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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90) 필름공장 사기 사건(하)





1억 사기 당하고, 건축업자에 또 당하고



1969년 신성일이 구입한 인디언레드 색깔의 69년형 무스탕 마하1. 그 해 필름공장 사기 사건을 당했던 신성일은 착잡했던 마음을 달래자는 생각에서 이 차를 구입하게 됐다. [중앙포토]





1967년 30살의 젊은이로 CEO가 됐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다. ‘대표이사’란 명함도 마음에 들었다. 서울역에서 염천교로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KAL 사무실이 조그맣게 있었다. 그곳 2층에 필름공장 건립을 추진하면서 사무실을 냈다. 차를 타고 지나갈 때마다 ‘우리 사무실이구나’라며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변호사 서긍연씨에게 현찰 1억원을 건넨 후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처외삼촌 노재원씨가 기가 팍 죽은 채 찾아왔다. 서긍연이란 사람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촬영이 바쁜 탓에 처외삼촌에게 따져보지도, 누구와 상의해 보지도 못했다. 처외삼촌은 민망한지, 이후 발길을 끊었다. 서씨는 감쪽같이 증발했다.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나는 1억원의 가치를 잘 몰랐다. 요즘으로 환산하면 100억원은 족히 될 것이다. 밥을 먹어도 제작사가 값을 치르고, 옷이 필요하면 엄앵란이 가져다 놓았던 때였다. 한마디로 세상물정 모르는 사나이였다.



 서씨가 필름공장 부지 명목으로 맡긴 상봉동 땅문서를 조회해보았다. 이미 네 차례나 담보를 잡혀 돈이 다 빠져나간 후였다. 엄앵란은 그 땅이라도 살려보려 했다. 땅을 인수받았지만 은행이자가 만만치 않았다. 돈을 버는 족족 이자로 나갈 정도였다. 다음 해 한 건축업자가 찾아와 솔깃한 제안을 했다. 그 땅을 주면 집을 지어 분양한 후 우선적으로 우리 땅값을 돌려주겠다고는 것이다. 60평 단위로 땅을 쪼개 집을 지었지만 집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건축업자도 종적을 감췄다. 곧이어 건축자재상들이 엄앵란에게 들이닥쳤다. 알고 보니 건축자재를 죄다 외상으로 가져다 썼던 것이다. 그 돈을 엄앵란이 뒤집어쓰게 됐다. 빚더미에서 해방되려면 분양을 마무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간이 분양소를 짓고, 깃발을 꽂고, 모자를 쓴 채 직접 계약에 나섰다. 떨이로 집들을 처분했지만 빚을 정리하고 나니 남는 게 없었다.



 간이 분양소에 앉은 엄앵란에게 온갖 협잡꾼이 몰려들었다. 변두리 싸구려 양복을 입고 자기를 과시하는 사람, 엄앵란에게 쉴새 없이 찬사를 퍼붓는 사람, 엄앵란의 눈을 똑바로 안 쳐다보는 사람 등등. 엄앵란은 그때 협잡꾼에 대한 공부는 다 끝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아내를 다소 원망했던 것도 사실이다. 처외삼촌이 소개해준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앵란은 애초부터 필름공장 건립을 반대했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 일을 겪고 나니 ‘뼈 빠지게 벌어도 돈은 펄펄 날아가는구나. 그래서 돈은 돌고 도는 거다’라는 옛말을 실감했다. 나는 노름도, 술도 몰랐고 여색을 가까이 할 수도 없었다. ‘에라, 돈 좀 써보자’ 해서 69년 8월 460만원짜리 인디언레드 색깔의 69년형 무스탕 마하1을 사게 됐다. 68년 일본 촬영 갔다가 요코하마항에서도 68년형 무스탕을 보았던 터다.



 올 봄 서울 중랑구청장 명의로 ‘재정비촉구구역’ 공문이 날아왔다. 3650평의 상봉동 땅 중 60평이 내 명의로 남아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감회가 묘했다. 44년 전 필름공장 사기사건이 절로 기억났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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