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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의 소음 속에서 찾은 음악 질서 끝도 시작도 없는 게 말러 교향곡

1909년 여름 토블라흐에서 말러와 딸 안나. 이때 말러는 교향곡 9번을 작곡했다. [말러 음악 자료관 제공]
말러는 항상 커다랗고 심각한 상념의 덩어리를 품고 살았던 것 같다. 그의 작품과 주변인의 증언들을 종합해 보면 첫째, 언제나 죽음의 문제를 떠올리고 있었다는 것. 둘째, 인류라는 보편적 명제를 품고 있었다는 것. 셋째, 통속성에 대해 결벽하고 강박적인 반감을 갖고 있었다는 것. 스스로 쓰거나 선택한 가곡의 가사들이 그런 태도를 보여준다. 그런 말러에 대한 생존 당시의 세평은 이러했다.

詩人의 음악 읽기 구스타프 말러-지독한 음악 듣기<2>

‘그만두면 좋을 것인데 타인의 괴로움을 생각하지도 않고 도락 삼아 괴물 같은 교향곡을 작곡하여 연주하려고 하는 사나이’. 아내였던 알마 말러가 후대에 남긴 글에 나온다. 말러는 이런 세평을 별로 개의치 않고 자신만만했던 모양이다. 결혼 전 스무 살 연하의 알마와 한창 사귈 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 지금도 많이 인용된다. 말러 왈, ‘얼마 안 가서 나의 시대가 올 것입니다’. 예지력일까 과대망상일까. 어쨌든 진짜로 그의 시대가 20세기 후반에 신드롬처럼 거창하게 찾아왔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잉글리시 호른의 깊고 아득함
지난 회에 아도르노의 언명을 인용했었다. 말러의 음악은 비현실화에 의한 독특한 현실이라고. 내게 이 말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는 방식과 동일한 것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가령 톨스토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사물과 인물은 실제의 세상으로 환원되는 반면에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속 모든 소재는 작품 안으로 녹아들어 시적 통합성과 상징성을 갖는다. 소설에 등장하는 책상이나 길거리나 인물이나 모든 재료가 도스토옙스키가 구축한 새로운 질서로 재구성되어 의미화된다. 말러의 가곡들이 그와 같다. 두 곡의 가사를 새겨본다.

캐서린 페리어와 피셔 디스카우가 부른 말러 가곡집.
<나는 이 세상에서 잊혀졌네. 오랫동안 세상과는 떨어져서 이제 그 누구도 나의 일을 알지 못하네. 아마 내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겠지. 그것은 내겐 상관이 없네… 사실 나는 이 세상에서 죽은 것이니 나는 이 세상의 동요로부터 죽었고 정적의 나라 안에서 평화를 누리네… [뤼케르트 시에 의한 다섯 편의 가곡] 중 ‘나는 이 세상에서 잊혀졌네’>

<이제 태양은 밝게 떠오르려 한다. 마치 밤새 아무 불행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불행은 나에게만 일어났던 것이다. …너는 밤을 가져서는 안 된다. 밤은 영원한 어둠 속에 꺼지지 않으면 안 된다. 나의 마음속에서 작은 등불이 꺼졌다…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중 ‘태양은 밝게 떠오른다’]

비통하다. 도저한 비관주의다. 어떻게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인간이 저런 생각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갈까. 비현실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잉글리시 호른이 깊고 아득한 정념을 품은 채 흐르고 성악 파트는 꿈꾸듯이 목소리를 펼쳐나간다. 오케스트라가 밀고 당기고 때론 거친 호흡을 내뿜으며 자취를 지우듯이 포개져 나간다. 우리의 마음속은 너무도 복잡하고 혼란스럽다고 말러의 음악이 일깨워준다. 다만 애써 피하거나 감추고 있었을 뿐이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이 세상의 모든 비참과 슬픔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삶의 평온과 행복과 기쁨을 말하는 순간이 어쩌면 모종의 환각에 의한 찰나의 감정임을. 우리가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라는 것을. 말러가 일깨워 주는 독특한 현실, 바로 그것이다.

생경한 생활음이 교향곡 이해 단서
말러의 세계관에 동감할지 여부는 각자의 몫이지만 그의 음악에 호기심을 품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다. 강렬한 것에 대한 이끌림 때문이리라. 비통과 상실감, 그리고 풍자를 핵으로 하는 그의 가곡을 맛보았다면 이제 숨을 가다듬고 교향곡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아주 재미있게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작품 속에 시끄러운 소리의 도가니를 만들어내는 말러가 정작 주위의 소음을 아주 싫어했다는 것인데 한때 그와 사귀었던 여인이 이런 증언을 남겼다. 어느 날 함께 지역 축제에 갔는데 현장은 헤아릴 수 없는 길거리 오르간, 회전목마, 사격장, 군악대 소리 등으로 아수라장이었단다. 그 소리의 지옥 앞에서 말러가 돌연히 큰 소리로 외쳤다. “들리세요? 저게 바로 내가 원하는 폴리포니(다성악)입니다! 소음, 새들의 지저귐, 폭풍우가 진동하는 소리… 전혀 다른 방향에서 테마가 들려오잖아요.

게다가 그 테마는 리듬 성격도 멜로디 성격도 다 달라요.” 좀 긴 문장의 일부만 옮긴 것인데, 말러는 하필 장터의 시끄러움 속에서 자기만의 음악적 질서와 통일성을 찾아내고 있었다. 그가 찾아낸 소음 속의 음악적 질서는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성이라고 한다. 실제 삶의 현장에서 상호 연관성 없이 하염없이 무한하게 펼쳐지는 소리의 도가니. 말러가 감탄을 표했다는 그 시끄럽고 생경한 생활음이 바로 말러 교향곡을 이해하는 단서일 수도 있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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