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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칼럼] 왕궁의 비극




문창극
대기자


요즘 덕수궁에 가보면 가림막을 쳐놓고 석조전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그 석조전의 설계도가 발견되었다니 반가운 일이다. 원형대로 보수공사를 할 수 있게 됐다. 가림막에는 당시 경운궁의 지도와 석조전 역사가 쓰여 있다. 서양식 왕궁을 짓기로 한 것은 1898년이었다. 1898년! 고종이 러시아 대사관으로 피신해 1년 가까이 머물다 돌아온 다음 해다. 조선은 왕의 목숨조차 스스로 지킬 수 없어 외국 대사관에 피신할 정도였다. 그런 굴욕을 겪고 돌아와 선포한 것이 대한제국이다. 조선은 중국으로부터 승인을 받는 ‘왕의 나라’가 아니라 중국과 대등한 ‘황제의 나라’가 되었다. ‘황제의 나라’ 첫 작품이 석조전이다. 황제의 정궁을 짓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정궁이 완성되는 1910년, 조선은 멸망했다. 나라가 망할 줄 모르고 궁을 짓다니…. 비극이다. 석조전의 설계도는 그런 의미에서 착잡했다.

 황제 나라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아니 덕수궁이 비좁아 그런 왕궁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가 왕궁을 지을 때였는가? 당시 조선은 말 그대로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는 존재였다.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나라는 풍전등화의 위기였다. 바로 그 몇 년 전인 1894년 조선의 구석구석을 살핀 뒤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책을 쓴 비숍 여사는 당시 서울을 이렇게 묘사했다. “서울의 냄새가 가장 지독하다…수도인 대도시가 이렇게 불결하다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 각 가정에서 버린 오물로 도랑은 가득 차 있으며 불결함과 악취는 코를 찔렀다….” 왕궁의 담장 너머에는 비참한 백성의 삶과 퇴락한 나라의 현장이 있는데 황제의 위신을 위해 왕궁을 짓는다? 당시 개화파였던 윤치호는 그의 일기에서 그런 왕에 대해 ‘장난감 궁궐’을 짓고 있다고 한탄했다. 비록 적은 돈일지라도 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사고, 철도를 놓고, 산업을 일으킬 생각을 못 했을까? ‘왕이 곧 나라’라는 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종의 눈에 궁 밖의 세상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석조전의 비운을 보면서 오늘의 우리를 생각한다. 우리도 지금 담 너머는 보지 못하고 왕궁을 짓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 좁혀 얘기하면 이 나라의 지도층은 마치 고종처럼 자기 왕궁을 짓는 데만 열중하고 있는 것 같다. 내일이면 서울시의 무상급식 투표날이다. 그 결과는 우리의 미래와 직결돼 있다. 지금 미국을 포함해 유럽 국가들이 경제 때문에 신음하고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 방만한 재정지출로 인한 나랏빚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인심을 얻자고 빚을 내어 돈을 펑펑 썼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건전한 재정을 강조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아이들 점심 한 끼 먹이자는데…”가 아니다. 그것은 둑이 터지는 일의 시작이다. 터지는 작은 구멍을 지금 오세훈 시장이 홀로 막으려 하고 있다. 마치 네덜란드의 어린 소년처럼…. 그러나 아무도 나서서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 그가 속한 당조차 외면하고 있다. 왜일까? 그들의 왕궁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에 내가 나서야 하는데 어떤 영향을 줄까’ ‘가까스로 차지한 당직인데 혹시 흔들리면 어떡하나’ 모두 자기 계산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는 생각지 않고 자기의 왕궁만 짓는 것이다. 왕궁이 완성되기도 전에 나라를 빼앗긴 고종과 무엇이 다른가. 그 소년은 죽기를 각오하고 시장직을 걸었다.

 재벌도 고종과 비슷하다. 세상은 지금 입만 열면 재벌에 대한 비판과 원성이다. 그렇다면 한번쯤 왕궁 담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둘러봐야 한다. 그래야 현실이 파악된다. 무조건 자유경쟁을 외치면서 앞으로만 나아갈 일이 아니다. 워런 버핏이 100만 달러 이상 버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부과하라는 글을 썼다. 물론 그것이 미국 경제를 살리는 완전한 처방은 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자기 궁 너머를 볼 줄 아는 사람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아는 것이다. 정몽준 의원이 나눔재단을 만들면서 “한국 기업은 성공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국민들 간의 공동체가 훼손되면 기업도 실패한다”고 했다. 그렇다. 왕궁 밖에는 오물 냄새, 신음소리가 넘치는데 우리 재벌들은 담 안에서 자기 궁을 짓기에만 정신이 없는 것 아닐까? 고종은 그 왕궁에서 살아보지도 못하고 빼앗기고 말았다.

 보통 사람들도 자기의 궁을 짓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지 않나 돌아보아야 한다. 여유 있고 가진 것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자기 이익에만 매달려 담 밖의 공동체에는 눈을 감고 있지는 않은가. 무상급식은 우리의 정신자세와 연관된 문제다. 내 아이는 내가 돌보겠다는 책임의식과 독립심이 중요하다. 우리 세대가 편하자고 다가올 세대에 빚을 넘겨줘서야 되겠는가. 그 역시 현재라는 궁에 갇혀 담 너머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문창극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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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