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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시시각각] 유럽·미국의 당파성 고민







김환영
중앙SUNDAY 국제·지식에디터




시장이나 정치는 영원하다. 문화와 문명이 있는 곳에 시장이 있고 정치가 있다. 하지만 자유 시장경제와 민주 정당정치의 역사는 수백 년에 불과하다. 정당정치가 시장경제보다 취약하다. 시장에서는 호황·불황이라는 주기적 등락이 있지만, 정당정치는 1960년대 이래 끝이 안 보이는 하락이 계속됐다고 많은 학자가 진단한다.



 민주주의의 요람인 유럽과 미국에서 투표율, 당원 수가 계속 줄고 있다. 대중 정당인 유럽·미국 정당의 당원 수가 계속 준다는 것은 심각한 현상이다. 대중으로부터 소외된 정당은 정당이 아니다. 서구 유권자들이 정당을 외면하는 이유는 ‘정당 변화가 가능하다’ ‘정당을 매개로 하면 인간의 의지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퇴색했기 때문이다. 서구 정당은 이제 신뢰가 아니라 불신의 대상이다.



 정당의 존재 근거는 당파성(黨派性· partisanship)이다. 정치는 무리를 지어 하는 정당한 싸움이다. 정당정치의 위기는 당파성의 위기다. 유럽과 미국이 정당 위기를 겪고 있지만 당파성 위기의 본질은 각기 다르다. 유럽에선 당파성이 엷어졌다는 게 문제다. 당파성이 사라진 이유는 정당들 간의 차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정당들이 차별화되지 않았는데 열렬한 당파심으로 무장한 지지자들이 생겨날 이유가 없다.



 미국에선 당파성이 지나치다는 게 문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탈당파적 지도자(post-partisan leader)를 표방하며 대선에서 승리했다. 당선 이후 미국 내 당파성은 오히려 심화됐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미국 내 무당파의 수가 민주당·공화당 지지자를 추월했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긍정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아직은 아니다. 무당파가 민주당·공화당 지지층을 잠식했다는 것은 미국에서 수적으로는 당파성이 줄고, 당파성의 농도는 증폭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파성은 유럽처럼 엷어지는 것도 문제고 미국처럼 극렬해지는 것도 문제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정치에서 당파성을 배제하려고 했다. 수사적인 의미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애초에 불가능한 시도였다. 그래서 파당성은 좋은 것이며 미국 정치사에서 순기능적으로 작용해온 요소라는 ‘반성’이 일각에서 일고 있다. 공화·민주 양당 간에 파당적 분쟁은 불가피하며 파당성이 건강한 정치와 사회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쁠 수도 있는 것을 양성화(陽性化)해 좋은 것으로 만드는 게 미국의 특장(特長)이다. 건강한 파당성이라는 미국의 장점이 위기를 맞은 것이다.



 정당정치의 위기와 별도로 정당의 위기가 있다. 세계 정당의 역사에서 무수한 정당들이 사라졌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정당도 갑자기 망할 수 있다. 소비자들이 외면하면 기업이 망하고, 유권자들이 외면하면 정당이 망한다. 기업이나 정당이나 과거에 잘나갔던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영국 자유당이 좋은 예다. 자유당은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보수당과 더불어 양당 정치를 이끌었다. 그러나 자유당은 유권자 집단으로 새로이 부상한 노동자들을 흡수하지 못해 사라졌다. 터키의 경우엔 2002년 총선 결과 선거 이전의 여야 정당이 모두 사라지는 비운을 맞았다.



 정당정치의 위기와 개별 정당의 위기는 연결돼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정당정치의 위기를 가져온 것은 냉전의 종식과 세계화다. 그 결과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이라는 패러다임이 무의미하게 됐다. 사회주의가 약화되자 정치 패러다임까지 흔들리고 있다. 정치가 발전하는 것은 과학이 발전하는 것과 같다. 패러다임이 있어야 정치도 발전하고 과학도 발전한다. 패러다임이 있으면 틀린 과학이론도 좋은 기능을 한다. 틀린 이론이라도 그 이론이 왜 틀렸는지 검증하는 절차를 거치면 옳은 이론이 나오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틀린 정책도 옳은 정책을 개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정당 위기를 극복하고 정책을 양산하는 데 바탕이 되는 패러다임을 유럽·미국이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라도 나서야 한다.



김환영 중앙SUNDAY 국제·지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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