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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2. 서쪽에서 온 마을 (4)





어제까지 나를 태우고 다녔던 말을 내가 먹었다



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날이 밝으려면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아직 첫닭이 울지도 않았으니까. 인시(寅時) 말쯤이나 되었을 것 같다. 사방이 고요하다. 풍악 소리도, 신나게 놀던 마을 사람들의 환호 소리도 잠잠해진 지 오래다. 새벽달 보자고 초저녁부터 기다린 셈이지만 인보는 나타날 줄 모른다.



나는 방문을 열고 엉거주춤 마루로 나온다. 바닷가 산중 마을의 새벽 공기는 달콤하다. 오이를 갓 썰었을 때 나는 향긋함과 흡사하다. 나는 심호흡을 해 본다. 그사이 내 두 손은 어느새 곤충의 더듬이가 되어 있었다. 두 더듬이를 뻗쳐 탐색한다. 더듬이에 닿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앞쪽은 허공이다. 눈먼 자에게는 허공이 오히려 안전하다. 헛디딜 수 있는 발밑 허공만 아니면 된다. 이번에는 두 발이 더듬이가 된다. 마루 끝을 따라 옆으로 가다가 기둥을 만난다. 기둥을 짚고서 앞을 본다. 새벽잠에 곯아떨어진 마을 고샅을 훑고 온 바람이 코끝에 닿는다. 나는 온 신경을 귀로 몰아 아주 작은 소리라도 놓치지 않고 감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깊고 낮게 가라앉은 고요뿐이다. 내 귀는 그 속에서 발자국 소리를 캐고 있다. 인보의 발자국이다. 감감하다. 어디에 쑤셔 박혀 퍼질러 자고 있는 모양이다. 참 속 편한 녀석이다. 눈먼 내 처지를 생각한다면 이럴 수 없다.



“한심한 중생 같으니!”



나는 깊고 검은 허공에 대고 나무란다. 먼 데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자 가까운 곳에서 개가 컹컹 짖는다. 다른 개들도 연달아 짖기 시작한다.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인보가 돌아오고 있는가. 발자국 소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겹쳐서 울린다. 한 무리가 걸어가는 소리다. 그 소리는 가까워졌다가 도로 멀어져 버린다.



화로가 놓인 자리를 모르므로 마루 끝에서 손을 더듬어 나간다. 댓돌 부근에서 화로를 확인한다. 화롯불은 사윈 지 오래다. 아침에 먹을 약을 달이려면 지금쯤 숯불을 피우고 약탕기를 올려놓아야 한다. 약은 정성이라는데 이 화상 하는 짓이 제멋대로다. 수작이 꼭 개밥 주듯 할 낌새다.



“미욱한 중생!”



마루 끝에 걸터앉는다. 목이 마르다. 갖다 놓은 자리끼도 없고 샘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인보에 대한 미움이 점점 더 커진다. 수기 스승도 그렇다. 중에게 얼레빗 채워 주기지 그따위 덜 떨어진 화상 데리고서 무슨 감찰을 하라는 것인가.



우우~. 위잉~.



멀리서 짐승 우는 소리 같은 게 들린다. 나는 바짝 귀를 기울인다. 같은 소리가 반복된다. 고통을 호소하는 울부짖음 같기도 하다. 나는 손과 발로 더듬거리며 마당으로 내려온다. 소리가 나는 방향을 추적한다. 집 뒤쪽 산에서 나는 소리다. 산속 깊은 데서 울려 나오는 소리가 분명하다. 세상 모든 것들은 무언가 편치 못하거나 원하는 것이 간절하면 운다. 저것은 산이 우는 소리다. 호소하는 것 같은 산 울음소리는 한참이나 계속된다. 바디고개에서 죽은 내 말이 생각난다. 인보는 어제 오후에 그 말을 잘 묻어 주었을까.



