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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87) 남정임 보호작전(상)




신성일·남정임 주연의 영화 ‘이상의 날개’(1967). 19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중 한 명인 남정임은 활달하고 당찬 데가 있었다. 신성일과 남정임은 69년 ‘설원의 정’을 일본에서 촬영했다. [중앙포토]


19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문희·윤정희·남정임) 중에서 데뷔작 파트너로 나와 함께하지 않은 유일한 배우가 남정임(본명 이민자·1945~92)이다. 그녀는 성격에서도 다른 여배우와 확연히 구분됐다. 활달하고, 당돌한 면이 있었다.

 남정임은 66년 이광수 원작의 영화 ‘유정’에서 김진규의 상대역으로 데뷔했다. ‘유정’의 여주인공 이름을 예명으로 사용한 그녀는 이후 바로 나와 만났다. 정진우 감독은 그 해 나와 문희 주연의 ‘초우’가 호평을 받자 후속작 ‘초연’을 기획하면서 내 상대로 신예 남정임을 발탁했다. ‘초연’을 비롯해 ‘백발백중’ ‘순간을 영원히’ ‘양반전’ ‘학사기생’ 등이 66년 한 해 우리가 함께한 작품이다. 67년 이상 원작의 ‘이상의 날개’ 같은 문예영화에서도 호흡을 맞췄다.

 69년 일본 로케이션 영화 ‘설원의 정’ 촬영 차 남정임과 함께 일본으로 떠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멋쟁이였다. 직접 차를 운전하며 딸의 매니저도 맡았다. 일본 로케이션에 동행 못한 그녀의 어머니는 공항에서 “신 선생 믿고 우리 아이, 일본 보냅니다”라며 내게 신신당부했다. 촬영장 주변에는 젊은 여배우에게 눈독을 들이는 사나이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보호의식을 넘어 강박관념을 갖게 됐다.

 제작자는 니시야마라는 돈 많은 재일교포였다. 60년대는 일본의 파친코 산업이 급성장한 시기로, 니시야마는 이 사업으로 큰돈을 만지고 있었다. 5박6일 로케이션 동안 내가 확인한 바로, 그는 대단한 정력가였다. 내가 아는 마누라만 넷이었다. 니시야마가 남정임에게 3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촬영팀은 한겨울의 삿포로로 이동했다. 공항에 내리자 정면에 시계탑 같은 것이 숫자 ‘24’를 가리키고 있었다. 알고 보니 영하 24도란 뜻이었다. 우리는 덜덜 떨며 그 지역 최고 호텔인 삿포로그랜드호텔로 이동했다. 딸을 보호해달라는 남정임 어머니의 부탁이 또 떠올랐다. 나는 남정임 바로 옆방에 배정받은 후.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임아, 벽 한 번 두들겨봐.”

 남정임이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인터폰으로 “OK”라고 답해주었다. 내가 눈 시퍼렇게 뜨고 지키고 있는데 남정임을 넘볼 사람은 없었다. 신경이 온통 남정임에게 가 있는 바람에 여행의 재미를 찾을 수 없었다.

 삿포로 촬영 후 니시야마는 나고야 자택에서 회식자리를 마련했다. 배우들과 감독에게 소니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선물로 나눠주었다. 일정상 그날 저녁 나고야역에서 열차를 타고 도쿄로 이동해야 했다. 그 다음 날이 귀국이다. 니시야마는 나고야에서 하룻밤 더 머무는 쪽으로 유도하는 것 같았다. 나는 라디오를 받지 않고 바로 나왔다. 그리고 나고야 신간센역으로 갔다. 해외에선 한국 최고배우라는 자부심으로 행동했다. 고지식할 정도였다. 이후 밍크 숄을 걸친 이빈화가 라디오를 들고 플랫폼에 가장 먼저 나타났다. 내가 비아냥거렸다.

 “누님, 밍크 숄이 아깝습니다. 한국의 이름 있는 배우가 스타일 구겼네요.”

 다른 사람들도 천천히 역에 나타났다. 모두 머쓱해했다. 이어 도쿄행 야간열차가 적막을 뚫고 플랫폼에 들어왔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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