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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Biz] 프랑스 ‘클라란스 연구소’ CEO 리오넬 드베네티

푹푹 찌는 날씨였다. 여름에는 살갗이 열리는 게 정상이련만 그의 피부는 땀구멍조차 보이지 않았다. 매끄럽기가 아기 피부 같았다. 나이가 믿기지 않는 피부의 소유자는 리오넬 드베네티(64) 박사. 그는 프랑스 화장품 회사 클라란스의 ‘클라란스 연구소 및 클라란스 로지스틱스’ 최고경영자(CEO)다. 화장품 연구개발(R&D)과 물류를 책임지는 자리다. 신제품 출시 행사에 참석차 방한한 그를 만났다. 39년간 화장품 연구개발에 매진해 온 달인에게서 화장품 뒤에 숨어 있는 과학의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화장품 R&D를 “인디애나 존스와 과학자의 결합”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화장품 업계 인디애나 존스다”

글=박현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인디애나 존스’는 고고학자의 모험을 그린 할리우드 영화다. 해리슨 포드가 고고학자 인디애나 존스 역할로 인기를 끌었다. 세계를 누비며 화장품 원료가 될 만한 식물이나 약초를 찾고, 연구소로 돌아와서는 유효한 성분을 추출하고 배합한다는 의미에서 인디애나 존스와 과학자 얘기를 꺼낸 것이다. 프랑스 파리 북서부 근교인 퐁트와즈에 자리 잡은 클라란스 연구소에는 80명의 연구원이 있다. 드베네티 박사 같은 화학자 외에도 생물학자, 약학자, 식물학자 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포진하고 있다. 역할은 각각 다르다. 식물학자는 식물 추출물을 연구하고, 생물학자는 주로 안전성과 효능 테스트를 한다. 화학자는 성분을 배합해 처방법(formulation)을 만든다. 하지만 드베네티 박사가 이들을 부르는 명칭은 따로 있다. ‘파인더스(Finders)’, 즉 ‘찾는 사람들’이다.



●왜 파인더스인가.



 “직군이 뭐든 간에 새로운 성분을 찾고 새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는 메시지다. 연구원들은 새로운 것을 찾는 대가로 월급을 받는 사람들 아닌가. 늘 새로운 걸 찾으려 시도했고, 성과도 꽤 거뒀다.”



●새로운 원료나 유효 성분은 어떻게 찾나.



 “여러 경로가 있다. 하나는 지역 주민들이 오랜 시간 활용한 민간요법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다. ‘원주민들이 피부에 발랐더니 좋더라’는 얘기를 들으면 세계 어디든 찾아간다. 그런 면에서 인디애나 존스 같다. 원료를 가지고 연구소로 돌아오면 그때부터는 과학자로 변신한다. 물, 오일, 알코올 같은 다양한 용제에 넣어 핵심 성분을 추출하고, 효험이 있는지 실험한다. 거듭하는 실험 끝에 효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유효 성분으로 인정받는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발견한 ‘카타프레이’라는 나무에서 천연 보습 인자를 추출해 ‘하이드라 퀜치’라는 제품을 만든 게 한 예다.”



●또 다른 방법은.



 “자연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해바라기의 얇은 줄기가 큰 꽃을 받치고 있을 정도로 견고하고 탄력이 있다면, 피부에도 비슷한 작용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줄기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옥신이라는 성분을 찾았다. 기적같이 훌륭한 고화제가 탄생했다. 의학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오기도 한다. 플라타너스 추출물을 암 치료에 쓰면 나쁜 세포를 죽이는 기능이 있다. 이 추출물을 선블록이나 애프터선 제품에 활용하면 햇빛에 노출돼 손상된 세포를 죽일 수 있다.”



●자연에 빚을 지는 셈인데, 환경 경영 철학이 있나.



 “식물이나 약초는 그곳 사람들이 쓸 만큼 충분한 경우에만 사용한다. 충분치 않으면 대량 재배를 지원한다. 마다가스카르에 1만 그루의 카타프레이 나무를 심은 것도 그래서다. 멸종 위기 생물은 사용하지 않는다. 제품 무게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클라란스 화장품 통은 굉장히 가볍다.”



 클라란스는 20여 년 전 동물 실험과 동물성 추출물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가장 먼저 선언했다. 클라란스의 식물 연구 노하우는 여기서 비롯됐다. “동물성 성분은 인간의 세포와 비슷하기 때문에 화장품에 쓰면 효과가 좋은 건 사실이다. 그런데 동물성 성분을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했으니 식물 연구를 깊이 파는 수밖에 없었다. 식물 추출물의 수준을 동물성 추출물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 전문성이 축적됐다.”