나는 마당 가장자리에서 지게 작대기 하나를 붙잡는 데 성공한다. 눈먼 자에게 작대기는 길라잡이다. 작대기가 더듬이인 것이다. 발 앞 땅을 두드리고 허공을 매만지며 앞으로 나아간다. 반쯤 열린 싸리문을 찾아냈다. 드디어 고샅으로 나선다. 토담이 이어진다. 왼손으로는 토담을 짚고 오른손으로는 작대기를 휘둘러 가며 전진한다. 모퉁이를 돌아가는데 물컹하고 밟히는 게 있다. 하마터면 미끄러질 뻔했다. 돌담을 짚고 서서 한쪽 발을 들어올린다. 구린내가 풍긴다. 개똥을 밟았다. 눈살을 찌푸리며 돌담에 갖신을 문지른다.



“왜 나와 계세요?”



공방 살림꾼 전추산이다. 깜짝 반갑다.



“하도 답답해서.”



“인보 스님 부축 받고 나오실 일이지.”



“어제 낮에 나가서 여태 코빼기도 안 비쳤다오.”



“세상에! 어서 들어가요. 숯불 담아 왔으니 약부터 달이지요.”



“날은 밝았소?”



“이제 밝기 시작하네요.”



전추산은 나를 마루 끝에 앉힌 다음, 마실 물부터 가져다주었다. 부엌이 가까이 있었던 모양인데 나는 찾지 못했다. 전추산은 화로에 약탕기를 올려놓고 집 밖으로 나가 물을 길어온다. 그가 개똥 밟은 내 발을 씻겨준다. 세수를 하고 나서 마루에 앉은 나는 그에게 질문을 쏟아 놓는다. 우물은 공방 마당에 있고 공방은 여기서 아래쪽으로 세 집 건너라고 한다.



“김승은 어제 왜 안 온 건가?”



“얘기도 없이 산기도 가신 거 같습니다.”



“산기도?”



“직소폭포나 부사의방 원효 굴, 멀리 격포 바닷가까지 기도를 다녀오곤 한답니다. 밤을 새우거나 사나흘씩 있다 오는 경우도 있지요.”



“그런다고 검정 개가 흰 사슴 될까.”



“예?”



냉소적인 내 말에 전추산이 놀란다. 김승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사람이다.



“그자가 없으면 누가 그자 일을 대행한다지?”



“공방장요. 글씨 잘 쓰시는 스님이지요.”



“사경도 잘하겠군. 그를 만나 봐야겠소. 여기서 먼 데 있나?”



“공방 2층 방에 있답니다. 이따 조반 잡숫고 가 보시죠.”



약탕기가 데워지면서 약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나는 어제 오후에 누군가가 내 방에 다녀가면서 남긴 진한 송진 냄새를 기억해 냈다. 전추산에게 혹시 짐작 가는 사람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전추산은 전혀 모르겠다고 했다. 바디고개에서 죽은 말은 어떻게 했는지, 내가 타고 온 말은 누가 돌보는지를 물었다.



“공방 마구간에요. 바디고개에서 즉사한 말은….”



“잘 묻어 주었겠지?”



“저도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게….”



쇳소리 나던 전추산의 목소리가 잦아든다.



“…어제 낮에 광대패들이 바디고개를 넘어오다가 방금 죽은 말을 발견하고서 냉큼 잡아 버렸던가 봅니다. 칼로 고기만 깨끗이 발라 와 동네잔치를 했지요. 어제 저녁 승정께서 드신 고깃국이 그 말고기….”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나는 참회진언을 외웠다. 어이가 없었다. 어제까지 나를 태우고 다녔던 말을 내가 먹었다. 중이 고기국물 먹은 것도 허물인데 타고 다니던 말을 맛나게 먹었다. 내 대신 죽어 준 말이었다. 말이 아니었다면 나는 하늘까지 휘말려 올라갔을 게다. 그랬다가 어느 이름 모를 계곡에 처박혀 죽었을지도 모른다. 모르고 먹었다지만 부끄러웠다. 아니, 모르고 먹었기에 더 부끄러웠다. 나는 반듯한 수행자가 아니던가. 나는 토악질을 해 댔다. 토사물이 마당에 쏟아졌다. 인보 놈이 돌아와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이미 죽어 버린 말이잖아요.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그 말은 죽어서도 제 살로 보시한 셈이니까 공덕이 아주 크네요. 승정께서는 모르고 자셨지만 다른 스님들은 일부러 술까지 곁들여서 고기를 먹잖아요.”



