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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2. 서쪽에서 온 마을 (1)





술은 역시 몽골에서 들여온 소주가 천하일품이야



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남해 북단에서 노량나루를 건넜다. 섬과 뭍 사이에 잘록하게 드러누운 쪽빛바다는 투명했다. 잔잔한 물의 비늘들 사이로 파고든 하늘빛이 하얗게 부서진다. 눈이 부시다. 황홀하다. 녹음 짙은 강토의 빛 또한 찬연하기만 하다.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나라 같지가 않다. 적들에게 처참히 짓밟힌 개경과 달리 점점 다가오는 하동 고을은 적들의 그림자도 닿지 않았다. 하동은 복된 땅이었다.



 섬에서 나와 뭍을 디뎠다. 하동은 맞닿은 진양 고을, 방금 건너온 남해와 함께 집정 최이와 정안의 식읍지였다. 최이와 그의 처남 정안은 이 두 고을에서 얻은 부를 이용해 대대적인 대장경 판각사업을 벌일 수 있었다. 말이 국책사업이지 두 사람의 재력이 없다면 이 판국에 대장경 재조 불사는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날이 무더웠으므로 말들이 헉헉거렸다. 인보와 나는 진양에서 일찍 객주를 찾아 묵었다. 이튿날 꼭두새벽에 길을 나섰다. 우리는 지리산 동쪽 낙맥 산청고을 남사천을 따라 길을 좁혀갔다. 넓은 들녘이 펼쳐진다. 살림살이가 제법 가멸 것 같은데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들이 거개였다. 벼가 자라는 들판에서 단속사 영역 표시인 장생표(長生標)를 만난 건 점심때였다. 어른 키 높이의 돌기둥에 표식을 세우는 경위를 새겨놓았다. 나라에서 단속사에 토지를 분급해 준 것이다. 사방으로 이 영역 안의 산림과 전답은 전적으로 절집 소유다. 어떠한 공전과 사전도 있을 수 없다. 심지어는 농민들까지도 절집의 지배를 받는다. 나라에 내는 조세를 절집이 대신 받아간다. 절집 창고가 채워질수록 나라 곳간은 비기 마련이었다.



 사하촌이 나타났다. 왁자지껄 야단법석이었다. 때마침 승시(僧市)가 열리는 날이라고 했다. 중들이 좌판을 벌여놓고 차와 바릿대, 승복 등을 팔고 있었다. 지리산 약초들이 그득그득 쌓인 천막, 벌건 개고기를 새끼줄에 매달아놓고 파는 보신탕집도 있었다. 주막집 감나무 그늘 평상에 앉아서 대낮부터 막걸리 추렴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자 인보가 제안했다.



 “여기서 요기하고 가죠. 절에 가면 공양시간 넘겼다고 눈칫밥 줄 것 같은데.”



 “일주문이 코앞인데 별소릴 다 하는구나.”



 나는 말을 몰아 앞장섰다. 승시를 벗어나니 판각하는 공방이 나타났다. 판자들을 그늘에 말리는 광경이 보였다. 소금물에 삶았다가 건져낸 판자들이었다. 판자를 소금물에 삶으면 뒤틀림과 벌레가 스는 걸 방지할 수 있었다.



 “내 아우 소식을 가지고 왔다고?”



 점심공양 뒤, 주지의 방을 찾았더니 호랑이 가죽을 깔아놓고 앉아있던 만종이 입을 귀에 걸며 외쳤다. 먼 길 온 내 안부 따윈 묻지도 않았다. 대장도감 승정이라는 직책을 심부름꾼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양쪽 귀밑으로 큼지막한 금 귀걸이가 근뎅거렸다.



 “쳇! 결국은 또 돈 얘길세. 대장경 불사로 내 절집 기둥뿌리가 뽑혀나가고 말지.”



 간찰을 읽은 만종이 넌더리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친이신 집정께서 주도하시는 국책사업입니다. 아우 되시는 지주사께서 뒤를 이을 것이고요.”



 나는 짐짓 웃어 보였다.



