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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Focus] 아홉 살 아들에게 홈스쿨링 유종근 전 전북지사

올해 67세인 이 남자에게는 아홉 살짜리 아들이 있다. 그는 어린 아들의 친구이자 선생님이다. 서울 서초동 집에서 생활할 때뿐 아니라 일주일에 서너 번 경기도 파주에 있는 회사에 출근할 때도 데리고 나와 함께 공부하고, 놀고, 밥 먹는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그 아들은 아버지가 일할 때 사무실 책상에 앉아 혼자 공부를 한다. 아들이 읽는 책은 전문서적 원서 또는 한영대역 『성경』이다. 유종근 전 전북지사. 뉴욕주립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미 럿거스대 교수, 뉴저지 주지사 수석경제자문관, 초대 민선 전라북도 지사, 고 김대중 대통령 경제고문을 역임했고,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국제자동차경주대회 유치 과정에서의 금품 수수 사건으로 3년여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지금은 어린 아들의 홈스쿨링 선생님으로, ㈜온누리 에프앤디라는 조그만 제빵회사를 운영하며 지내고 있는 유 전 지사를 만났다.



“우리 막내 담임 선생님은 접니다”

글=염태정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아들을 홈스쿨링하는데. 학교엔 처음부터 안 보냈나.













“아니다. 주영이가 목회 활동을 하는 엄마를 따라 미국에서 유치원, 초등학교를 좀 다녔고 필리핀에서도 학교를 다녔다. 지난해 국내 초등학교도 석 달 정도 다녔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과 생각하는 세계가 달랐다. 적응이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신경 쓰고 잘해줬지만, 집에서 공부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도 그게 더 좋겠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영재 소리를 들었던 주영이도 집에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다.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을 더 키워주고 싶었다.”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언제 가르치고 교육 프로그램은 어떻게 짜나.



 “내가 주영이 담임 선생님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주영이 스스로 공부한다. 교재도 특별히 정해놓은 것은 없다. 관심 있는 것들을 자유롭게 읽고 공부하게 한다. 요즘엔 『Chemistry(화학)』를 주로 읽고 『Fundamental Methods of Mathematical Economics(경제·경영수학)』도 읽는다. 『성경』은 항상 읽는다. 영어를 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많이 부족해 신경 써서 공부시킨다. 영한대역 성경에서 마태복음을 통째로 외우게 했다. 국어 공부는 독서를 많이 시키는 것으로 하고 항상 존댓말을 쓰게 한다. 손 글씨가 안 좋아 성경을 정성껏 쓰게 한다. 시간 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금도 사무실에 같이 왔지만 내가 다른 일로 지방출장 가거나 하지 않으면 하루 대부분을 같이 지낸다. 직접 가르치는 것은 1~2시간 정도고, 나머지는 스스로 공부한다.”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 친구를 사귀고, 사회성을 기르는 곳이다.



 “나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 얼마 전 어느 모임에서 이런 얘기를 했더니 그 자리에 참석한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이 ‘링컨이나 에디슨이 학교 나왔느냐. 너무 걱정 마라’고 하더라. 불안한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말에서도 위안을 찾는다. 학교는 안 보내지만 수학학원에 일주일에 세 번 보내고, 교회에서 하는 주일학교·수련회에 보낸다. 그곳에서 또래 아이들하고 잘 논다.”



●잘 따라오나. 게임을 좋아할 나이인데.









유 전 지사가 회장으로 있는 온누리 에프앤디사무 실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는 유 전 지사와 주영군.





“스스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기본적으로 잘 따라온다. 공부하다 곁가지로 뻗어나갈 때가 있는데, 너무 곁가지로 흐른다 싶을 때는 내가 다시 방향을 잡아준다. 게임을 좋아하기는 했는데, 게임의 문제점에 대해 여러 번 설명했고 지금은 거의 안 한다.”



 옆에 있던 주영이에게 “아버지는 어떤 선생님이냐”고 묻자 씩 웃으며 “최고까지는 아니지만 좋은 선생님”이라고 말한다.



●계속 가르칠 수는 없을 텐데. 대학도 보내야 할 테고. 언제까지 집에서 가르칠 건가.



 “좋아하는 과목을 마음대로 공부하게 한다는 것일 뿐 언제까지다, 어느 단계까지다 하는 생각은 없다. 아이비리그 대학 못 가면 실패다, 서울대 못 가면 실패다. 그런 생각도 안 한다. 검정고시 같은 것을 안 봐 학교에 보내기는 어렵고 내년쯤에는 청강이라도 할 수 있는 대학을 알아볼 생각이다. 내가 가르치고, 주영이가 스스로 공부하는 데 한계가 있을 테니.”



●아픈 딸이 있다고 들었다.



