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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살았던 나를 찾아범생이 아빠들 아름다운 일탈

인터넷을 통해 배낭여행 정보를 교류하며 의기투합한 안종구 울산대 교수 등 50대 또래들이 지난 7월 광활한 몽골의 버르노르 초원에서 말을 타고 있다. 버르노르=조용철 기자
#1. 박재균(57)씨는 50대 중반에 뒤늦게 배낭족이 됐다. 2008년 육군 준장으로 예편한 박씨는 전역 직후 새 직장을 잡는 일이 맘대로 풀리지 않아 적잖은 마음고생을 했다. 육사 33기로 1977년 임관해 31년을 군에서 보낸 그로서는 낯선 사회생활에 대한 불안감도 꽤 컸다. 그러다가 우연히 TV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접했다. 은퇴한 뒤 여행 오는 사람이 많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순간 ‘저기 가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나이 오십] 늘어나는 50대 배낭 여행족

‘경험이 없는데’라며 잠시 망설임도 있었지만 이내 맘을 먹고 준비에 나섰다. 박씨는 “막상 배낭을 메고 공항에 도착하니 왠지 젊은 사람들 보기에 쑥스러운 맘이 들더라”고 했다. 하지만 현지에서 60대, 70대, 심지어 80대 노인들까지 순례길을 찾아 걷는 걸 보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박씨는 “길을 걸으면서 새삼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보니 혼란스러운 생각이 정리되고 도전의식도 솟아났다”고 말했다.

그 뒤 박씨는 1년에 두 번 정도 해외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한 달 정도 일정이었다. 시베리아도 다녀왔고 인도와 네팔도 경험했다. 인도 여행부터는 부인도 동행했다. 처음엔 박씨를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부인도 배낭여행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 그는 “여행을 다니면서 마음도 자유로워지고 욕심도 많이 버리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 덕인지 재취업 문제도 풀려 지난해 초 한 계측기제조회사의 고문으로 자리를 잡았다. 박씨는 요즘 다음 달 부인과 함께 떠날 남미 배낭여행 준비로 바쁘다.

#2. 대기업에서 4년 전 퇴직한 구교광(55)씨는 한동안 허전한 맘을 달래기가 어려웠다. 그런 그에게 한 영화가 자극제가 됐다. 미국 영화 ‘버킷 리스트’(2008년 국내 개봉)였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달성하고 싶은 목표 리스트’라는 뜻이다. 자동차 정비사(모건 프리먼)와 재벌 사업가(잭 니컬슨)가 우연히 한 병실을 쓰게 되면서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고 ‘버킷 리스트’를 실행하기 위해 병원을 뛰쳐나가 여행길에 오르는 내용이다. 세렝게티에서 사냥하기, 문신하기, 카레이싱, 스카이 다이빙, 눈물 날 때까지 웃어 보기 등. 이들의 버킷 리스트는 보태지기도 지워지기도 한다.

이 영화를 본 구씨는 배낭여행을 결심했다. 그러곤 배낭 하나 둘러메고 인도로 출발했다. 처음 해본 배낭여행이라 제법 힘들었지만 정신적 위안과 격려가 되는 알찬 경험이었다. 그 뒤 종종 배낭여행을 떠나곤 한다. 그는 “비행기를 타는 순간 한국을 잊고 여행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된다”며 “일상에서의 일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일탈이 엔도르핀을 분출시켜 주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국에 나가서 제대로 의사소통하고 배우려고 영어공부를 꾸준히 한다”며 “배낭여행을 함으로써 그런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낭 하나 메고 훌쩍 해외로 떠나는 50대가 늘고 있다. 20~30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배낭여행계에 조용한 반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대형 여행사인 하나투어에 따르면 올 상반기 유럽 지역의 에어텔(비행기와 호텔 숙박권만 포함된 상품) 상품을 구매한 50대 고객은 160여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0명)보다 크게 늘었다. 미주 지역도 비슷하다. 에어텔은 경비를 아끼려는 배낭여행객들이 주로 찾는 상품이다. 하나투어의 조일상 대리는 “자유여행객 수치를 기준으로 50대의 비중이 매년 상승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해외 호텔 예약 전문 사이트인 호텔자바의 김형렬 이사는 “실제로 외국에 나가보면 예전에 비해 중년 배낭여행객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혼자서 모든 계획을 짜고 비행기와 호텔을 직접 예약하는 ‘자립형 여행자’까지 감안하면 50대 배낭족의 수는 더 늘어난다.

요사이는 경험을 나누고 안전도 지키기 위해 소그룹을 이뤄 여행을 떠나는 경우도 많다. 울산대 안종구(58) 교수는 지난 7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다른 50대들과 몽골로 말타기 여행을 다녀왔다. 2006년부터 매년 몽골로 말타기를 다녀온다는 조모(52)씨가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지난해 처음 정보를 얻었다. 안 교수는 “새로운 형태의 여행을 하고 싶었지만 막상 혼자 나서기에는 경험도 없어 망설여졌다”며 “경험자와 함께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조씨와 다녀온 몽골 여행은 그에겐 신선함 그 자체였다. 광활한 초원에서 나흘간 말을 타고 게르(몽골식 천막)에서 잠을 자는 생활은 점차 무기력해지던 자신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는 올해도 말타기에 다시 나섰다.

과거와 달리 50대 배낭족이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서강대 김영수(사회학) 교수는 “예전보다 사회가 풍족해지고,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늘어나다 보니 나도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예전 세대의 제1 가치가 자식농사였다면 지금 세대는 ‘자식도 중요하지만 나 스스로가 즐기는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도 큰 이유”라고 말했다.

충남대 장휘숙(심리학) 교수는 중년기의 과도기적 역할과 더불어 ‘정체감의 탐색’을 꼽았다. 장 교수는 “중년기엔 지금까지 살아온 날에 대한 회의와 함께 남은 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시기”라며 “그 과정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 ‘나를 찾는 여행’이 필요하게 되고, 배낭여행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배낭여행 전문 여행사 블루의 최윤준 과장은 “50대는 패키지 여행에 염증을 느끼는 것 같다”며 “이미 짜인 일정에 질린 중년층 여행객들이 자유여행으로 많이 갈아타는 추세”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섣불리 배낭족에 합류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재균씨는 “먼저 어느 곳을 여행하더라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가져야 한다”며 “인터넷과 책을 통해 현지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고 철저하게 계획을 짜야 고생을 덜 수 있다”고 조언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비상계획도 짜두는 게 좋다. 블루의 최윤진 과장은 “배낭여행은 패키지 여행과 달리 철도나 버스 등 현지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한다”며 “현지의 복잡한 교통 시스템을 미리 잘 파악해 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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