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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98) 득남의 기쁨





“아들이래요” 서귀포로 날아온 낭보



1967년 겨울 제주공항에서 신성일(왼쪽에서 세 번째)·정진우 감독(왼쪽에서 다섯 번째)·문희(왼쪽에서 일곱 번째) 등 영화 ‘밀월’의 전체 배우와 스태프가 비행기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이들은 서귀포에서 악천후와 싸우며 촬영해야 했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어느 아빠에게든 자식의 탄생은 기적이다. 아들 석현이를 얻을 때는 하늘도 기뻐해주었던 것 같다.



 1967년 겨울 영화 ‘밀월’ 촬영차 제주도 서귀포에 머물고 있었다. 정진우 감독은 제주의 바다와 폭포, 마라도 등을 찍기 위해 서귀포 허니문하우스를 촬영지로 선택했다. 해안 절벽 위에 있던 허니문하우스는 자유당 시절 이승만 박사가 별장으로 사용하며 낚시도 즐기던 제주 최고의 명소였다. 작지만 고급스런 호텔이었다. 허니문하우스에서 내려가는 계단이 낚시 포인트까지 연결돼 있었다. 이 대통령이 낚시를 할 때 무료할까 싶어 잠수부가 물 밑에서 물고기를 낚시 바늘에 꽂아주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허니문하우스를 운영하던 전낙원 파라다이스 그룹 회장이 촬영팀에도 틈틈이 신경을 써주었다. ‘카지노 왕’이라 불린 전 회장은 74년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에 카지노를 진출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90년 허니문하우스를 파라다이스호텔서귀포(현 파라다이스호텔제주)로 바꾸고, 호텔도 아프리칸 스타일로 성대하게 꾸몄다.



 악천후가 촬영장 일대를 덮쳤다. ‘밀월’은 조직에서 만난 두 연인이 목숨을 건 사랑을 하고, 두목마저도 그들의 사랑을 인정해 놓아준다는 이야기다. 문희가 여주인공을 맡았다. 촬영은 닷새 예정이었으나 사흘간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파도가 포세이돈의 분노처럼 해안 일대를 강타했다. 파도가 현무암과 부딪히면서 물보라가 솟아올랐다. 물보라는 허니문하우스 지붕을 덤블링하듯 넘어가 출입구에 쏟아졌다. 파도를 따라온 물고기 5~6마리가 파닥거릴 정도였다. 즐거운 구경거리였다.



 그러나 촬영에는 재앙이었다. 정 감독은 발만 동동 굴렀다. 비바람은 끝을 모르고 울어댔다.



 밤 12시가 넘지 않았을까. 잠에 빠진 내 방문을 정 감독이 “신형, 신형” 하고 다급하게 두들겼다. 성격이 급한 정 감독다웠다.



 “앵란 누이가 아기 낳았대.”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아들이래, 아들.”



 아들이 생겼다는 사실이 너무 반가웠다. 촬영을 못해 침울한 분위기 속에 날아든 낭보였다. 정 감독은 내가 득남했다는 소식을 내 장모인 노재신 여사에게 가장 먼저 전해 들었다. 전화는 정 감독의 방에만 있었다.



 정 감독은 엄앵란 집안과 두루 친했다. 영화계 족보로 보면 정 감독과 엄앵란은 동기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엄앵란이 한 살 더 많았다. 정 감독은 노재신 여사를 양어머니처럼 대했다. 서귀포에 있던 출연자와 스태프는 대략 10여명이었다. 나는 제작부장에게 외쳤다. 정 감독은 그 옆에 서 있었다.



 “내일 저녁 일찍 한 턱 내겠다. 술집 잡아서 파티 합시다!”



 날씨로 푸닥거리라도 해야 할 판에 경사까지 겹쳐 거나하게 쏘기로 한 것이다. 다음 날도 여전히 비가 왔다. 그날 진탕 먹고 마셨다.



 그 다음 날 아침, 거짓말처럼 하늘이 뻥 뚫렸다. 먹구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모두들 내가 파티를 열어준 덕에 날씨가 좋아졌다며 기뻐했다. 서귀포 촬영은 이틀 만에 끝냈다. 몇 년 전 파라다이스호텔에 간 적이 있다. 이승만 기념관을 건축 중이라는 팻말을 보며 추억에 젖어 들었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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