전추산의 통속적인 어법이 나를 위로하지는 못한다. 수행자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참회하고 되풀이하지 않으면 된다. 핑계를 찾아서 무마하려 하거나 세태와 비교하여 상대적인 우위를 셈하는 건 본령과 멀어지는 행위다. 세상이 어디로 굴러가든 끝까지 정법을 지켜 나가는 이들이 있다. 나도 그중 하나라고 자부한다. 내가 화나고 참을 수 없는 건 자꾸 일이 틀어져 가는 데 있다. 이 각수장이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던 고갯마루에서부터 사달이 났다. 돌개바람 사건 이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 말 하나 못 묻어 주었다. 눈이 멀었고 별러 왔던 김승을 여태 만나 보지도 못했다. 빙충맞게 마당에 똥을 싸놓고 개똥을 밟고 토악질을 해놓았다. 그런데도 어제 마실 나간 인보란 놈은 돌아올 줄을 모른다.



“어차피 죽은 짐승, 흙 보탬 되느니 사람 살로 가는 편이 나았어요.”



“이 마을 사람들이 죽은 말을 먹어야 할 만큼 곤궁하오?”



청림 고을을 비롯한 내변산은 풍족하다고 알려졌다.



“먹을 것 없고 부지할 것 없어서 떠도는 인생들이 광대패라요. 배불리 먹고 다닐 처지가 못 되지요. 그 패들이 포식하고 마을 사람들까지 잔치를 벌였으면 됐다고 봐요. 뼈는 잘 수습해서 양지 바른 데다 묻어 줬답디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전추산도 인보 못잖게 세상 편하게 사는 사람이다. 나는 절대 아니다. 이런 부류들과는 본질이 다르다.



“다 몽골 놈들 때문이오. 그것들이 세상을 생지옥으로 만들어 놨어요. 우리 고려 사람들이 어디 죽은 고기 탐할 만큼 그악스러웠던가요? 그것들을 죄다 쓸어 버려야 하는 건데.”



기둥이 쿵 하고 울린다. 전추산이 주먹으로 기둥을 친 모양이다. 그에게 다가가서 손을 달라고 한다. 어지간한 솥뚜껑만 하다.



“대장군감이네. 음성도 좋고. 얼굴을 볼 수 없는 게 유감일세.”



내 말이 끝나자, 그가 내 손을 가져다가 자기 얼굴에 대준다. 틀거지가 있는 통통한 얼굴이다. 윤곽이 뚜렷하고 코가 바로 섰으며 입술은 두툼하다. 안아 보니 우람하고 키도 컸다.



“자주성 전투의 영웅 최춘명 장군 같은 무인이 되려고 했었지요.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싸워 나라를 지켜 내는 진짜 무인 말씀입니다.”



“나이가 몇이지?”



“서른다섯, 개띠입니다.”



“나보다 네 살 아래로군. 나라 꼴이 제대로 돌아간다면 태자께 추천해 무반 벼슬살이를 시키련만 최씨 무인정권 밑에서는 사냥개 노릇밖에 못할 테니 권하지 않으리.”



“승정께서도 무인정권을 싫어하시는군요?”



그가 반갑게 묻는다.



“내가 알 만한 문사 집안 출신인데 그런 불한당들을 좋아할 리 있겠나. 그들은 나라를 지키는 게 아니라 자기들 권력을 지킬 뿐이지.”



