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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특별열차 속 대화







예영준
중앙SUNDAY 차장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리비아의 정변 소식을 접한 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달리던 자신의 전용 열차 안에서였다. 그는 광활한 시베리아 평원의 풍경을 차창 밖으로 바라보며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 전략을 구상하던 중이었다. 열차 안에선 이런 대화가 오갔음직하다.(김 위원장의 방러·방중 행보와 발표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대화록)



 강석주 부총리=위원장 동지, 혹시 소식 들으셨습니까. 리비아의 카다피 동무가 결국 무너졌답니다.



 김정일 위원장= 그거야 이미 내가 예상하고 경고해 오던 일 아닌가. 그러니까 쉽게 핵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고 내 그렇게 충고했거늘. 나라고 왜 일말의 불안감이 없겠나. 이러다 후세인이나 카다피처럼 미국에 당하는 건 아닌지 밤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때가 있어.



 강=하지만 미국도 우리를 함부로 못할 겁니다. 중국이 있으니까요. 요즘은 미국도 중국의 동의 없이 일을 꾸미기 어려운 판국입니다.



 김=요즘 보니 그런 듯도 해. 아무튼 우린 리비아와 다르고, 또 달라야만 하네. 핵은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로 포기해선 안 된다는 걸 이번에 또 한번 절감했어.



 강=하지만 그런 속내를 절대로 드러내선 안 됩니다. 조건만 맞으면 핵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둬야 합니다. 핵 포기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 늘 상대방을 헷갈리게 만들어야 협상을 우리 페이스대로 이끌고 우리 몫을 가장 많이 챙길 수 있습니다.



 김= 그나저나 메드베데프와의 회담시간이 다가오는데 뭐라고 말해야 할까. 당장 경제지원도 타 내야겠고, 또 가스관을 통과시켜 주면 매년 1억 달러가 떨어진다는데 그것도 팽개치긴 아깝고 말야. 그러려면 메드베데프에게도 뭔가 선물을 줘야 하지 않겠나. 립서비스에 불과할지라도 말야.



 강=일단 6자회담에 무조건 복귀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십시오. 그런데 요즘은 미국이나 남조선 아이들이 자꾸 조건을 내걸고 있습니다. ‘핵 포기 의사가 있다는 걸 입증하기 위한 사전조치를 행동으로 보여라’고 말이죠. 러시아도 은연중에 동조하는 듯한데 이 참에 우리 편으로 도로 끌어와야 합니다. 좋은 수가 하나 있습니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동결(모라토리엄)할 수 있다는 뜻을 넌지시 비쳐보십시오. 러시아는 아주 솔깃해 할 겁니다. 미국도 무시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럼 우리 뜻대로 6자회담 판을 다시 불러모을 수 있습니다. 일단 회담이 시작되면 경제제재를 해제시키고 지원 물자를 챙기는 건 식은 죽 먹깁니다. 하루 이틀 해 본 장사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모라토리엄 얘기는 아주 애매하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여차하면 나중에 말을 뒤집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김=듣자니 그럴듯한 말이군.



 강=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러시아에 너무 밀착하는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됩니다. 이 모든 일들이 중국과 긴밀한 조율 하에 이뤄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게 중요합니다.



 김=러시아에 왔다가 가는 길에 중국을 거치는 것에도 그런 심오한 뜻이 있단 말이지. 과연 자네는 나의 장자방(張子房)일세.



예영준 중앙SUNDAY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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