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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의 세상읽기] 정치를 바꾸는 상식의 힘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상식(Common Sense)』이 미국 독립혁명의 불씨가 됐다는 것은 미국인들의 상식이다. 상식은 1776년 토머스 페인이 쓴 46쪽짜리 팸플릿의 제목이다. 군주제와 세습적 신분제 사회인 영국으로부터 미국이 독립하는 것이 어째서 상식인지를 사회계약론에 입각해 알기 쉽게 설명한 일종의 대중 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페인이 원래 생각한 책 제목은 ‘평범한 진실(Plain Truth)’이었다. 그러나 그런 재미없는 제목으로는 책이 안 팔린다는 주변의 권유를 받아들여 섹시하게 바꾼 제목이 상식이다. 자유와 부(富)를 찾아 영국에서 신대륙으로 건너온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지식이란 뉘앙스를 풍기면서 페인의 책은 ‘대박’을 터뜨렸다. 출간 첫 해에만 10만 부가 팔렸다. 두 세기 반이 지난 지금도 『상식』은 미국인들의 교양 필독서 목록에 올라 있다. 상식이란 어휘의 마력을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일화다.









[일러스트=김회룡]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불기 시작한 정치권의 태풍이 그의 불출마 선언으로 일단 잦아드는 분위기다. 그가 후보로 나선다면 어떤 대결 구도에서도 압승하는 것으로 모든 여론조사에서 나타나자 지난 며칠간 기성 정치권은 거의 패닉 상태였다. 여야 할 것 없이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완전히 고양이 앞의 생쥐 꼴이었다. ‘안철수 신드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 교수는 진보와 보수 대신 상식과 비상식의 이분법을 내세우고 있다. 그에게 정계 입문을 적극 권유한 것으로 알려진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기준을 나는 균형과 합리로 본다”고 했더니 안 교수는 “저는 상식과 비상식으로 본다”며 “제가 안보는 보수고, 경제는 진보인데, 그럼 제가 보수입니까, 진보입니까”라고 되물었다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틀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 쪽이든 상식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들린다. 안보 측면에서는 보수 쪽의 주장이, 경제 측면에서는 진보 쪽의 주장이 상식에 가깝다고 안 교수는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정치를 하게 된다면 구태의연한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 상식에 부합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보통 사람이라면 으레 가지고 있을 일반적 지식이나 정상적 판단력이 상식의 사전적 정의다. 별도의 탐구나 수련 과정을 거쳐야만 쌓을 수 있는 전문지식과 달리 특별한 노력 없이도 대부분의 사람이 저절로 터득하게 되는 보편적 지식이나 식견이 상식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는 시각, 미각, 청각, 후각, 촉각 외에 한 가지 중요한 감각이 더 있다고 봤다. 신체의 오감(五感)이 교차하는 지점에 정신의 ‘공통 감각’, 즉 상식이 있다고 본 것이다.



 상식의 힘은 당위성과 보편성에서 나온다. 상식이 없다는 것은 정상적 인간이 아니라는 뜻이나 다름없다. ‘최소한의 상식도 없는 사람’이란 표현은 욕에 가깝다. ‘비(非)상식’이나 ‘몰(沒)상식’은 반대 의견을 공박하는 효과적인 수사적 도구다. 토론이나 논쟁에서 상대방을 공격할 때 “상식과 맞지 않는다”거나 “상식에 어긋난다”는 말을 자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상식의 역사』를 쓴 소피아 로젠펠드(미 버지니아대·역사학) 교수는 “상식은 영원하고 보편적이며 어떤 이데올로기에서도 초연한 무오류의 지혜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며 “바로 이 점에 상식의 위력이 있다”고 말한다. 로젠펠드 교수는 상식으로 위장된 편견과 포퓰리즘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이 책을 썼지만 정치인이 상식의 유혹에서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던 것도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었다.



 안 교수가 상식과 비상식의 이분법을 말하는 것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기성 정치권이 보여주고 있는 행태가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그에 대한 폭발적 지지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방증이지만 그의 인식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낡은 이념에 사로잡힌 구닥다리 꼰대 스타일의 정치 행태에 세계 최고의 학력 수준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진저리를 치고 있다. 구질구질하고, 역겹고, 멋대가리 없고, 치졸한 데다 더럽기까지 한 꼴통 보수와 꼴통 진보의 비상식에 분노하고 있다. 서로 의견이 달라도 얘기가 통해야 상식이지만 한국 정치권에는 나의 상식과 너의 상식이 따로 있다. 진짜 상식은 설 자리가 없다.



 서울시장 후보 여론조사에서 안 교수는 박원순 변호사를 비교할 수도 없는 격차로 앞섰다. 당선 가능성으로 보면 박 변호사가 양보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안 교수는 “박 변호사는 서울시장 직을 누구보다 잘 수행할 분이라고 생각한다”며 깨끗이 양보했다. 미래를 위한 계산된 양보라는 시각도 있을 수 있지만 기성 정치권의 상식으로는 죽었다 깨도 하기 힘든 결정이다. 상식의 허를 찌른 안 교수의 선택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상식의 의미를 일깨워준 것만으로도 그는 한국 정치의 업그레이드에 기여했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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