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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처신









조선 정조 시대다. 탕평책에도 불구하고 정치판은 여전히 어지럽다. 선비들까지 자리를 탐하기 때문이다. 이에 측근에게 탄식한다. “난진이퇴(難進易退)가 아쉽다.” 벼슬길에 어렵게 나가고 때가 오면 선선히 물러난다는 뜻이다. 정조는 그것이 조정(朝廷)을 높이고, 세교(世交)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헛된 명리(名利)를 붙들고 매달리는 풍조 때문에 예의염치(禮義廉恥)가 무너진다고 진단했다. 맹자가 말한 행장진퇴(行藏進退)도 같은 뜻이다. 지식인에게는 관직에 나아감과 물러섬을 아는 신중한 처신(處身)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말은 쉽지만, 어려운 일이다.



 이미 출사(出仕)한 경우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이 강조된다. 스스로를 닦음으로써 사람들을 교화한다는 의미다. 특히 주고받는 것에 조심해야 한다. 맹자는 이루(離婁)에서 “받아도 되고 받지 않아도 될 때 받으면 청렴이 손상된다. 줘도 되고 주지 않아도 될 때 주면 은혜가 손상된다”고 했다. 회남자(淮南子)의 ‘맹호행(猛虎行)’ 첫 행이 ‘갈불음도천수(渴不飮盜泉水) 열불식악목음(熱不息惡木陰)’이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도둑 샘’의 물은 마시지 않고, 더워도 ‘나쁜 나무’ 그늘에서 쉬지 않는다는 말이다. 공자의 일화에서 따온 것인데, 그만큼 스스로 살피고 삼가라는 얘기다.



 기관의 장(長)도 마찬가지일 터다. 노(魯)나라 환공(桓公)은 자리 오른편에 기울어진 그릇을 두었다. 이 그릇은 비어 있으면 기울고, 절반쯤 차면 바르고, 가득 차면 엎어진다. 이를 보며 스스로 자계(自戒)한 것이다. 좌우명(座右銘)의 유래다. 공자는 이를 보며 “가득 채우고도 기울지 않는 것은 없다”고 했다. 이에 자로(子路)가 가득 채우고도 지키는 방법을 묻자 “총명하면서도 어리석음으로, 공을 세우고도 겸양으로, 용맹하면서도 검약으로, 부유하면서도 겸손으로 지킨다”고 말한다. 모두가 수양이 필요한 것으로, 범인(凡人)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곽노현 교육감의 처신을 두고 설왕설래다. 여야는 ‘즉각 사퇴’와 ‘현명한 처신’을 요구한다. 사기(史記)에서 이극(李克)은 인재의 그릇을 가늠하는 다섯 가지 척도를 든다. 그 하나가 ‘궁시기소불위(窮視其所不爲)’다. 곤경에 처했을 때 처신을 보라는 것이다. 곽 교육감은 만 갈래 길에 서 있을 터다. 진퇴유곡(進退維谷), 진퇴양난(進退兩難)이겠지만 백척간두에서 진일보(進一步)라 했다. 언제까지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박종권 jTBC특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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