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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진정한 도덕은 도덕을 비웃는다







이훈범
중앙일보 j 에디터




대한민국 참 많이 발전했습니다. 그래선지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닮은꼴이 참 많습니다. 대학 등록금 비싼 것도 그렇고, 귀 막고 입만 연 정쟁(政爭) 또한 그렇습니다. 뉴욕타임스를 읽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가 미국 젊은이의 도덕관에 대해 쓴 흥미로운 글에서였습니다.



 그는 미 전역의 18~23세 젊은이 230명을 심층면접 조사한 결과를 인용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놀랍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응답자의 3분의 2가 도덕적 행위와 비도덕적 행위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더란 겁니다.



 물론 살인이나 강간 같은 중범죄는 잘못이라고 대답했지요. 하지만 극단적 상황을 조금만 벗어나도 그게 비도덕적 행동인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음주운전이나 학교에서의 커닝, 배우자를 속이는 짓 같은 게 잘못인지 모르더란 말이지요.



 더 기가 막힌 건 많은 젊은이가 살아가는데 “도덕적 선택은 개인적 취향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나는 (누가 뭐래도)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심지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답니다. “무엇이 옳으냐는 내가 그것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렸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느낀다. 따라서 나는 무엇이 옳고 그르냐에 대해 남들을 대표해 말할 수 없다.” 나에게 맞는 도덕과 남에 맞는 도덕이 따로 있다는 겁니다.



 브룩스는 “많은 젊은이가 권위에 대한 맹목적 복종을 거부하면서 또 다른 극단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개탄합니다. 바로 극단적 도덕 개인주의입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비도덕적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상대적이고 판단 유보적 도덕주의라서 문제인 거지요.



 오늘날 미국 젊은이가 자신의 범주에서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그것을 벗어나 조금 더 넓은 사회 영역이 되면 도덕적 판단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조사를 실시한 사회학자들의 결론은 교육 문제로 귀결됩니다. 학교나 학원 또는 가정 어디에서도 젊은이들이 도덕적 직관을 계발하거나, 도덕적 의무에 대해 폭넓게 생각해 보고, 잘못된 행동을 경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거지요.



 정말 우리네 현실과 비슷하지요? 현상도, 원인도 다 들어맞습니다. 극단적 사례지만 술 취한 동료 여학생을 집단 성추행했다가 출교된 의학도들이 그렇습니다. 조금이라도 도덕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동료에게 못된 짓을 한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건이 터지고 나서도 비상식적 행동이 이어졌습니다. 피해 여학생의 사생활이 문란했다는 진술을 수집하려 했다지요. 여전히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고 있다는 얘깁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을 유보한 채 자신에게 유리한 정황만을 추구한 거지요. 그 학생들만이 아니라 학교와 가정에서 도덕적 책무에 대해 조금만 생각했어도 가능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일반적 사례는 아닙니다. 하지만 조사해 본다면 우리 젊은이도 미국의 경우에 비해 크게 나을 거라 여겨지지 않습니다. 나만 재미있으면 그만이고, 내 이익만 중요하고, 나만 옳은 젊음들을 현실적 공간에서, 사이버 공간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마주치며 드는 생각이 그렇습니다.



 도덕은 가까이 하기에 그토록 어려운 용어가 아닙니다. 헤밍웨이가 간단하게 정리합니다. “도덕적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좋게 느끼는 것이요, 부도덕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나쁘게 느끼는 것이다.” ‘우리’라는 데 밑줄 치십시오. ‘나’가 아니라 ‘우리’인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내 가족, 내 친구, 내 편만을 일컫는 게 아닙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을 말하는 겁니다.



 우리가 아닌 나를 앞세우는 사람은 그래서 커다란 이익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오래 간직할 수 없습니다. 젊은 시절의 잔머리로 늙어서 망신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 왔지요. 그래서 『채근담(菜根譚)』도 이렇게 경계합니다. “부귀와 명예가 도덕에서 나온 것은 수풀 속의 꽃과 같아 절로 잎이 피고 뿌리가 뻗을 것이요, (…) 부도덕함에서 얻은 것이라면 화병 속 꽃과 같아 그 시듦을 서서 기다릴 수 있다.”



 도덕이란 곧 ‘우리를 생각한다’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우리’를 늘 염두에 둔다면 도덕을 따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지요. 파스칼이 『팡세』에서 한 말도 다른 뜻이 아닙니다. “진정한 도덕은 도덕을 비웃는다.” 굳이 해석하자면 “우리를 먼저 생각한다면 우리가 만든 도덕은 필요 없다”쯤 되겠습니다.



이훈범 중앙일보 j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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