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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의 ART BOOK 깊이 읽기 <24> 마이클 프레인의 곤두박질

1.마이클 프레인의 장편소설 39곤두박질39(열린책들, 2010)
과학의 발달로 우리는 가장 큰 것과 가장 작은 것, 모두를 잴 수 있게 됐다. 10억 분의 1m인 나노미터(nm), 빛이 1초 동안 30만㎞를 달리는 것을 기준으로 하는 광년. 이것들은 모두 무한의 세계를 유한의 세계로 편입시켜 통제하는 장치들이다. 그러나 어떤 과학으로도 측량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인간의 욕망이다. 몇 천억원의 자산가도 자신의 부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아직 자산의 측정 단위가 ‘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에 거꾸로 무한한 욕망을 측정 가능한 유한의 세계로 끌어들여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한욕망의 지옥이 도처에 큰 아가리를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마이클 프레인의 장편소설 『곤두박질』(열린책들, 2010)은 무한욕망의 지옥에 빠져버린 한 지식인의 이야기다. 그리고 중심에는 그림이 있다.

그림 한 점 때문에...청렴한 철학자, 무한욕망 지옥에 빠지다

미술 작품은 문학, 음악, 연극과 달리 구체적 크기와 양감을 가진 물건으로 존재하는, 배타적 소유가 가능한 유일한 예술품이다. 그러므로 투자의 대상, 도난과 위조의 대상, 범죄의 대상, 탐욕의 대상이 된다. 미술품과 관련된 양대 범죄인 위작과 도난을 다룬 『위작과 도난의 미술사』를 쓴 이연식은 절대적으로 그림을 너무 사랑해 혼자만 감상하려 명화를 훔치는 낭만적 도둑 따위는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단지 돈을 노리는 탐욕스러운 절도범이 있을 뿐이다.

주인공 마틴 클레이는 16세기 네덜란드 유명론에 관한 책을 쓰고 있는 철학자다. 청렴한 철학자를 사기범으로 전락시키고 인생에서 곤두박질하게 만든 것은 그림에 대한 탐욕이었다. 집필에 전념하기 위해 내려간 시골 마을. 내키지 않는 자리에 초청된 그는 한눈에 시골 지주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그림 중 알려지지 않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the Elder·1525~1569)의 작품이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그 순간의 확신이 운명을 결정해버렸다. 어리석은 시골 지주로부터 ‘벽난로에 검댕이 떨어지는 걸 막는 용도로 쓰이던’ 명작을 구제해 “공익사업이자 공공의 복지에 기여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된다. 그 그림이 하필이면 브뤼헐의 그림인 것은 일종의 블랙코미디 같은 소설의 성격과 일맥상통한다.

2.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the Elder·1525~1569)의 The Peasant Wedding’(1568),Museum of Art History in Vienna
‘농민의 결혼’ ‘바보들의 천국’ ‘교수대 위의 까치’ ‘이카루스의 추락’ 등의 그림으로 유명한 브뤼헐은 ‘종교적 헌신의 꾸물거리는 메아리를 성공리에 제거한 최초의 예술가’다. 16세기 회화에서 여전히 중요하게 다루어졌던 종교적, 신화적 사건을 브뤼헐은 분주한 일상 세계 속에 위치시킨다. 그림 ‘이카루스의 추락’에서 해가 쨍쨍한 날, 햇살에 밀랍이 녹아내려 이카루스는 비극적 추락을 한다. 그러나 해가 좋은 날은 농부가 일하기 좋은 날. 멀리서 이카루스가 추락하건 말건 농부는 밭을 가는 데 여념이 없다.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일상에 비하면 오히려 신화가 코미디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브뤼헐은 ‘자유사상가, 휴머니스트, 웃음이 많은 염세주의 철학자’이며,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추종자로 플랑드르 회화 전통을 계승한 풍속화가였다. 무엇보다 브뤼헐은 네덜란드를, 특히 네덜란드의 농민들을 사랑했다. 브뤼헐은 친구와 어울려 시골 사람들 사는 모습을 구경하러 다니곤 했다. 시골 교회에 큰 미사나 결혼식에 허름한 차림으로 친척 행세를 하면서 끼어 앉아 시골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떠들썩하게 노는 모습을 눈여겨보았다가 그림으로 그렸다. 그는 농민들의 어리석고 무지한 행동, 지혜롭고 선한 행동을 모두 보았다. 그의 시선은 따뜻했다.

