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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아도 떠오르는 고향역...‘무작정 상경’ 세대의 영원한 안식처

올 추석에도 어김없이 고향 가는 길은 복잡하고 돌아오는 길은 하염없이 밀릴 것이다. 이미 가문에 대한 의식이 현격하게 희미해졌건만, 신주를 모시고 지내는 차례와 성묘를 위해 이 엄청난 교통지옥을 감수하는 상황은 해마다 반복된다.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모르긴 몰라도 20년 내로 현격하게 달라질 것이다. 어찌 보면 지금의 40~50대가 이런 방식으로 고향을 찾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영미의 7080 노래방 <26> 흐릿해지는 고향의 기억

생각해 보면 명절 교통지옥은 7080세대와 함께 본격화되어 이들과 함께 사라질 운명일 수도 있다. 1950년대의 전쟁, 1960년대의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온 국민의 거주지를 복잡하게 흐트러뜨렸다. 19세기만 하더라도 그저 태어난 곳에서 평생 살다가 그 땅에 묻히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삶이었다.

그런데 전쟁 통에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가 낯선 땅에 정착했다. 산업화가 본격화되자 도시로 일거리를 찾아 몰려다녔고,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집은 아이들을 잘 키워보겠다며 서울로 유학 보냈다. 교과서에 ‘시골의 할머니댁’ 같은 표현이 너무도 관행적으로 사용되던 시절이 바로 이들 세대의 시대였다. 그러니 이들 세대는 명절 때마다 ‘시골의 할머니댁’과 ‘노부모와 친척들이 사는 시골’에 모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기차에 매달려서라도 고향에는 무조건 가야 하는 것이었다.

“1.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 역 / 이쁜이 곱분이 모두 나와 반겨 주겠지 / 달려라 고향 열차 설레는 가슴 안고 / 눈 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 역”(나훈아의 ‘고향 역’, 1971, 임종수 작사·작곡)

화자의 머릿속에는 상경할 때 어머니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던 작은 고향 역과 아직도 그곳에 사는 시골 친구들이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가 몸을 실은 기차는 아마 터질 듯한 만원의 완행열차일 것이다. 이 노래가 나올 즈음 서울내기 대학생 청년들은 트윈폴리오나 뚜아에무아를 좋아했지만, 중학교 교복 벗어 던진 채 ‘무작정 상경’해 영등포와 구로에서 기름밥으로 살아가는 이농민 노동자들은 나훈아와 남진의 이런 노래를 좋아했다. 몇 시간씩 줄을 서서 어렵사리 표를 구해 귀향 기차에 올라탄, 손톱 밑이 까만 이들의 거친 손에는 어린 동생들에게 안겨 줄 학용품 따위가 들려있을 것이다.

고향에서 기다리는 ‘이쁜이’가 없다 해도, 어쨌든 고향 가는 길은 즐거웠을 것이다. 농사 지어 먹고살 수 없으니 올라오기는 했으나, 서울은 돈 없고 학력 낮고 연줄 없는 사람이 편하게 잘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을 테고, 서울살이가 힘들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커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시골로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가난으로 진저리가 쳐져 상경했는데 아무 대안 없이 어떻게 귀향을 한단 말인가. 그저 마음속 그리움으로만 ‘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 사랑하는 부모 형제 이 몸을 기다려’(나훈아의 ‘그리운 고향’), ‘멋쟁이 높은 빌딩 으시대지만 /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멋이지만 /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 함께면 / 나는 좋아 나는 좋아 님과 함께면’(남진의 ‘님과 함께’),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을 것이다
.
이들 트로트 가수의 고향 노래가 이렇게 절실하다면, 좀 여유 있는 서울내기 청소년들이 좋아한 고향 노래는 수적으로도 드물 뿐 아니라 느낌도 아주 ‘쿨하다’.
“하늘에 흐르는 구름이 내 맘이라면 / 두둥실 날아서 다녀나 오리라만은 내 고향 / 물 맑고 산 높은 곳 끝없이 넓은 들에 / 뛰놀던 어린 시절 돌아가고 싶어라 / 풀잎을 베개 삼아 밤 새워 별을 헤며 / 내 꿈을 키우던 곳 언제나 다시 갈까”(홍민의 ‘망향’, 1971, 이종환 작사, 외국 곡)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란 대중가요에서 늘 있어왔던 내용이니 그냥 그런 노래 하나를 지은 느낌이 강하다. 그나마 포크 가수들에게 고향 노래는 그리 많지 않다. 고향이 서울이니 새삼 고향타령 할 것도 없고, 서울살이가 그토록 고달픈 것도 아니었으니 고향이 별로 그립지도 않았을 터이다.

도시가 아닌 농어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 고향에 노부모가 생존해 계시는 사람은 이제 점점 줄고 있다. 이런 내용의 노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1. 참 오랜만에 돌아온 내 고향 / 집 뜰엔 변함없이 많은 꽃들 / 기와지붕 위 더 자란 미루나무 / 그 가지 한구석엔 까치집 여전하네 / 참 오랜만이야 / 낯선 사람 보듯 짖어대는 누렁아 / 나도 이 집에 한 식구란다 / 아침마다 너에게 밥 주시는 어머니 아버지 / 그 두 분의 사랑하는 막내아들 / 나도 한 식구란다 / (후렴) 너무 오랜 동안 잊고 지낸 탓일까 / 너무 오랜 동안 바라던 탓일까 / 오늘 따라 다르네 / 여느 때와 다르네

2. 사랑방 부엌엔 쇠죽 쑤시는 할아버지 / 정정하신 할아버지 오래 사세요 / 고추잠자리 따라 뛰노는 내 조카들과 / 아직 뭘 잘 모르는 두 살짜리 내 아들의 / 어울림이 좋은 날이야 / 옹기종기 모여앉아 송편 빚는 며느리들 /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시간은 흘러가는데 / 적적하던 내 고향집 오늘은 북적대지만 / 우리 모두 떠나면 얼마나 외로우실까 / 또 우실지도 몰라 / (후렴)” (안치환<사진>의 ‘고향 집에서’, 1995, 안치환 작사·작곡)

언제까지나 청년일 것 같았던 안치환도 나이를 헤아려보니 벌써 40대 후반이다. 노래 속의 ‘두 살짜리’도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앞으로 10~20년 후 이 아이가 중장년기에 접어들 때쯤, 이런 풍경도 그리 흔하지 않은 것이 될 것이다. 7080세대의 시골 노부모님들은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나실 테고, 노년이 된 7080세대와 장년의 자녀는 모두 도시 거주자가 될 터이다. 자녀가 아예 외국에 가 있어 명절 때조차 만나기 힘들 수도 있고, 결혼하지 않은 싱글이 많아지면서 명절 행사란 게 시들해질 수도 있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60년을 살아온 우리 엄마가 아버지 돌아가시자마자 올 추석부터 명절 간소화를 주장하시는 걸 보니, 변화는 벌써 시작되고 있다.




이영미씨는 대중예술평론가다.『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와 『광화문 연가』 등 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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