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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섬에 유배당한 지식인들, 그들은 갔어도 이야기는 남았으니 …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이종묵·안대회 지음

이한구 사진, 북스코프

368쪽, 1만8000원




위리안치(圍籬安置)는 중죄인이 바깥에 다니지 못하도록 가시울타리를 치고 가두는 형벌이다. 조선에서 처음 시행된 것은 연산군(1476~1506) 때. 갑자사화(1504년)에 연루된 젊은 관리를 절해고도(絶海孤島)로 보내며 위리안치하도록 가중 처벌했다. 불과 2년 뒤 연산군 자신이 같은 신세가 됐다. 중종반정으로 쫓겨나 교동도의 탱자나무 울타리 안에 갇혔다. 강화도에 딸린 교동도는 또 다른 폐왕 광해군의 유배지로도 쓰였다.



 중죄를 지은 자를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먼 곳으로 격리시키는 형벌이 유배다. 유배는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무기형이다. 정쟁에 따른 소위 ‘정치범’이 많았기에 권력의 변화가 없는 한 대부분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었다. 길게는 수십 년간 머물러야 했다.



 그렇다고 절망의 시간만은 아니었다. 정약전은 흑산도 18년 유배 생활 동안 박물지 『현산어보(자산어보)』를 완성했다. 장희빈을 반대하다 남해도로 유배된 김만중은 그곳에서 소설 『사씨남정기』를 남겼다. 위도에 귀양 간 이규보는 ‘여가’를 즐기듯 호젓한 풍물을 노래하는 시를 지었다. 더러는 분노와 절망 속에 숨을 거두기도 했지만, 상당수는 유배의 고통을 예술혼으로 승화시켰다.



 이 책은 고려·조선조 때 단골 유배지로 쓰였던 서남해 및 인근 해역(대마도) 14개 섬을 돌아본 기록이다. 고전의 현대화에 앞서온 이종묵·안대회 교수가 사진가 이한구씨와 함께했다. 이제는 다리가 놓이고 뱃길이 편해져서 절해고도란 말이 무색하지만, 수백 년 전의 고독을 상상하면서 선인들의 자취를 탐색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실 무인도가 아닌 한 그때도 섬에 사람이 살았을 게다. 형을 받은 자는 받은 자대로, 죄인을 받아들여야 했던 섬사람들은 그들대로 원통함이 없지 않았을 터다. 그런데 유배 당한 지식인을 통해서 섬은 ‘이야기’를 남기고 역사가 됐다. 요즘은 교동도가 ‘연산군이 유배됐던 섬’이란 걸 관광 포인트로 알리려 애쓴다니…. 풍부한 스토리텔링을 남겨준 유배객들에게 감사라도 해야 할까.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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