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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는 과거에서 비롯, 옛날 이야기 많이 아는 게 힘”

나가사키 다카시(長崎<5C1A>志):만화 각본가, 편집자. 1980년 소학관에 입사해 빅 코믹, 빅 코믹 오리지널, 소년 선데이, 빅 코믹 스페리올 등의 편집부를 거쳐 주간 빅 코믹 스피릿츠의 편집장을 지내고 2001년 독립했다. 1983년 우라사와 나오키(浦澤直樹)를 발굴해 각본가로서 ‘마스터 키튼’, 스토리 공동 제작자로서 ‘몬스터’ ‘20세기 소년’ ‘플루토’, 최신작 ‘빌리배트’ 등 거의 모든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 편집자로서 데즈카 오사무를 비롯해 사이토 다카오, 시라토 산페이, 히로가네 겐시 등 많은 유명 만화가를 담당했고, 그 밖에 다양한 만화가와 콤비를 이뤄 각본가로 활동했다. ‘에도가와 케이시’라는 필명으로 한국 만화가 권가야와 최초의 한·일 합작만화 ‘푸른 길’을 집필하기도 했다.
2008년부터 2009년에 걸쳐 3부작으로 개봉된 일본 영화 ‘20세기 소년’은 놀라운 영화다. 가라사와 도시아키·도요카와 에쓰시·가가와 데루유키·사사키 구라노스케·도키와 다카코·구로키 히토미 등 일본의 국민배우들이 총출동하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면 장동건·차승원·설경구·송강호·이영애·이미숙 등이 주·조연을 맡은 꼴이다. 일본 영화사상 전례 없는 3부작에 사상 최고의 제작비 60억 엔. 도쿄는 물론 뉴욕과 런던, 파리, 베이징, 방콕 등 전 세계 대도시를 누비는 거대한 스케일에 총 7시간에 이르는 러닝타임. 한 편의 영화에 쏟아부어진 거대한 인적, 물적 투자 규모는 원작에 대한 세간의 관심과 기대를 짐작하게 한다.

일본 대중문화 최고의스토리텔러 나가사키 다카시

SF 형식을 빌려 거대 권력과의 싸움을 배경으로 인간의 내면을 성찰하는 이 장편 대서사극의 원작은 우라사와 나오키(浦澤直樹)의 동명 만화다.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주간 ‘빅 코믹 스피릿츠’에 연재되며 12개국에 수출돼 2000만 부 이상 팔린 초히트작이다. 그는 세계사와 문명에 대한 방대한 전문지식을 아우른 만화 ‘마스터 키튼’ ‘몬스터’ 등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일본의 대표적 만화가. 그런 그를 편집자로서 발굴하고 30년 동안 모든 작품의 스토리를 공동 개발한 사람이 있다. 바로 영화 ‘20세기 소년’의 각본가이기도 한 나가사키 다카시(長崎<5C1A>志). 만화왕국 일본에서도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통하는 그가 생각하는 좋은 이야기란 뭘까.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학산문화사 초청으로 최근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20세기 소년’ 등은 세계적으로 히트했다. 독자를 매료시키는 아이디어는 어디서 찾나.
“모든 이야기는 과거의 다른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잘 만들어진 이야기를 알고 있는가가 관건이다. 전혀 달라 보이는 이야기도 하나로 통하는 부분을 간파할 수 있고, 그 점을 잘 살린다면 반드시 재미있는 것을 만들 수 있다. 우리는 과거의 많은 스토리를 알고 있고 어떤 이야기가 세계적 인기를 얻는지도 알고 있다. 결국 얼마나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느냐, 또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1「 BILLY BAT」©Naoki Urasawa/Studio NutsTakashi NagasakiKodansha Ltd.2 「푸른길」©권가야에도가와 케이시 (주)학산문화사 3 영화 20세기 소년 공식포스터
-‘플루토’가 데즈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을 리메이크한 작품이지만 어린이 만화가 아닌 어른 만화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것도 같은 맥락인가.
“‘철완 아톰’은 일본에서도 다들 어린이용이라고 생각하지만 잘 읽어 보면 어른 만화다. 그래서 사실은 어른 만화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원작은 자기가 가장 센 로봇임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로봇들을 차례로 부셔가던 플루토에게 점차 ‘마음’이 생겨나 다른 로봇을 부수는 것이 잘못임을 깨닫는 이야기다. 로봇들이 죽어간다는 점에 착안해 ‘로봇 연속살인 사건’이라는 플롯을 설정해 이야기에 전혀 다른 각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름과 설정을 달리했으면 아무도 ‘철완 아톰’이라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굳이 이름을 빌려온 것은 우리에게만큼은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와 동격인 데즈카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방대한 전문지식을 작품에 녹여내는 솜씨가 놀랍다. 한·일 합작만화 ‘푸른 길’에서는 한국의 역사와 신화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선보였는데.
“궁금한 것을 조사하는 것이 취미다. 모르고 죽는 것이 적은 쪽이 행복한 것 아닌가. 최근 알이 아니라 새끼를 낳은 공룡화석이 발견됐다는 뉴스가 있었다. 공룡은 파충류인 줄로만 알았는데 고래 같은 녀석도 있었다니, 줄곧 속아 살아온 거다. 그런 놀라움이 있다면 조사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레 그 결과가 작품에 반영된다. ‘푸른 길’도 그렇다. 한·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면 왜 싸웠는지 양 방향에서 다 조사해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다. 일본과 한국의 역사관이 다른 것을 알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작업이 의미 있었다. 일본인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더라. 그러니 공부해야 하고, 공부한다면 역시 신화의 시대부터 시작해야 이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 지구를 구하는 이야기인 ‘20세기 소년’처럼 일본 대중문화 콘텐트에는 유독 보통 사람에게 삶의 희망과 용기를 주는 내용이 많다.
“대중문화의 주된 소비자는 지금은 가진 게 없지만 미래에 뭔가를 얻으려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타깃이니 역시 제로부터 뭔가를 획득해가는 것이 드라마가 된다. 만화란 원래 대중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 매체이기에 더욱 그렇다. 아무 노력 없이 잘되는 사람의 이야기는 보고 싶지 않은가. 못생긴 남자가 예쁜 여자와 맺어지는 것이 재미있는 법이다. 한국에선 엄청 멋진 남자가 주인공인 경우도 많은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히트의 법칙이란 독자가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보통 자기가 인생의 승자가 아닌 패자라 생각하기 때문에 패자 쪽을 향하는 편이 마케팅에 유리하다. 콜라를 먹는 것은 목마른 사람인 것과 같은 이치다.”

