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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민주공동체 지키는 구심력 키우자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사회나 경제의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는 원심력이 공동체의 정체성과 안정을 지탱하는 구심력을 압도하게 되면 혼란의 다이내믹스가 작동하며 국가는 위기에 빠지기 마련이다. 오늘날 심각한 경제불황을 겪고 있는 세계 곳곳에서, 특히 국민의 목소리가 존중되는 민주국가에서는 이러한 국가체제의 위기현상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국민의 불만과 불평을 해소하기 위한 임기응변의 정책변화를 마구 대중에게 제시하다 보면 사회적 원심력은 커지는 반면 국가의 안정과 지속성을 담보하는 공동체의 구심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구심력과 원심력의 불균형 위험은 물론 우리나라에도 해당된다. 우리도 세계화가 가져온 고도성장의 이면에서는 빈부 및 이념의 양극화에서 비롯된 중산층과 중간지대의 축소라는 대가를 동시에 치르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이러한 당면과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형성돼 있으나 문제는 이 어려움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조성하는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 총선거, 대통령 선거가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 정치 열기 속에서 과연 우리 공동체의 구심력이 분열의 원심력을 제어하며 그러한 해결책을 추진할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지금보다 더 큰 난국도 여러 번 극복하며 오늘에 이르렀다는 집단적 경험과 자신감이 있다. 이번에도 모두가 마음을 열고 지혜를 모으면 민주국가의 정통성을 지켜가면서 이 어려운 고비를 오히려 공동체 강화의 계기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화합과 공조의 전통과 정서는 외면하면서 분열과 대립의 요소는 확대, 부각시키려는 악습에 결연히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한국의 문화와 전통에는 모두가 잘살 수 있을 때만이 각자의 행복도 가능하다는 운명공동체적 정서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근대적 정치이념의 틀에서 본다면 한국인의 집단적 정치의식이나 규범이 사회민주주의적이라는 지적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사실 대한민국 헌법을 비롯한 나라의 기본문서, 여야를 포함한 공당(公黨)의 정강정책 등에는 이러한 국민적 규범과 정서가 확연히 반영됐다. 부(富)와 사치가 미덕으로 여겨진 시대가 없었던 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다. 유교, 불교, 기독교 등 모든 종교가 검소한 삶을, 특히 나눔의 생활자세를 미덕으로 가르쳐 왔다. 많은 국민이 묵묵히 서로를 도와왔기에 여러 번 암울했던 고비를 넘어 오늘의 우리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워런 버핏의 ‘부자 증세’ 발언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우리 국민은 빈부와 관계없이 함께 잘사는 공동체를 위해 나름의 자기 몫을 치르겠다는 각오와 자세가 돼 있음을 서로 믿고 인정해야 되겠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공동체의 구심력을 북돋울 시점이다.

 이러한 우리 공동체 규범이 대한민국의 국가운영을 뒷받침하는 공공철학으로 이어져왔음을 재인식하는 것도 국가권력의 정체성을 보강하는 데, 즉 구심력과 원심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다섯 대통령과 두 번의 여야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국가경영과 공동체 유지를 위한 공공철학과 정책이 상당한 수준에서 유지돼 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섯 대통령이 예외 없이 대한민국의 통일정책을 1989년 여소야대 국회에서 4당 합의로 만들어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기초하고 있다고 강조해온 사실이 국가운영의 기본입장의 연속성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DJP연합으로 권좌에 오를 수 있었다는 간단한 사실이 사회적 구심력에 의존한 타협의 정치가 민주화 이후의 국가운영을 가능케 했음을 보여주었다. 노무현 정부가 과감히 출범시킨 세 가지 프로젝트-세종시, 한·미 FTA, 제주해군기지-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이명박 정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국가운영의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단절보다는 연속성, 대결보다는 화해와 타협, 분열보다는 공조를 강조하는 공동체정신과 공공철학을 앞세우는 정치인들을 선출하는 것만이 우리 민주정치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며 양극화를 비롯한 당면과제를 한국적 지혜로 풀어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국민의 양식을 믿지 못하는 소영웅주의와 대중의 분노에 편승하려는 포퓰리즘은 독재로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민주공동체의 공적(公敵)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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