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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하나로 묶는 중앙 뜰, 81년 전 이 땅의 첫 아파트

서울 도심에 지은 지 81년이나 된 아파트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로 50가구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 맞은편 대로변 ‘충정아파트’다. 프랑스 대사관 아래쪽에 있는 이 녹색건물을 아파트라고 여기는 행인은 거의 없다. 낡은 상가 건물 가운데 하나쯤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색이 머무는 공간 <70·끝> 서울 충정로 충정아파트

1층 상가들은 평범하다. 상가 틈으로 난 출입구에 아파트 이름이 쓰인 현판들이 셋이나 붙었다.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서대문구청 건축과에서도 이 아파트가 81년이나 된 건물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설계자나 준공연도 같은 공식적인 기록이 없어서다. 충정아파트는 한국 근·현대사의 녹색 아이콘이다. 이 아파트를 보면 대한민국 아파트 역사가 보인다.

사람이 들어가 살기 위해 지은 건축물이 집이다. 동굴에서 살던 원시인류는 나무나 풀·흙·돌 등을 이용하여 지상에 여러 형태의 구조물을 세웠다. 집들이 모여 마을이 된다. 2층 이상의 집을 짓고 포개어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은 도시로 발전했다. 그리고 그 도시에 아파트라는 콘크리트박스 집적체가 등장하기 시작한 때를 근대라고 부른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주한 프랑스대사관 아래쪽 대로변에 있는 이 녹색 건물이 81년 된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다. 조용철 기자
아파트는 산업화가 낳은 주거양식이다. 근대적 아파트는 19세기 영국에서 등장했다. 산업혁명과 함께 신흥 공업도시들이 생겨났다. 농촌인구가 도시로 급격히 몰렸다. 산업화와 함께 진행된 도시화다. 주택 문제가 심각해졌다. 영국 정부는 도시 빈민에게 양질의 집합주택을 널리 보급했다. 그것이 오늘날 아파트의 시초다.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서 산다. 올해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418만6668호 가운데 818만5063호가 아파트다. 그 대부분이 과거 30여 년간 지어졌다. 오랫동안 전통 건축양식인 한옥에서 살았던 한국인들은 불과 한 세대 만에 주거환경의 혁명적인 전환을 경험했다.

충정아파트 출입구로 들어선다. 우편함과 계단이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난 통로를 따라 안쪽으로 다가간다. 왼쪽으로 삼각형 모양의 중앙 뜰, 중정(中庭)이 나타난다. 뜰이 차지하는 영역이 좁아서 옹색해 보이지만 다른 아파트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적인 공간이다. 중정을 품고 있는 이런 형태의 아파트를 블록형 아파트라고 부른다. 외부와 경계를 짓고 자연스럽게 하나의 내부공간을 이룬다. 중정으로 모아진 복도와 현관문은 입주자들을 삶의 공통체로 결속하는 역할을 한다. 중정에 거대한 굴뚝이 보인다. 예전에 사용하다 방치된 난방용 굴뚝이다. 굴뚝을 따라 올라간 시선이 비좁은 하늘에 닿는다. 높아진 가을하늘이 쾌청하다. 삼각 형태로 마주한 복도 난간마다 화분들과 장독대 같은 살림살이가 놓였다.

계단을 따라 옥상으로 향한다. 81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은 이 아파트 곳곳에 켜켜이 서려 있다. 여느 아파트들 같았으면 이미 두세 번쯤 재건축을 했을 게다. 옥상에 오르니 산뜻한 북한산이 보인다. 지금은 주변에 높은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지만 이 아파트가 세워질 당시에는 조망이 썩 좋았을 것 같다. 중정 반대쪽 외벽에 창들이 뚫렸다. 독립된 세대마다 한쪽 방향으로 툭 터진 시야를 확보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일본인 도요다 다네오(豊田種雄)에 의해 지어진 이 아파트에서 시간의 켜를 보는 건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한국전쟁 때는 북한군과 미군이 차례로 사용했습니다. 미국은 유엔 전용 호텔로 썼는데 ‘트레머호텔’이라고 불렀죠. 그때는 4층이었는데 옥상에서 미군들이 파티를 하는 모습을 이웃 주민들이 봤다고 전합니다. 1961년에 김병조라는 희대의 사기꾼이 불하받아 5층으로 증축하고 ‘코리아관광호텔’로 이름을 바꿉니다. 1년 뒤 몰수돼 서울은행 소유를 거쳐 오늘에 이른 겁니다. 79년에는 충정로가 8차로로 확장되면서 건물 일부가 잘려나갑니다.”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의 저자 박진희(32)씨는 이 아파트의 건축사적 가치를 일찍이 알아보았다. 석사과정 때 장림종(작고·연세대 건축과) 교수와 이 아파트를 연구하면서부터다.