●현장에는 자주 가나.



 “직접 가서 보고 배운다. 식물이나 약초의 현지 사용법을 익힌다. 마다가스카르에 여러 차례 갔고, 남미 아마존 유역, 아시아에선 베트남 등지에 다녀왔다. 클라란스가 유효성분을 발견한 나라는 30여 개국이고, 나는 10여 개국에 직접 갔다.”



●한국에서도 원료를 찾을 수 있을까.



 “물론이다. 아직 시도해 보지는 않았지만 토종식물 중 유용한 게 있는지 알아볼 만하다.”



●원료 개발이 가장 어려웠던 경우는.



 “전자파 방지 기능을 넣은 ‘E3p’에 들어간 유효성분을 찾을 때였다. 실험을 위해 전자파에 노출되지 않은 세포 조직이 필요했다. 여러 번 실패한 끝에 특수한 오븐을 제작해 전자파 노출이 전혀 없는 세포를 만들어냈다. 7년에 걸쳐 연구했고, 결국 러시아와 심해에서 얻은 물질에서 유효성분 두 개를 찾아냈다. 유효한 성분을 찾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제품화하기까지 길게는 7년, 보통은 2~3년 걸린다.”



●미안하지만 화장품 회사들이 말하는 효능이 다 믿기지는 않는다.



 “그럴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증상을 개선하는 것뿐 아니라 예방도 화장품의 중요한 기능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화장품에 대한 신뢰가 낮은 이유는 일부 회사의 과장된 마케팅 탓이다. 클라란스의 키워드는 ‘존중(respect)’이다. 존중은 안전(safety), 효험(efficacy), 솔직함(honesty)을 말한다. 클라란스는 실험을 통해 입증한 것 이상의 효과를 줄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가끔 마케팅 부서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증거자료가 없으면 난 마케팅·광고 부서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수확하는 카타프레이.





●새로운 원료와 처방법 중 어느 게 더 중요한가.



 “화장품 개발에 대한 기여도로 따지면 처방법이 80%, 원료가 20%다. 성분이 뛰어나다고 좋은 결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성분이 잘 어우러지고, 또 충돌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예컨대 다섯 가지 훌륭한 유효 성분을 섞어도 아무런 결과를 못 얻을 수 있다. 똑같은 버터, 소금, 후추를 써도 별 세 개짜리 레스토랑과 허름한 식당 음식 맛이 같지 않은 것과 같다. 결국 성능은 요리사와 과학자에게 달린 것이다.”



●리더십도 비슷한 측면이 있을 것 같다.



 “그렇다. 구성원 간에 좋은 유대를 만들어내야 한다. 화장품 처방과 비슷하다. 성분이나 사람이나 서로 어우러지지 않을 수 있다. ‘1+1=0’이 돼서는 안 된다. ‘1+1=3’ 이상을 만들려고 하는 게 리더십이다. 그러기 위해선 내 ‘재료’를 잘 알아야 한다. 직원 개개인의 특성을 살펴 적절하게 배치해야 한다. 내 리더십 철학은 엄격함과 이해심 사이에 균형을 갖는 것이다.”



●클라란스는 유럽 1위 스킨케어 브랜드다. 그 비결은 뭔가.



 “R&D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R&D에 있어서 어떠한 타협도 없다. 내가 쓸 수 있는 R&D 예산엔 한도가 없다.”



●전혀 없나.



 “예산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



●1년에 얼마나 쓰나.



 “지난해 약 600만 유로(약 93억원)를 썼다. 화장품 업계에서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다른 회사는 비용을 먼저 생각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매우 비싼 원료도 내가 넣고 싶은 만큼 화장품 처방에 넣을 수 있다.”



●클라란스는 로레알 그룹, 에스티로더 그룹 같은 대기업에 비하면 작다. 경쟁력에서 밀리지 않나.



 “큰 회사들은 연구원이 수천 명씩 있다. 하지만 효율성에 있어서는 우리가 훨씬 경쟁력이 있다. 조직이 작으니까 의사결정이 빠르다. 인원이 많으면 라이벌 의식 때문에 경쟁심이 생긴다. 남의 업적을 망가뜨리는 데 시간을 쏟는 사람들이 꼭 나오게 마련이다. 효율성이 파괴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란 통제하기 쉽지 않다. 성분 관리가 사람 관리보다 훨씬 쉽다.”



 드베네티 박사는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큰 화장품 회사에서 4년간 경력을 쌓고 1976년 클라란스에 합류했다. 전 직장은 연구원이 10명, 클라란스는 2명 있었다.



●왜 큰 회사에서 작은 회사로 옮겼나.