 “어렵게 모은 재물이 축나니 문제 아니오. 에이, 답답한지고. 더운 여름날 뜨거운 차는 좀 그렇고 나와 소주 한잔 하려오?”



 “소주라면…?”



 몽골 제국에서 들여온 술이라는 말은 들었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양반 강도에서 왔다면서 숫제 벽창호로군. 나도 이렇게 어엿하게 머리 깎은 중이오. 알 만한 처지끼리 내숭 그만 떠십시다.”



 만종이 두 손으로 민대가리를 문질러 보였다. 화려하게 치장한 중을 많이 봐왔지만 금 귀걸이에 호피를 깔고 앉은 중은 또 처음이었다.



 “빈도는 술을 잘 모르오.”



 “으하하하핫! 요즘 세상에 모르는 건 자랑이 아니지. 뭘 알아야 중생을 구제할 것 아뇨? 중물 제대로 든 화상은 가리지 않는 법이오. 염천에 먼 길 오느라 몸이 많이 축났을 터. 샌님마냥 굴지 말고 선지식(善知識)이 권하면 국으로 자셔보구려.”



 선지식 되기 참 쉬웠다. 이자에게 무슨 학식이 있고 높은 덕이 있을까 싶다. 자칭 선지식은 대발 너머에 대고 복잡한 주문을 했다. 곧 있으니 얼음 띄운 오미자 화채가 나왔다. 큼지막한 유리그릇은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이 한여름에 얼음이라니 강도의 황제가 부럽지 않은 살림살이였다. 산속에 석빙고를 만들어 쟁여두고 쓰는 듯했다.



 “보살도 이리 건너와 한잔 하시구려.”



 만종이 내실 쪽에 이르자, 날아갈 듯 모시옷을 차려입은 부인이 나왔다. 강도 황궁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미색이었다. 의례적인 합장을 주고받았다.



 “어허! 간장이 다 시원타. 저 부지런 떨면 이렇게 시절도 비켜갈 수 있는 법!”



 그가 용트림을 했다. 부인이 보는 자리라서 위세를 더 떠는 것 같았다. 참으로 속된 위인이었다. 단속사(斷俗寺)라면 속세와 단절했다는 뜻일 텐데 절집 이름과는 딴판이었다.



 “지난 초파일 연등회 때, 집정과 지주사께서 홍역을 치르셨습니다.”



 나는 부러 얼음조각을 오도독 오도독 소리 나게 깨물며 일렀다.



 “뭣이라고 했소?”



 “거리에 세운 등대가 넘어져 집정의 가마에 불이 옮겨붙었었지요.”



 “저런, 저런!”



 “급히 물을 부어 꺼서 다행히 화상은 면하셨는데 그날 밤부터 며칠간 혼수상태에 빠졌답니다. 많이 호전되신 걸로 전해듣고 왔지요.”



 나는 만전, 그리니까 최항 지주사가 지양이라는 비구니를 애첩으로 삼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들 형제에게 축첩 얘기는 새로운 소식이랄 것도 없었다.



 “불은이로다. 내 기도의 반이 국태민안이고 나머지 반이 아버님의 무병장수요.”



 만종이 왼쪽 눈 하나 깜박거리지 않고 천연덕스레 말했다. 나라가 태평해지고 백성이 편안해지는 법이 뭔지나 아는지 모르겠다. 한 가문만 국사에서 손을 떼면 그 순간이 곧 국태민안의 날이다. 아버지 최이의 수명장수를 빌었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지난 계묘년(서기 1243) 가을, 정안에게 의뢰해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을 판각한 이유가 최이의 수명장수였으니까. 권말 간기(刊記)에 명시해 놓았으니 명목상으로는 분명했다.



 대발이 들려지면서 떡 벌어진 술상이 들어왔다. 나는 눈을 찌푸렸다. 멧돼지갈비 냄새가 진동했기 때문이다.



