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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에이즈, 우리 시대의 책임







주혜란
그레이스 힐 의원
건강검진센터 원장




에이즈(AIDS·후천성 면역결핍증)와의 만남은 운명이다. 1980년대 중반 나는 서울 용산구 보건소장을 맡고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주한미군과 한미방역협의회를 구성해 활동했다. 70년대 의정부 보건소장 때 시작한 모임이다. 국제 성병에 대한 역학(疫學)조사와 정보교환, 혼혈아 방지, 혼혈아 외국 입양, 마약습관성 약물 중독 방지를 위한 정기 모임이었다.



 어느 날 그 회의에서 CIDA(AIDS)라는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미군 방역사령관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후천성 면역결핍증이라는 무서운 질병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병은 성적 접촉, 혈액으로 감염된다는 충격적 내용이었다. 그 다음 회의에서 흑인 병사 한 명이 한국에서 에이즈에 감염되었다는 얘기를 조심스럽게 들었다. 나는 한국의 윤락녀들도 감염될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보사부로 달려갔다. 의료정책국장에게 보고했다. 당시는 ‘86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있던 시기였다. 에이즈라는 고약한 질병이 국익과 국가 이미지에 큰 손실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나에게 함구령이 내려졌다. 보사부와 서울시청에서는 에이즈라는 말을 꺼내면 파면조치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나는 이런 지침을 무시하기로 결심했다. 치명적 사실을 방치할 수 없었다. 워싱턴에 있는 미 육군병원장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미군이 주둔한 용산 지역의 한국 보건소장 자격이었다. 에이즈에 대한 역학조사를 한·미 합동으로 시급히 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 결과 용산·의정부·동두천·평택·파주 기지촌 주변 471명의 윤락여성의 혈청검사가 실시됐다. 평택에서 흑인 병사를 상대한 윤락여성에게서 에이즈 양성반응이 나왔다. 최초로 국내 에이즈 감염자가 발견되었다. 나의 운명은 에이즈 연구와 퇴치 쪽으로 더욱 전환된다.



 에이즈 퇴치 홍보를 위한 노력은 외롭고 힘든 일이었다. 동성연애자들의 조직을 만들고 윤락여성들의 조직, 포주들의 조직까지 만들었다. 주한 미군들에게 혈청검사가 의무화됐다. 나는 ‘국내 에이즈 박사 1호’로 불렸다. 1990년에는 프랑스 르몽드지로부터 에이즈 투쟁에 가장 행동적인 여의사로 꼽혔다.



 오늘 부산에서 제10차 아시아·태평양 에이즈대회(ICAAP 10)가 개막한다. 에이즈 환자들이 병에 걸린 원인은 그들의 열악한 생존 조건이고, 그것은 그들의 의지라기보다 그들이 속한 사회구조에 의해 상당부분 결정된다.



 그들에게 병을 옮겨준 것은 미군 병사가 아니다. 그들을 존재하게 한 이 시대와 이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에이즈 환자, 에이즈 고아들을 치료하고 돕는 책임은 어느 한 개인, 한 나라가 아니다. 이 시대를 사는 전 세계가 한마음으로 짊어져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에이즈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UNAIDS 기구, 빌 게이츠 재단, 빌 클린턴 재단, 호주 등에 에이즈 관련 펀드가 있다. 한국에서는 정부와 종교단체, 민간단체, 기업의 관심과 협조가 부족하다. 이는 에이즈에 대한 정부 당국의 문제의식 부족, 일반인들의 깊은 편견 탓이다. 이제 국가 차원에서도 에이즈에 대한 인식이 전환돼야 한다. 정부뿐 아니라 민간단체도 에이즈 예방활동을 글로벌 헬스에 적합하게 활성화되도록 이끌고 나가야 한다.



주혜란 그레이스 힐 의원 건강검진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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