충정아파트 109호에서 ‘화장실문화시민연대’ 대표로 일하고 있는 표혜령(61)씨는 지난해까지 충정아파트 입주자 대표 겸 총무를 지냈다고 한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표어로 널리 알려진 ‘화장실문화시민연대’의 사무실을 찾았다. 이 아파트에서는 36평의 가장 넓은 평수를 가진 라인에 있다.

빗물 새고 생활 불편, 주민들 재건축 원해
“2003년도부터 여기서 일하고 있죠. 공간을 넓게 쓰려고 벽을 트려 했는데 일꾼들이 포기를 했답니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시멘트벽이 다이아몬드처럼 강하다고 하더군요. 제대로 야무지게 지어진 건물인 건 확실합니다. 하지만 벽이 갈라지고 터서 집집마다 새지 않는 집이 없어요. 이달 27일 주민총회를 엽니다. 주민 중 90% 이상이 재건축을 원해요. 너무 오래된 건물이라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어요.” 표혜령 대표는 재건축 사업이 조속히 진행되기를 희망했다.

아파트를 빼놓고 ‘한강의 기적’을 말할 수는 없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압축성장의 또 다른 상징이 아파트다. 분당·일산을 비롯한 신도시들의 아파트촌은 외국인들에게 관광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문화상품과 연계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에게 아파트 문화를 관광상품으로 만들 자산들이 남아 있기나 한 것인가. 전통양식이나 역사의 흔적을 지워버리기에 바빴던 우리의 근대적인 속성은 아파트 문화에서도 여실하다.

58년 성북구 종암동 언덕에 종암아파트가 우리 손으로 세워졌다. 당시만 해도 아파트는 신기한 주거양식이었다. 층층이 쌓인 집집마다 아궁이와 수세식 변기를 갖춘 화장실이 있다는 게 호기심을 자극했다. 62년 마포아파트가 완공됐을 때, 주민들이 입주하기를 꺼려서 1할밖에 채우지 못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주택청약부금을 붓고 프리미엄을 붙여서라도 분양권을 사는 데 혈안이었던 몇 년 전의 아파트 투기 장면과 너무 대조적이다.

70년 4월 8일 새벽 6시30분. 서울 마포구 창전동 와우아파트가 무너져 내렸다. 서울시가 야심 차게 추진했던 지상 5층, 15개 동 규모의 아파트 가운데 1개 동이 준공된 지 석 달 만에 붕괴된 사고였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가풀막 아래 판잣집을 덮쳤다. 이 사고로 33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쳤다. 부실공사 탓이었다.

우리는 와우아파트 붕괴현장을 잽싸게 지워버렸다. 우리 손으로 지은 최초의 아파트인 종암아파트도 93년 헐어내고 새 아파트를 세웠다. 그리고 지금, 충정로에서는 이 땅 최초의 아파트인 충정아파트가 재건축 수순을 밟고 있다. 주민들은 개발 이익을 기대한다. 당연한 일이다. 서울시에서는 충정아파트의 건축사적 가치를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최초의 아파트가 재건축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거듭나기는 요원한 일로 보인다.

한국은 산이 많은 나라다. 앞뒤 산을 가리지 않을 정도의 낮은 집을 짓고 살아야 자연과 잘 조화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주거양식인 한옥은 기와집이건 초가집이건 2층을 넘지 않았다. 특수한 종교건물만이 예외였다. 한옥은 방이나 뜰에서 산천의 풍광을 바라볼 수가 있다. 조망이 닫힌 집이라도 골목에 나오거나 언덕에 오르면 시야가 훤히 트였다.

산과 강을 가리고, 심지어 종교시설보다도 훨씬 더 높은 초고층 아파트를 선호하는 오늘날의 한국인들을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건축계 일각에서 안채와 사랑채로 나뉜 한국 전통 주거형태를 아파트에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있긴 하다. 그렇다고 한옥 아파트가 되는 건 아니다. 한옥은 역시 터 잡기와 열린 공간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는 산업화의 선물과도 같은 존재다. 선택할 뿐 좀처럼 집을 짓지 못하는 세대의 임시 거처이기도 하다. 신(新)유목민들은 네모지고 딱딱한 천막이 층층이 겹친 구조물을 아파트라고 부른다. 60년대부터 정부 주도 아래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아파트는 이제 한국인의 대표적인 주거양식으로 자리잡았다. 집은 인간의 몸과 영혼이 깃들어 쉬고 성장하는 특별한 장소다. 아파트에서 고전적인 의미의 집을 재발견하는 건 전적으로 가족구성원들의 몫이다.



그간 근대의 현장을 취재해 온 ‘사색이 머무는 공간’연재를 이번 호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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