 만종은 꽃 모양 백자에 맑은 소주를 따라 잔대에 올려놓아 주었다. 그의 잔은 부인이 채웠고 부인의 잔은 그가 채웠다. 술상 위에 세 송이의 흰 꽃이 활짝 피어났다. 꽃에서는 진한 향기가 피어났다.



 “한잔 마셔보구려. 뒷맛이 개운하고 좋아요. 여독이 확 풀려버릴 게요.”



 차고 달짝지근했다. 만종 내외를 따라 한잔을 털어 넣었다. 싸한 기운이 목울대를 자극했다. 속에서 훅 올라오는 게 있었다. 나는 재채기를 해댔다. 부인이 깔깔깔 웃었다.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잘 마시는구려. 이것도 뜯어봐요. 아주 맛 좋소.”



 만종이 갈비를 권했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먹어보지 않아서 고기는 비위가 상했다.



 “이 소주 아주 독하오. 기름진 안주 안 먹어주면 정신을 잃어. 장정도 이 내린 소주 세 잔이면 알딸딸해지지.”



 그가 거듭 갈비를 권했지만 내 젓가락은 가지무침을 집고 있었다.



 “큰일입니다. 경판들이 뒤틀립니다.”



 “속이 많이 뒤틀릴 거요. 그러게 어서 기름진 안주를 드시오.”



 “강화도 선원사 판당도 남해 판당도 습이 차서.”



 “아하, 판당에 모셔둔 경판! 난 처음부터 우려했던 일이오.”



 만종은 벌로 들어 넘기며 갈비를 뜯느라 여념이 없었다.



 “수기 도, 도승통께서 대사와 기, 깊이 의논해 보라 하셨습니다.”



 혀가 말려 올라가서 발음이 꼬였다. 귀가 먹먹하여 내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순진한 스님 잡겠습니다.”



 부인이 짓궂게 웃었다. 나도 실없이 따라 웃고 있었다. 내 몸이 내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속에서 불이 붙고 말고.”



 그가 휴대용 부싯돌을 꺼내더니 금방 불을 일으켰다. 소주가 찰랑대는 술잔에 불씨를 갖다 댔다. 퍼런 불꽃이 옮겨 붙어 일렁거렸다. 눈이 번쩍 뜨였다. 저렇게 불타는 물을 내가 들이켰단 말인가. 속이 울렁거렸다. 만종이 왼손으로 잔대를 들었다. 흰 꽃 위에 퍼런 불꽃이 피어났다. 오른손으로 술잔을 든 만종이 그 불꽃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크하! 깔끔하다. 술은 역시 몽골 소주가 천하일품이야. 막걸리 같은 건 아랫것들이나 배 채우려고 먹는 음료지.”



 집정 최이는 불을 뿜는 독룡이다. 그런데 아들 만종은 불을 삼키는 중이다. 향기 나는 불을 먹는 이자는 건달바인가, 아수라인가. 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초유의 사태를 보고 혼란스러웠다. 침략군들이 가지고 들어온 소주를 저렇게 즐기며 예찬하는 만종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때 대발 너머 뜰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뭔 일이냐? 감히 어디라고 잡소리가 넘어오는 게야!”



 만종이 위엄을 갖춘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요 아래 승시 난장판에서 대낮부터 술 퍼먹고 올라온 불한당들 같습니다요.”



 마루에서 시자가 고한다.



 “불한당놈들이 신성한 우리 절집에 왜?”



 “직세승(直歲僧)과 한판 붙다가 밀고 올라온 모양입니다요.”



 직세승은 절집 살림을 맡은 중이었다.



 “그렇다면 소작인들이겠구나.”



 “그렇사옵니다.”



 “무지렁이들이 왜 또? 직세승은 어서 이실직고하라!”



 드잡이하던 직세승이 대발 가까이 와서 자초지종을 일렀다. 올해 세금을 수확량의 3할로 내려주지 않으면 나락이 패기 전에 갈아엎겠다는 불량배들이라고 했다. 공전(公田)의 경우는 나라에 1할만 세를 내면 되었다. 그런데 단속사에서는 소출의 절반을 세금으로 거둬서 농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다.



