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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가계대출 중단” … 역할 뒤바뀐 한은·금융당국




나현철
경제부문 기자


은행들의 가계대출 중단 사태는 금융당국과 은행의 합작품이다. 지난 6월 말 가계부채 종합대책이 발표됐지만 은행을 포함한 금융권의 대출은 고삐가 풀린 듯 늘어났다.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한 금융감독원은 급기야 지난 12일 시중은행 부행장들을 불러 ‘관리 철저’를 주문했다. “가계대출이 최근 5년간 평균 경제성장률(GDP) 수준인 연 7%를 넘지 않도록 하라”는 목표도 상기시켰다. 은행들은 이 수치를 단순하게 환산했다. 7%를 12개월로 나누면 0.6%가 된다. 8월에 이 수치를 넘긴 은행들은 즉각 조치를 취했다. 각 지점에 공문을 보내고 가계대출과 관련된 전산망을 차단했다. 대출 중단 사태는 이렇게 시작됐다.

 고객이 당황하고 여론이 나빠진 건 당연한 일이다. 놀란 당국은 지난 19일 또다시 은행 경영진들을 소집했다. “유연하고 장기적으로 관리하라는 뜻이었다”며 실수요자에 대한 대출을 재개하라고 지시했다. 은행들도 “꼭 필요한 대출은 계속 나가고 있었다”며 전면 중단이 아니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하지만 일선 지점 창구에선 달라진 게 별로 없다. 가계대출의 주를 이루던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마이너스 통장이나 신용대출 등 일상적인 대출도 본점 승인을 받기 쉽지 않다. 당국의 결연한 의지에 놀란 은행들이 몸을 사리고 있는 탓이다.

 문제는 시장의 왜곡이다. 은행 가계대출은 앞으로 상당 기간 사실상 월별 할당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월 0.6% 증가분’까지만 대출을 내주고 이후엔 창구 문을 닫는 식이다. 선착순 대출이다. 후유증은 뻔하다. 꼭 필요한 사람보다 부지런한 사람에게 대출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미리 대출을 받아두려는 가수요도 생길 것이다. 급한 고객은 보험·카드·대부업체는 물론 불법 사금융에 손을 내밀게 된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쪽과 그렇지 못한 쪽의 금리 격차도 확대될 것이다.

 이런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총량 규제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총량 규제는 기름값을 낮추라는 가격 통제 못지않게 후유증이 크다. 시장을 왜곡하지 않는 다른 해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대출 가격(금리)을 높이면 자연스레 수요가 줄고 가계부채 총량도 관리할 수 있다. 그런데도 금리 결정권자인 한국은행은 가만 있고 금융당국은 좌충우돌하고 있다. 앞뒤가 바뀌어도 많이 바뀐 셈이다.

나현철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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