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저 철가방 속에서 김훈이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안산 선감도 생활 5개월 만에 새 장편소설 탈고



소설가 김훈씨가 새 역사소설을 최근 탈고했다. 11월 초 출간될 예정이다. 낡은 왕국 조선이 근대와 본격적으로 충돌한 19세기 초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김씨는 “소설을 쓸 때 이념의 편이 아니라 인간의 편에 선다”고 말한다. 이번 소설도 그런 시각이 깔린 작품이다. [중앙포토]



소설가 김훈(63)이 최근 새 장편소설을 탈고했다. 번잡한 세상사로부터 절연된 작업 환경을 찾아 지난 4월 경기도 안산 대부도 옆 선감도 작업실로 내려간 지 5개월여 만이다.



 근황이 궁금해 지난달 초순 섬을 찾았을 때 김씨는 창작의 마지막 고비를 힘겹게 넘고 있었다. 200자 원고지 1000쪽을 막 돌파한 날이었고, 100쪽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는 “지친다. (10라운드 권투 경기의)9라운드인데 힘 빠지면 안 된다. 이런 날은 술 마시고 쉬고 싶다”고 했다. “소설을 끝낼 때까지 앞으로 열흘, 여기서 살아남는 게 문제”라는 말도 했다. 마지막 진액 한 방울까지 원고지 위에 떨구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작정과 달리 김씨는 쉽게 소설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원고를 받아 책을 내기로 돼 있는 학고재 출판사의 손철주 주간은 애가 탔다. 마침내 그가 소설을 끝냈다는 소식이 들렸다. 추석을 코앞에 둔 지난주 초 그는 인편으로 원고 꾸러미를 출판사에 보냈다.



 그는 자신의 글쓰기를 ‘영세한 필경(筆耕)’이라고 부른다. 요컨대 그는 소설을 써서 밥을 벌어먹는 사람이다. 그것도 그의 표현대로라면 근근이. 그런 이가 소설 한 편을 끝냈다는 게 대단한 소식일 리 없다.



 하지만 역사소설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날리던’ 일간지 문학기자에서 1990년대 중반 소설가로 변신한 이후 그는 유독 역사소설에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 수치가 증명한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기간 중 애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판매에 가속도가 붙긴 했지만 2001년 장편 『칼의 노래』는 지금까지 100만 부 넘게 팔렸다. 100만부 출간 기념회를 연 게 2007년이다. 가야금을 만든 우륵의 일대기를 다룬 2004년작 『현의 노래』 역시 30만 부 넘게 팔린 것으로 집계된다. 2007년 나온 장편 『남한산성』은 60만 부가 나갔다. 하지만 현대가 배경인 작품은 상대적으로 저조하다. 2009년 『공무도하』가 13만 부, 지난해 『내 젊은 날의 숲』이 9만 부쯤 나갔다.









소설가 김훈의 경기도 안산 선감도 작업실 한 구석을 지키고 있던 중국집 철가방. 지난달 김씨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그는 산책 나갔다 발견한 버려진 철가방을 주워와 간이 서가로 사용하고 있었다. 뚜껑은 낡아서 버렸다고 했다. 새 뚜껑을 맞추려고 했으나 세월의 흔적이 쌓인 본체와 어울리지 않아 포기했다고 한다. 맨 아래칸에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200자 원고지 뭉치, 위칸에는 취재수첩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그는 철가방을 경기도 일산의 원래 집필실로 가져갈 거라고 했다. [신준봉 기자]



 그의 역사소설에 독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전압(電壓) 높은 특유의 문체, 냉정한 세계 인식,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초연한 인물의 고독과 들끓는 내면, 역사의 소용돌이에 허망하게 희생되는 정직한 민초에 대한 연민 등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다. 김씨도 지난해 본지 인터뷰에서 “이념의 편이 아니고 인간의 편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가령 근왕주의적 가치관과 인간적 고독 사이에 괴로워하는 이순신의 모습에 매혹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새 소설 얘기를 듣고 싶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김씨는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책도 나오지 않았는데 기자를 만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소설이라는 말에는 거부감을 표했다. “역사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사실의 뼈대에 이야기의 살을 붙여 역사를 옮기는 식의 소설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새 소설은 1800년 전후를 배경으로 서학(西學)이라며 금기시됐던 천주교를 내세워 낡은 조선사회를 개혁하려 했던 지식인의 꿈과 좌절을 다룬 것으로 알려졌다. 학고재 손 주간은 “근대를 맞닥뜨린 지식인들의 지적인 아노미, 당대의 아수라 같은 상황이 소설의 중심 내용”이라고 귀띔했다. 지금 시각에서 보면 무지몽매하기 짝이 없는 당시 지식인, 민초, 조선의 운명 등이 그려진다. 제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11월 초 출간될 예정이다.



 숙제를 끝낸 김씨는 스페인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14일 밤에 떠나 25일 아침에 돌아오는 여정이다. 순례자들의 성지인 스페인 북서부 ‘산티아고 가는 길’ 중 300㎞ 정도를 자전거로 이동한다. 대한사이클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구자열 LS전선 회장이 제안해 이뤄졌다.



 김씨에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 일은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겨우 한 문장씩을 써내는 글쓰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전거 타기는 그에게 글쓰기의 연장이다. 김씨는 일종의 취재 여행을 떠난 것이다.



신준봉 기자





◆김훈=1948년 서울 출생. 소설가 겸 자전거 레이서. 오랫동안 신문기자로 일했다. 산문집 『자전거 여행』 『풍경과 상처』 『문학기행』, 소설집 『강산무진』, 장편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등. 황순원문학상·이상문학상·동인문학상·대산문학상 등 수상.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김훈
(金薰)
[現] 소설가 1948년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