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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통과 한-러 가스관, 개성공단 효과 낳게 해야

1994년 모스크바 특파원 부임을 준비하면서 들은 말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 ‘소련에 묶이면 그걸로 끝이다’. 모 일본 회사의 모스크바 지사장이었다는 사람이 ‘되는 일 하나 없는 소련에서 일하는 신세’를 한탄하며 했다는 말이다. 뭣 좀 있을까 싶어 기웃거리다 결국 수렁에 빠질 뿐이었던 개인 체험담을 과장한 말이었을 것이다.

안성규 칼럼

돌이켜 보면 그 한탄은 18년이 지났어도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인다. 속된 말로 한국이 러시아에서 뭘 건졌을까. 한·러 교역과 투자가 늘었다지만 뜯어보면 건강한 구조는 아니다. 어느 외교관은 “한국이 대(對)러 외교를 위해 하는 게 뭐 있느냐”고 냉소한다. 북핵 6자회담장이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때 유엔 안보리에서 보여준 러시아의 처신도 ‘뭐 이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한·러는 겉으론 ‘친구’라고 하지만 실제론 데면데면하다.

이런 현실은 러시아에 애정을 갖고, 특히 자원 보고인 시베리아에 한국의 미래가 걸렸다고 여기는 이들에겐 안타까움이다. 중국보다 먼저 외교 관계를 맺었지만 오늘 한·중, 한·러 관계의 저울추가 얼마나 기우는지를 보며 심란해 한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길 기다릴 뿐이다.

그렇지만 실제론 체념하고 있다. 북한 때문이다. 뭘 하려 해도 북한에 막힌다. 대러 사업 1순위로 꼽히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한반도 종단철도(TKR) 연결, 가스관 혹은 송유관 사업 같은 게 모두 북한에 막혀 있다.

그런데 요즘 한-러 가스관 때문에 서광이 비치는 듯하다. 가스관이 북에 놓이면 철길도 뚫리고 남북 화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다. 분위기는 고조돼 간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하고, 이어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가스관을 겨냥해 “11월 중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며 기대를 부풀렸을 당시엔 러시아가 ‘가스관 회담 형식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김 위원장을 극동으로 초대해 3자 정상회담을 한다’는 시나리오까지 떠돌았다. 8일 추석 좌담회에서 이 대통령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기대를 팽창시켰다.

쌍수로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2% 더 생각하면 어떨까. 가스관은 남·북·러 모두에 이익이다. 남한은 에너지 확보를, 북한은 1억 달러(추정) 통과료를, 러시아는 가스료를 각각 챙긴다. 그 과정에서 남북 관계도 당연히 개선될 것이란 희망이 생긴다. 그러나 여전히 꺼림칙하다. ‘북한이 파이프를 잠그면 어쩌나’. 툭하면 험하게 돌변하는 북한의 행태를 볼 때 ‘러시아의 공급 보장’만으론 약하다.

개성공단에 시사점이 있다. 남북관계 악화와 무관하다는 듯 공단은 성업 중이다. 북한 인력도 꾸준히 늘어 6월 현재 4만7000여 명이 됐다. 그들은 공단에서 시장을 배우고 남한을 배운다. 초코파이에 친숙해진 그들은 은연 중 남한과 시장경제를 북에 전하는 역할을 한다. 가스관 통과료의 반도 안 되는 돈(월급 63달러 기준 때 연 3500만 달러 지불)만 주고 북한에 시장경제를 주입하는 셈이다. 의도했는지 모르지만 공단은 개성에 놓여진 트로이의 목마다.

가스관도 그렇게 만들 수 있다. 지금 우리 관심은 ‘가스관 안보’에 쏠린다. 문제가 생기면 러시아가 공급을 보장하거나 북한에 압력을 넣도록 장치를 만드는 데 골몰하는 인상이다. 그런 양상은 ‘북한에 인질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 컸던 개성공단 초기 단계와 비슷하다. 그런데도 개성공단은 지금처럼 컸다. 어떻게 하면 가스관도 그렇게 키울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 모델이 있다. 러시아 석유·가스가 유럽까지 가면서 경유지 우크라이나에 여러 지선을 남긴다. 주민에게 가스를 공급하는 지선이 많을수록 외부 영향은 더 크게 된다. 그런데 북한 경유 가스관의 경로는 산과 들을 지나 도시를 우회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대도시는 보상비 같은 문제로 비용이 훨씬 더 들기 때문이다. 그런 단순 통과는 돈만 떨구고 자칫 ‘퍼주기 논란’의 씨앗도 될 수 있다.
가스관이 함흥·원산·평양을 들러 북한 주민에게 가스를 공급하도록 만들면 어떨까. 아직도 그 불편한 석탄을 쓰는 북한 주민은 깔끔한 가스를 환영할 것이다. 가스 발전소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 ‘대한민국 표 가스’가 북한 주민의 안방을 따듯하게 하고 음식을 데울 수 있다면 그들이 안전판 역할도 할 것이다. 돈이 든다면 통일 사전 비용으로 쳐도 된다. 가스관 안보를 넘는 전향적 사고는 남북 화해·협력과 북한 변화까지 촉진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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