 “뭣이라? 그 잘난 농사짓는 게 무슨 벼슬 사는 것인 줄 아는가 보구나. 당장 물러가지 않으면 소작권을 빼앗아버린다고 일러라.”



 “그래도 말을 안 듣습니다요.”



 “그럼 곤장을 쳐서 내쫓아라! 그런 것까지 일일이 알려줘야 되누?”



 만종이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실랑이가 좀 더 이어지는가 싶더니 비명소리가 들렸고 이내 잠잠해졌다.



 “내 속을 누가 알까. 이렇게 쥐어짜서 만든 돈으로 대장경 불사에 바치고 있거늘.”



 만종은 소주로 불꽃을 하나 더 만들어 털어넣었다. 누굴 탓하랴. 이런 자에게 판당을 새로 짓자고 제안하러 온 나도 모순덩어리다. 이미 정신이 혼미해진 나는 술상에 머리를 박고 잠들어버렸다.



 혼란은 여러 날 계속되었다. 단속사를 벗어나 산청을 거쳐 완산주에서 계수관을 만날 때도 그랬다. 국책 불사의 이름으로 농민의 피와 땀을 훔치는 행위는 정당한 걸까. 남해의 정안이 전 재산을 불가에 헌납하는 걸 반대했다는 탁연이 옳아 보였다. 일본 은병을 챙긴 그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복잡한 번뇌의 칡넝쿨이 내 머리에 뻗쳤다.



 계수관은 김승이 대장경 판각사업의 일등공신이자 진짜 중이라고 했다. 나라님이 못하는 일을 그가 하고 있다고까지 했다. 어려운 사람들을 거둬 모아서 먹여살린다는 것이었다. 어서 그를 만나고 싶어졌다.



 완산주에서 김제 벽골제, 서해바다와 접한 보안현에 다다랐다. 지평선을 바라보며 가도가도 질펀한 평야였다. 변산은 신비한 땅이다. 지평선이 다하고 수평선이 나타나기 직전에 평지돌출로 우뚝 솟아오른 천혜의 산성이자 요새였다. 그곳 소의 배 속처럼 깊은 터에 김승이 살고 있다. 김승이 사는 곳을 내변산이라고 불렀다. 김승은 나에게 십자가를 난생처음 인식시켜준 문제의 인물이었다.



 나는 인보와 함께 말을 타고 내변산으로 향했다. 방죽 근처에서 기괴한 암벽들을 품은 산이 가로막고 섰다.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바위굴이 솔숲 사이로 보였다. 도적들의 소굴로 적당한 동굴 같았다. 서리서리 풀어진 산길이 가팔라졌다. 거대한 괴물의 옆구리를 지나 등짝으로 오르는 느낌이었다. 히히 호호, 호랑지빠귀가 귀신소리를 내며 울었다. 산등성이가 가까워지면서 하늘이 거머무트름해지기 시작했다. 한 차례 소나기라도 퍼부을 낌새였다. 우리는 급기야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멀리 소쿠리 형국의 분지가 나타났다. 소뿔같이 솟아난 바위가 보였다. 그 아래 산촌으로 밝은 하늘빛이 쏟아져 내렸다. 광휘로움이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인간의 마을 같지가 않았다.



 “별천지로구나.”



 저만치 떨어진 인보는 호리병을 열어 물을 마시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먹장구름이 밀려왔다. 삿갓도 도롱이도 없이 나선 길이었다. 서둘러 내려가야 할 것 같았다. 그때 바다 쪽에서 무시무시한 돌개바람이 내달아왔다. 나무와 돌덩이들을 휘감고 올라가는 돌개바람은 먹장구름 속으로 거대한 기둥을 만들고 있었다. 용이 하늘에 오르는 것 같았다. 말이 울부짖었다. 나는 고삐를 단단히 그러쥐었다. 손과 다리가 덜덜덜 떨렸다. 일순 몸이 가뿐해졌다. 말에 탄 채로 어어, 하는 사이 내가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김종록 소설가

일러스트=이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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