“저는 백제의 개국공신 전섭(全攝)의 후예입니다. 몽골 놈들한테 부모를 잃고 저만 살아남았답니다. 누이는 그놈들이 잡아갔고요. 무과를 준비하던 중에 졸병으로 징집되어 강화도성 쌓는 노역에 투입됐답니다. 거기서 돌을 지어 나르다가 그만 발목을 찍혀서 불구가 돼 버렸어요. 절망했지요. 전장에 나가 몽골 놈들을 싹쓸이하려 했는데 글러 버렸지 뭡니까.”



나는 손을 뻗어서 그의 발목을 만져 본다. 웬만한 집채라도 능히 떠받칠 것 같은 통뼈다.



“지금은 기적처럼 다 나았어요. 다 그분 덕분이죠.”



“그분이라니?”



“승정께서도 인연이 닿으면 그분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분이 함께하면 안 되는 일이 없거든요.”



전추산이 몽상하는 사람처럼 두런댔다. 맷집과 달리 감상적인 구석이 있었다.



“저는 일당백의 무공을 길러서 꼭 원수를 갚으렵니다.”



일마다 때가 있다. 의지가 아무리 결연하다고 해서 한 개인이 대제국을 상대할 수는 없다. 고려국 전체, 아니 세계가 휘청거리는 판국이다.



“그날이 속히 와야 우리 전 장군의 원한이 풀리겠군.”



나는 전추산의 결기를 꺾지 않으려고 그렇게 말했다.



“방금 저더러 장군이라고 하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높으신 승정 어르신이 저더러 전 장군이라고 하셨단 말씀이죠?”



그가 내 손을 잡고 연거푸 절을 해 대는 것 같았다. 내가 태자와 친분이 있는 승려가 아니라 태자이기라도 한 것처럼 대했다. 아이처럼 뛸 듯이 기뻐하던 그가 아침상을 봐 가지고 왔다. 인보는 그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약을 마신 뒤, 전추산을 앞세우고 인보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방 안에 있기도 답답하고 마을도 궁금했다. 우선 공방으로 가서 말을 탈 참이었다. 생각해 보니 눈먼 자에게 말은 더 없이 좋은 이동 수단이었다.



 



사슴이 장대에 올라 해금 켜는 걸 듣노라



얄리얄리 얄량셩 얄라리 얄라



 



숲속 나팔꽃 꽃잎에 매달린 아침 이슬처럼 영롱한 목소리였다. 맑기만 한 게 아니라 영혼에 파고드는 울림이 있었다.



“누가 하는 노래지?”



공방 마당에서 발을 멈춘 내가 물었다.



“가온이랍니다.”



“가온?”



내가 전추산의 손을 잡고 공방 안으로 들어서자 노랫소리가 그쳤다. 나무 향이 그윽한 공방은 조용했다. 아직 일러서 각수장이들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게는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 떠오른다.



 그때 커다란 무엇인가가 순식간에 나를 덮친다. 놀라 뒷걸음질 치던 나는 놈의 무게에 짓눌려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엉겁결에 그놈을 끌어안는다. 손에 잡히는 털이 사자처럼 덥수룩하다. 묵직한 두 다리로 내 양 어깨를 짚고 올라선 놈은 내 얼굴을 마구 핥기 시작한다. 기다랗고 미끈한 혀가 코와 눈, 귀를 가리지 않고 핥아 댄다. 도리질 쳐 보지만 놈의 혓바닥은 멈출 줄 모른다.



“하하하하. 이 녀석이 스님을 무척 좋아하는데요.”



통통 튀는 발랄한 음성이 바로 옆에서 들린다. 아까 노래하던 그 목소리다.



“사자견이랍니다.”



전추산이 일러줬다.



“몽골 기마병대가 데리고 다닌다는 그 사자견?”



놀라웠다. 전쟁에 동원되는 그 사나운 개가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울음소리가 사자와 같대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붉고 탐스러운 털을 가진 그 개는 늑대를 잡을 정도로 용맹스러웠다.



김종록 소설가

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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