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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오판









역사는 이름 없는 대다수 민초가 만들어가는 거대한 대하(大河)지만 때로는 한두 사람의 권력자에 의해 물줄기가 바뀌기도 한다. 때로는 한순간의 오판(誤判)으로 모든 것을 잃기도 한다. 고려 제32대 우왕(禑王)도 그런 인물이다.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이 우왕 14년(1388) 철령위(鐵嶺衛)를 설치해 고려 영토인 만주 요동(遼東)을 명나라 영토로 삼겠다고 통보했다. 『고려사』 ‘우왕’조는 우왕이 밀직제학(密直提學) 박의중(朴宜中)을 명나라로 보내 ‘철령부터 북쪽으로 문주(文州)·고주(高州)·화주(和州)·정주(定州)·함주(咸州) 등 여러 주를 지나 공험진(公<5DAE>鎭)까지는 원래 우리나라 땅(自來係是本國之地)’이라고 반박했다고 전한다. 만주지역의 문주·고주 등지부터 두만강 북쪽 700리 지점의 공험진까지가 고려 강역이란 반박이었다. 공험진은 윤관이 ‘고려지경(高麗之境)’이란 비석을 세운 곳이다. 우왕은 요동정벌군을 조직해 최영을 8도도통사, 조민수를 좌군도통사, 이성계를 우군도통사로 삼았다.



 그런데 『고려사』 ‘최영열전’에는 최영이 직접 출병하겠다고 보고하자 우왕이 “그대가 가면 누구와 함께 정치하겠는가?”라면서 만류했다고 전한다. 이때 최영이 요동정벌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으면 위화도 회군도 없었을 것이고, 우왕은 폐출되어 살해당하는 대신 만주 강역을 획득한 국왕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을지 모른다.



 광해군도 마찬가지였다. 광해군은 쿠데타 당일인 재위 15년(1623) 3월 12일 광평대군의 후손 이이반(李而頒)으로부터 오늘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는 고변을 받았다. 이이반은 이날 아침 길에서 만난 친족 이후원(李厚源)이 “오늘 반정에 함께 참가하자”고 요청하자 고변했다. 고변 소식이 전해지자 쿠데타 군의 거의대장(擧義大將) 김류(金瑬)는 현장에 나타나는 대신 집에서 근신할 정도로 공포에 휩싸였다. 이때 광해군이 즉각 군사를 출동시켜 진압했다면 인조반정은 실패했을 것이다.



 그러나 『광해군일기』가 “왕이 마침 여러 여인들과 어수당(魚水堂)에서 연회를 하며 술에 취해 있다가 오랜 뒤에 그 상소를 보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전하는 대로 상황을 오판했고 그 결과는 비참했다. 거대 행정기관인 서울시가 교육기관의 무상급식 문제를 두고 주민투표라는 큰 칼을 뽑은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 투표는 끝났지만 후과(後果)는 이제 시작이다. 서울시민 노릇하기 골치 아파지게 생겼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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