-최신작 ‘빌리배트’는 스케일이 더 거대해졌다. 전 세계 역사적 사건의 현장을 종횡무진하며 전개되는 복잡한 미스터리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다.
“얼마 전 일본에서 제 7권이 출간되어 독자들이 겨우 스토리를 따라가게 됐다. 몇 가지 복선이 정리되는 것이 7권이니 참고 따라와주길 바란다.”

-결국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작품인가.
“인간의 역사, 인간은 무엇인가를 그려 가려는 거다. 인간이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대 이집트는 조형은 뛰어났어도 그림을 입체적으로 그리지 못했다. 하지만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에서는 얼굴을 정면에서 그릴 수 있었다. 입체를 평면으로 옮길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이 머리가 좋아지게 된 것이란 생각에 테마가 있다. 그렇다면 최초에 그림을 그린 것은 누구냐, 그 최초의 그림이 박쥐였다면 재미있지 않을까 설정한 거다. 이런 얘기까지 하면 안 되는데…(웃음).”

-만화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했었다. 아톰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이 로봇 선진국이 됐다는 견해도 있을 정도로 일본인에게 만화는 단순한 오락이 아닌 듯한데.
“맞는 얘기다. 진화란 한 명의 천재가 우연히 해놓은 것을 모두가 흉내 내면서 이뤄지는 것이고, 우연히 데즈카가 일본에 있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일본은 별 볼일 없는 나라였다. 그때 데즈카가 나타나 21세기가 이렇게 멋진 세계일 거라 보여주었다. 당시엔 오락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모두 데즈카 작품을 함께 보며 미래에 대한 꿈을 키우고 가능성을 발견해 갔던 것 같다. 일본이 만화강국이 된 것도 애초 데즈카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에서도 만화에 대한 인식이 나쁘고 배척 당했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도 너무 칭찬만 받으면 성장하지 않듯 만화도 늘 깨져 왔기 때문에 오히려 분발할 수 있었고 그러는 가운데 좋은 작품들이 나오고 자연히 인식도 바뀐 것 같다.”

-일본에는 ‘맛의 달인’ ‘시마 과장’ ‘못 말리는 낚시광’ 등 수십 년간 연재되는 장수 만화들이 있다. 인간이 한 만화를 줄곧 읽으며 성장해 간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 성장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소년점프사 관계자가 언젠가 ‘사람이 왜 성장해야만 하느냐’를 화두로 던진 적이 있다. 소년점프 독자는 소년만이 아니라 중년도 노년도 있는데, 그들은 성장을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성장하는 것이 뭐가 좋으냐고 반문할 정도로 확신이 강하다.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물며 성장하지 않는 것도 어떤 측면에서 봤을 때 대단한 일이다.”

-한국 만화를 읽은 적이 있는지.
“번역되지 않기 때문에 거의 본 적이 없다. 최근 영화 ‘이끼’를 봤는데 만화가 원작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매우 깊은 테마를 재미있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의 매우 심오한 테마를 추적해 들어간 것인데, 일본이라면 기독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이해하는 사람이 적을 것이다. 그런 심오한 테마의 작품이 히트한다니 한국에 좋은 독자가 얼마나 많다는 건지 놀랍고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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