 “올해 16살이다. 자폐다. 지금 특수학교에 다닌다. 아내가 주로 돌본다. 신이 주신 사랑스러운 딸이다. 딸을 보면서 ‘나중에 내가 완전히 은퇴하면 딸 같은 아이들을 위해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간혹 이런 생각은 든다. ‘뛰어난 아들이랑 모자라는 딸이, 반반씩 섞여 다른 평범한 아이들처럼 자랐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적어도 90살까지는 살아야 한다. 아이들이 충분히 클 때까지 내가 정신적으로, 재정적으로 지원해 줘야 하니까.”



●이제 제빵회사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떻게 ‘회장님’이 됐나.



 “노후 대책이다. 아이들을 끝까지 잘 돌보려면 재정적으로 안정돼야 한다. 교수 하고 도지사 했지만 모아놓은 재산은 별로 없다. 지난해인가 제빵 사업을 하는 집안 동생이 공장을 확장·이전하는 데 돈이 필요하다며 자금을 유치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하더라. 보니 투자금이 아주 많은 것도 아니고, 내 노후도 생각나고 해서 ‘내가 투자하마’ 했다. 그 동생이 이 회사 사장이다. 작은 회사에 ‘회장’ 같은 것은 필요없는데, 그래도 모양이 그러니 ‘회장’ 하라고 해 회장이 됐다. 매일 출근하지는 않고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한다. 나는 제빵을 잘 모르니 생산 부분은 동생이 주로 담당하고, 난 큰 틀의 의사결정과 재무 쪽을 담당한다.”



 온누리 에프앤디는 리치스 도넛(Rich’s Donuts)이라는 자체 브랜드 판매와 함께 현재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다. 유 회장의 집안 동생인 유종연 사장은 던킨도너츠 프랜차이즈를 국내에 들여온 인물이다.



●공장을 운영하다 보면 시청 공무원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때가 있을 텐데. 도지사를 했던 분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전혀 어렵지 않다. 나는 늘 ‘을(乙)’의 자세로 산다. 내가 3년 정도 수감생활을 했다. 수감생활을 하면서 나 자신을 낮출 수 있을 만큼 낮추려 노력했다. 당시 젊은 교도관들에게도 고개를 낮추고 존대했다. 낮추지 못할 일이 없다. 공장을 세우는 것은 법적 절차에 따라 하면 된다. 법을 준수해 짓지만 그래도 담당 공무원에게 충분히 잘 설명하면 도움이 된다. 그래서 시청에 가서 담당 공무원들에게 인사하고 설명했다. 내가 할 일인데, 어려울 것이 없다. ‘을’로 사는 게 회사에 도움이 된다.”



●기업을 해보니 어떤가.



 “다른 것은 잘 모르겠고, 월급 무서운 줄은 알겠다. 그동안 살면서 월급 걱정해본 적은 없는데, 요즘은 월급 주는 날이 다가오면 걱정될 때가 많다. 거래처 문제로 잠을 설칠 때도 있고. 기업인들은 애국하는 사람들이다. 애국하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아니겠지만 고용을 늘리는 데 기여하니 결과적으로 애국하는 것이다.”



●요즘 강조되는 공생발전에 대해서는.



 “당연한 것이다. 기업 생태계는 경쟁과 협동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경쟁을 무시하면 발전할 수 없다. 공산주의가 그래서 무너진 것 아니겠나. 하지만 경쟁의 과정에서 혼자만 잘살려고 하면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당장에는 좋은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해가 된다.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협력해서 글로벌 대기업과 경쟁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발전한다. 실리콘 밸리가 왜 그렇게 발전했나. 경쟁하지만 그러면서도 협동하고 서로 이익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정치에 대한 생각을 버리긴 어려울 것 같다. 내년 총선에 나가라는 주변 권유도 있을 테고.



 “아니다. 이 나이에 무슨…. 공직에 대한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하면… 그건 아니겠지만, 총선에 출마할 생각은 없다.”



●교수, 도지사, 대통령 특보, 대기업 회장, 중소기업 회장… 이렇게 살아왔는데, 가장 좋았을 때는.



 “좋다는 것이 아니라 가장 보람 있었던 때는 김대중 대통령을 도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일조할 때다. 난 고등학교 2학년 때 앨프리드 마셜에 관한 글을 읽고 ‘경제학을 공부해 나라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뉴저지 주지사 경제자문관을 했지만 정작 우리나라를 위해선 기여할 기회가 없었다. 외환위기 때 그 기회를 만났다. 그때가 내 인생의 정점(pinnacle)이었다.”



j 칵테일 >> 독실한 크리스천











유 전 지사는 열아홉 살 아래인 김윤아(48) 목사와 1992년 8월 결혼했다. 재혼이다. 첫 부인과의 사이에는 딸이 있다. 이혼 이유에 대해 유 전 지사는 “일에 바쁘다는 이유로 가정을 잘 돌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80년대 후반까지 평민당에서 일했고 8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의 정책·기획 특보였던 유 전 지사를 만났다. 그는 딸의 자폐, 남편의 옥고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 기독교에 의지했고 2007년 목사가 됐다. 유 전 지사도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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