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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메덴 아간’을 기억하라







이철호
논설위원




흔히 소크라테스 명언으로 알고 있는 ‘너 자신을 알라’는 원래 그리스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경구였다. 그리스는 나라의 중대사를 정할 때마다 가파른 절벽 위 델포이 신전을 찾아 신탁(神託)을 구했다. 성스러운 신전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너 자신을 알라’와 함께 또 하나의 유명한 경구가 새겨져 있었다. 바로 ‘메덴 아간(Meden agan)’이다. ‘그 어떤 일도 지나치거나 치우쳐선 안 된다’는 뜻이다. 사실 이 두 경구만 명심하면 굳이 비싼 제물을 바쳐가며 모호하고 은유적인 신탁에 기댈 이유가 없다.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23일 20억 유로를 비롯해 월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41억 유로를 갚아야 한다. 유럽연합이 6차분 구제금융(80억 유로)을 대준다면 급한 불은 끌지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2년간 그리스는 수백억 유로씩 국채 상환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구제금융에 의지해 간신히 인공호흡을 해온 그리스는 당초 다짐과 달리 올 들어 재정적자가 훨씬 나빠지면서 외부 수혈이 중단될 위기를 맞고 있다. 최대 물주인 독일이 추가 지원에 난색을 표한 것이다.



 그리스 경제위기는 복합적이다. 섣불리 유로존에 가입한 게 화근을 불렀다. 파판드레우 현 총리의 아버지이자 1981년부터 11년간 총리를 지낸 안드레아스의 과도한 복지로 재정이 망가졌다. 현재 1인당 세금은 8300유로지만 복지 혜택은 1만600유로씩 뿌리니 그리스 재정이 버텨낼 재간이 없다. 그리스가 수백 년간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를 받으며 탈세가 몸에 배었다는 역사적 해석도 있다. 실제로 아테네 북부에는 값비싼 세금을 매기는 야외 수영장을 갖춘 주택 가운데 324세대만 자진 신고했지만, 위성 사진 판독 결과 무려 50배가 넘는 1만6974개의 수영장이 발견됐다. 여기에다 그리스의 ‘파켈라키(fakelaki:작은 봉투)’는 부패 문화의 상징이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아버지의 유산을 부정하면서 복지제도를 대폭 구조조정했다. 소비세를 올리고 부동산특별세를 신설했다. 마지막 발버둥이자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너무도 당연한 이런 조치에 그리스 시민은 일곱 차례의 총파업으로 저항했다. 오죽하면 옛 로마인조차 그리스의 뿌리 깊은 개인주의와 분열을 이렇게 비꼬았을까. “그리스 사람 열 명이 모이면 의견은 열한 개”라고….



 그리스의 1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110%로 치솟았다. 한국의 외환위기 당시 CD금리가 25%까지 치솟은 것과 비교하면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사실상의 디폴트나 다름없다. 그리스는 “우리가 파산하면 유럽 금융이 망가진다”고 우기지만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유럽 은행들은 지난 1년 반 동안 악착같이 현금을 챙겼다. 현금인출기(ATM)라는 서울 증시에서만 35조원을 순매도했다. 그리스 파산을 웬만큼 감당할 자신감이 생겼으니 칼자루를 쥔 독일에서 ‘질서 있는 디폴트’라는 주문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이탈리아 국채 매입을 시사한 중국이 구원투수로 등판하리란 기대는 접는 게 좋다. 이미 스페인과 헝가리에도 “외환보유액으로 국채를 사주겠다”며 공수표를 띄웠던 중국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도 “선진국들은 우선 자신들의 문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며 이틀 만에 손을 털었다. 그리스는 이제 헤지펀드의 놀이터가 됐다. ‘메덴 아간’의 경구를 무시하다 부른 비극이다. 진짜 파르테논 신전이나 에게해 섬까지 해외자본에 팔아야 할지 모를 비극적 신세가 됐다.



 우리 선조의 지혜는 그리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에서, 술을 마실 때도 욕심을 비우라는 계영배(戒盈杯)까지 만든 나라다. 하지만 이미 가계부채가 지나치게 부풀어 올라 경제위기의 뇌관이 됐다.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은 도를 넘었다. 외환위기는 실수였다고 치자. 하지만 10년 만에 같은 돌부리에 두 번이나 걸려 넘어지는 것은 치욕이다. 그리스 비극을 뒤따르지 않으려면 우리라도 ‘메덴 아간’을 기억해야 할 듯싶다.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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