안면을 튼 사사키 다다시 중앙연구소장을 만났다. 사사키 소장은 내 열정을 높이 샀다. 시제품에도 큰 흥미를 보였다. 마침 일본·미국·영국의 여러 회사가 다국어 번역기 개발에 착수한 상황이었다. 사사키 소장은 선뜻 2000만 엔을 내놨다.

 “이건 일·영 번역기 기술에 대한 개발비입니다. 프랑스어·독일어·이탈리아어…, 그렇게 주요 언어에 대한 기술을 개발할 때마다 이만큼씩 더 내놓겠습니다. 희망을 갖고 열심히 해 주십시오.”

 그렇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당시 샤프에 넘긴 특허는 79년 이 회사가 출시한 전자사전 ‘IQ3000’의 기반 기술이 됐다.

 이를 포함해 나는 모더 교수 팀과 한 프로젝트를 통해 최종적으로 1억 엔(현재 환율로 약 15억원) 이상을 벌었다. 애초 목표였던 1000만 엔의 10배에 달하는 액수였다.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에 말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일본의 중고 게임기를 수입했다.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카페 등지에 이 기기를 설치한 뒤 위탁 운영을 했다. 이 사업과 기타 소프트웨어 개발을 통해 다시 1억5000만 엔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 모두가 비웃던 발명을 통해 학비, 생활비는 물론 사업 밑천까지 마련한 것이다.

#결혼식 지각, 증인도 급조




발명에 빠져 결혼식날 지각한 신랑

 스물한 살, 나는 번역기 개발 이상으로 크고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 결혼이다. 상대는 미국에서 만난 두 살 연상의 일본인 유학생 유미. 너무 바빠 도서관에서 짬짬이 얼굴을 보는 게 다였지만,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는 그녀가 내 아내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열아홉 살 때 ‘인생 50년 계획’을 세운 뒤 흥분한 나머지 일장연설을 한 것도 그녀 앞에서였다.

 나는 유미와 미국에서 약식으로 혼례를 치렀다. 주례와 증인만 입회한 가운데 간단한 절차만 밟았다. 처음 잡은 날 번역기 개발에 몰두하느라 그만 약속 시간에 늦고 말았다. 주례가 화를 내며 가버려 새로 날을 택해야 했다. 두 번째로 잡은 날에도 결국 지각을 했지만 다행히 주례가 기다려줘 식을 마칠 수 있었다. 증인 섭외를 깜빡하는 바람에 교회 문지기에게 통사정을 하기도 했다.

 80년. 마침내 학교를 마친 나는 일본으로 돌아왔다. 요즘도 그렇지만 미국에서 성적이 우수한 대학생들은 대부분 대학원에 진학한다. 나 역시 모교인 UC버클리는 물론 하버드·스탠퍼드·MIT 같은 학교들로부터 전액 장학생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미련 없이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대학만 졸업하면 돌아가겠다고 했던,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켰다. 

정리=이나리 기자


◆마이크로프로세서(microprocessor)=컴퓨터 시스템의 중앙처리장치(CPU) 기능을 대규모 집적회로 칩에 탑재한 것. 인텔이 1971년 개발한 i4004가 효시다. 이로부터 컴퓨터의 대중화·소형화 시대가 열렸다.


손정의 발명법

① 주변 문제를 해결하는 답 찾아라
② 큰 것은 작게, 네모는 둥글게 변환
③ 기존의 것을 새롭게 조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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