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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들과 왜 기싸움 하나” … 아슈케나지 ‘칭찬의 지휘봉’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가 연말 두 차례 방한한다. 피아니스트인 아들 보브카와 함께하는 듀오 콘서트(10월 12일 서울, 13일 대전), 시드니 심포니를 지휘하는 무대(11월 16, 17일 서울)다. 오케스트라 공연엔 피아니스트 키신과 첼리스트 마이스키가 각각 협연한다.


1953년 미국 시카고. 헝가리 태생의 지휘자 프리츠 라이너(1888~1963)가 단원들 앞에 섰다. 상임지휘자로 임명된 후 첫 만남이었다. 연습할 곡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입부는 금관악기의 몫이다. 트럼펫은 거대한 일출을 장엄하게 불어야 한다. 라이너는 시작 부분만 수십 번 반복해 연습시켰다. 이윽고 참지 못한 트럼펫 연주자가 지휘자에게 소리쳤다. “아무리 다시 시켜도 저는 절대 안 틀립니다!”

 지휘자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74)가 소개한 일화다. “트럼펫 연주자가 내게 직접 해준 이야기다. 라이너는 그가 언젠가 틀린 음을 낼 거라 믿었고 바랐던 것이다. 첫 만남에서 단원 전체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으레 기싸움을 한다. 대규모 인원을 끌고가야 하는 지휘자는 라이너처럼 ‘제왕적’ 지휘자의 위치를 선택하기도 한다. 이달 중순 오스트리아 북부 작은 도시 그라페넥에서 만난 아슈케나지는 “명령하고 윽박지르는 지휘자의 시대는 끝났다. 지휘자는 프리마 돈나가 아니라 효율적 리더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늘 옳은 사람도 없다. 지휘자도 ‘내 생각도 틀릴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랜드슬램 피아니스트=아슈케나지는 최정상급 피아니스트였다. 세계 3대 피아노 대회로 불리는 차이콥스키(1위)·퀸엘리자베스(1위)·쇼팽(2위) 콩쿠르를 석권했다. 콩쿠르 수상, 음반 발매로 피아니스트의 ‘전설’로 불릴 때쯤인 70년대에 지휘자로 활동을 넓혔다. 체코 필하모닉, NHK 심포니, 로열 필하모닉 등을 거쳐 현재 시드니 심포니의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다.

 지휘자 데뷔는 우연에 가까웠다. 아마추어 지휘자였던 그의 장인이 70년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권했다. 하지만 30대 초반이던 그는 “너무 어렵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공연의 절반만 지휘했다. 몇 년 후 기회가 또 왔다.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 등과 베토벤의 3중협주곡을 연주하기로 한 무대에 지휘자가 갑작스럽게 불참한 것이다. 그는 피아노를 치며 동시에 오케스트라를 이끌었고 지휘능력을 인정받았다. 74년 지휘자로 첫 음반을 발표하게 된 배경이다.

 “처음엔 지휘를 정말 못했다. 당시 녹음을 지금 들어보면 실력이 형편없다. 피아니스트로 혼자 활동하던 내게 힘든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오케스트라 경력이 수십 년 되는 단원들과 소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며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그때 실력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슈케나지는 자신의 지휘 스타일을 둘로 요약했다. ‘단원 개인을 지적하지 않고, 내가 먼저 준비한다’는 것이다. 이런 스타일은 그를 ‘단원들이 다시 부르는 지휘자’로 만들고 있다. 그는 오케스트라와 마찰을 일으킨 일이 없으며, 한 번 거쳐간 교향악단에서는 늘 ‘명예지휘자’로 추대된다. 시드니 심포니와 2012년까지 약속됐던 임기는 재임 중인 지난달에 1년 연장됐다.

 ◆지시할 땐 “원더풀” 먼저=인터뷰 당일 아슈케나지는 유럽연합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연습 현장을 공개했다. 그가 무대로 걸어 나오자 젊은 단원들을 발을 구르며 환호했다. 말러 1번 교향곡을 연습하며 그는 단원들에게 여러 번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무엇이든 지시할 것이 있으면 “원더풀(Wonderful)”을 먼저 외친 후에 했다. 연습은 세시간 넘게 이어졌지만 단원들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웃고 즐기는 파티 분위기였다.

 아슈케나지는 2007년 콘서트 피아니스트 은퇴를 선언했다. 독주 무대에 서지 않겠다는 뜻이다. 다른 연주자와 함께 하는 실내악 무대에서만 만날 수 있다. 그는 “내 나이가 되면 독주자로서는 완벽할 수 없다. 일부 피아니스트들처럼 10~12곡만 평생 치면서 끝까지 연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준이 떨어진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드는 연주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리허설이 끝나고 밤늦은 시간에는 단원들 전체를 불러 함께 식사했다. 객석에 앉아 리허설을 지켜보던 그의 아내 토룬 요한스두티루 아슈케나지는 “꼭 50년 전 결혼했는데, 지휘대에서 큰 소리 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지휘는 남편의 오랜 꿈이었다. 7~8세부터 발레 공연에 가도 오케스트라만 바라봤다고 한다. 아마 그의 지휘 리더십은 이런 ‘애정’에서 나오는 듯하다”라고 귀띔했다.

그라페넥(오스트리아)=김호정 기자

아슈케나지 말말말

▶ “ 천재 피아니스트 키신이 매년 나올 수는 없다. 음악 콩쿠르 또한 맹신할 만한 것은 못 된다”

▶ “ 피아니스트가 적당한 나이에 은퇴하지 않고 욕심껏 무대에 서는 것은 최악의 실수다”

▶ “ 순간적 영감에 의존하는 연주자는 오래가지 못한다. 음악과 무대에 대한 책임감이 우선이다”

▶ “ 처음 다루는 작품은 되도록 작은 무대에서 연주하려 했다. 나는 별로 용감하지 못한 연주자다”

▶ “ 지난해 슈만을 함께 연주한 한국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인상 깊었다. 음악에 헌신할 줄 아는 연주자였다”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1937년 구 소련 고르키 태생.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공부하고 1955~62년 3대 피아노 콩쿠르에 잇따라 입상했다. 63년 영국으로 망명했으며 74년 지휘자로 공식 데뷔했다. 베토벤 소나타, 바흐 평균율 등 전곡을 녹음한 앨범이 유명하며 그래미상을 여섯 번 받았다. 지난해 5월 소록도에서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센병 환자를 위한 공연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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