 “창업주인 자크 쿠르탱 클라란스를 만났는데 느낌이 좋았다. 난 27세였다. 젊었기 때문에 모험을 할 수 있었다. 조직이 작다 보니 세포 배양, 성분 추출, 성분 배합 등 모든 일을 배울 수 있었다. 그때 경험이 지금 연구소를 이끄는 데 도움이 된다. 실무를 속속들이 안다는 건 CEO에겐 큰 자산이다.”



●1998년부터 CEO를 맡고 있다. 소유주인 쿠르탱 클라란스 가족의 신뢰가 상당한 것 같다.



 “오랜 기간 함께 일하면서 쌓은 신뢰다. 창업주는 돈벌이가 아니라 상품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 컸다. 그러다 보니 (연구직인) 나는 그의 가까운 협력자가 됐다. 사주와 전문경영인의 관계가 원활하려면 서로 솔직해야 한다. 부부와 비슷하다. 비밀이 생기기 시작하고, 숨기기 시작하면 좋은 관계가 될 수 없다. 솔직하게 상의하고, 책임질 건 책임지면 된다. 아무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반대 의견도 내놓는가.



 “물론이다. 나는 잃을 게 없다. 나는 나를 믿는다. 내 전문성, 경험, 나이를 믿는다.”



●꿈이 뭔가.



 “고객의 꿈과 같다. 각자의 피부 고민을 해결해 주는 성분을 담은 개인 맞춤형 화장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j 칵테일 >> 풀코스 73회 완주 … 64세의 ‘마라톤맨’













리오넬 드베네티(64) CEO는 마라톤맨이다. 2박3일의 짧은 방한 일정 중에도 매일 아침 한강변을 한 시간씩 뛰었다. 27세 때부터니까 달린 지 40년 가까이 됐다. 마라톤 풀코스는 73번 완주했다고 한다.



●달리게 된 계기는.



 “원래 테니스와 축구를 좋아했는데 일이 바빠지면서 시간을 맞추는 게 어려워졌다. 아무 때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다 보니 달리게 됐다. 달리기는 일에도 도움이 된다. 잘 안 풀릴 때 한바탕 달리고 나면 같은 자료인데도 새로운 관점이 보인다. 엔도르핀 덕분에 긍정적이 되는 것 같다.”



●마라톤을 그렇게 많이 완주할 수 있나.



 “한때는 1년에 아홉 번을 뛴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완전히 미친 짓이다. 요즘은 1년에 한 번 정도 풀코스를 뛴다.”



●최고 기록은.



 “2시간58분. 1984년 세웠다. 두 번 더 같은 시간대를 기록했다. 희한한 게 죽어도 2시간 57분이 안 되더라. 가장 최근 기록은 3시간10분이다.”



●아침형 인간이라고 들었다.



 “오전 5~6시면 사무실에 도착해 업무를 시작한다. 지난 30년간 그랬다. 직원들은 보통 8~9시에 출근한다. 그때쯤 나는 몸 상태가 최고가 되는데 직원들은 잠이 덜 깬 상태니까 나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무지 노력하더라.”



 드베네티 CEO는 자동차 수집가다. 그의 집 주차장에는 자동차 30대가 꽉 들어차 있다.



●어떤 차들인가.



 “대부분 클래식카다. 애스턴 마틴, 페라리, 재규어, 모르간, 알파 로메오 등.”



●제일 비싼 차는.



 “애스턴 마틴 1989년식이다. 10여 년 전 20만 유로(약 3억1000만원) 넘게 주고 샀다.”



●가장 오래된 차는.



 “올드 폴크스바겐 카만-기아 1958년식이다.”



●클래식카 수집, 오래된 꿈인가.



 “어릴 적 꿈이었다. 난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이탈리아 출신 프랑스 이민자인 아버지는 건설현장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자동차는 평생 가져본 적이 없으셨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언젠가 아름다운 차 한 대를 갖는 게 소원이 됐다.”



●드라이브는 자주 하나.



 “시간이 없어서 자주 못한다. 운전대에 앉아있는 시간보다 차에 광을 내고 감상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펜과 시계도 모은다던데.



 “둘 다 사랑한다. 시계는 매년 생일 때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30세쯤부터 매년 시계 하나씩을 샀으니, 지금은 35개쯤 갖고 있다. 펜은 150개 이상 모았다.”



●당신에게 행복이란 뭔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선택한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게 행복이다.”



●값비싼 취미를 즐길 만큼 클라란스의 보상이 후한가.



 “나는 열심히 일하고 노력했고, 그 결과 정당하게 벌어서 내 꿈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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