그러나 브뤼헐의 낙천적 세속주의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 개신교인 네덜란드는 전통 가톨릭을 표방하는 스페인 펠리페 2세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1567년 펠리페 2세는 스페인의 정예군인 6만 명을 네덜란드에 투입했다. 나라 전체가 피비린내에 젖었다. 같은 해 브뤼헐은 ‘게으름뱅이 천국’을 그렸다. 이 그림에 나오는 것 같은 평화롭고 한가한 풍경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그러나 그림 속에서는 먹을 것이 넘쳐나고 군인도, 농민도, 학자도 모두 게으름뱅이가 되어 빈둥거리고 있다. 소박하고 구체적인 이상향이다. 이런 의미에서 브뤼헐은 “사실을 변형해 자신이 표방하는 이상에 맞춘 화가”라고 불릴 만했다.

역사의 누락 부분은 언제나 상상력이 자라나는 틈새가 된다. 이 틈새에서는 망상과 착각이라는 잡초도 함께 자란다. 당시의 복잡한 상황에서 브뤼헐이 취했을 정치적, 종교적 입장을 추론해 보자. 이 과정에서 브뤼헐의 존재하지 않는 그림은 브뤼헐의 사라진 그림이 되고, 주인공 자신은 ‘마침내 브뤼헐의 수수께끼를 푼 사람’이 된다. 이때 작동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바로 돈에 대한 욕망과 먹물 특유의 명예욕이다. 주어진 것 이상, 정당한 노력의 대가 이상을 원하는 욕망의 원래 이름은 탐욕이다.

탐욕은 진화했다. 필리스 A 티클은 『탐욕』이라는 책에서 근대 이전 사회에서는 식욕, 물건과 금전에 대한 집착 같은 물리적 탐욕이 문제였다고 한다. 종교적, 도덕적 경계의 대상이던 ‘탐욕’은 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욕망이라는 말로 대체된다. 탐욕은 즉각적 물질성으로부터 멀어져 추상화됨과 동시에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게 되었다. 욕망이 없는 소비자, 소비의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상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의미한 존재다. 탐욕은 욕망 혹은 요구라는 말로 명패를 바꾸어 달고 버젓이 우리를 지배하는 필요악이 됐다.

브뤼헐의 시대만 해도 ‘탐욕’은 일곱 가지 대죄 중 하나였다. 브뤼헐은 ‘탐욕’이라는 주제로 두 점의 판화를 제작한다. 한 작품에서 ‘탐욕’은 넓은 치마로 오지랖을 과시하며 모든 악행을 주관하는 여왕으로 등장한다. 근심·공포·불안·거짓·두려움·사기·위조·불면·비열 등은 ‘어머니인 탐욕의 시커먼 젖을 먹고 자란 새끼들’로 반드시 탐욕의 뒤를 따른다. 글이 전개될수록 ‘탐욕’의 종합세트가 탐욕이 불러일으킨 헛된 희망을 몰아내버린다.

현실은 만만치 않아 철학자인 주인공이 하는 짓이라고는 식자우환의 하나밖에 모르는 먹물들의 전형적 헛물 켜기뿐이다. 무지한 시골 지주는 지적인 철학자를 이용해 소유권이 문제가 되는 작품의 상속세를 피하려고 한 것이 밝혀진다. 기대와 예측과 희망이 남김없이 배신당하고만 먹물의 소심한 꼼수는 쓴웃음을 자아낼 뿐이다. 남은 것은 부끄러운 ‘곤두박질’뿐이다. 누구를 탓하랴! “나 자신의 부정직함을 이용해 나를 꾀어 들이고” “나 자신의 허영심을 이용해 내 눈을 멀게” 한 것도 자기 자신이었는데. 1인칭 화자의 시선을 철저히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소설은 ‘탐욕’의 모험에 나선 주인공을 코믹하게 풍자하면서도 끌어안는다는 점에서 브뤼헐의 그림과 닮아 있다.



이진숙씨는 러시아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미술 작품에서 느낀 감동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미술의 빅뱅』의 저자.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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