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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음식잡설 ⑫ 고등어 ‘일기예보’





물속에서 ‘나는 생선이다’를 뽑는다면 올여름에는 경쟁자가 없다. 민어 때문이다. 안 그래도 수퍼스타였던 민어의 머리에 왕관 하나가 더 얹어진 모양새다. 미디어의 영향이 컸다. 다행히 올해 어황이 나쁘지 않고 값도 생각보다 눅다. 심지어 살아 있는 놈도 유통된다. 추석 전까지는 민어철이니 아직 복달임을 못하신 독자 여러분에게도 기회가 있다.

 민어에 대한 수많은 기사 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김순경 선생의 글이다. 음식칼럼의 원로인 그는 1970년대 구로공단의 풍경 한 자락으로 민어의 추억을 끄집어냈다. 매년 여름이면 때아니게 노동자들이 대거 낙향한 후 제때 귀사하지 않아 노무관리자들이 애를 먹었다는 내용이다. 민어로 복달임을 하러 고향에 갔다가 부모님의 만류에 어찌어찌 상경 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생긴 일이었다. 일개 생선이 산업현장을 마비(?)시킨 역사로 기록될 만한 일화가 아닌가 싶다. 자식에게 민어를 잡아 탕을 끓이는 그 구수한 현장이 눈에 삼삼해서 군침이 돌고, 그 어머니들의 나무 등걸 같은 손이 생각나 눈시울이 뜨끈해진다. 한편으로는 그놈의 민어 때문에 발을 동동 굴렀을 노무담당자의 모습을 생각하면 슬며시 웃음이 배어 나온다. 하나 요즘 우리는, 구로공단의 신화와 함께 민어 낙향의 전설도 묻혀가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수산시장은 요즘 민어를 파느라 바쁘다. 싱싱한 민어의 눈이 새빨개서 숙취가 덜 깬 단골 어물전 아저씨 같다. 그 옆에 반가운 손님도 있다. 올해 워낙 비싸고 귀해서 ‘금등어’라고 불렸던 고등어가 싱싱한 자태를 뽐낸다. 그 통통하고 매끄러운 몸매를 쓰다듬어주고 싶다. 고등어는 서민의 생선이다. 물량이 달리면 정부 비축 고등어가 시장에 풀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물론 맛도 정부미처럼 퍽퍽하고 심심하다). 아무 생선이나 정부가 수매하고 가격 조절을 위해 예산을 쓰지 않는다. 정부가 나선다는 건 그만큼 올해 고등어가 귀했다는 뜻이다.

 내게 수산시장에서 고등어를 대주시는 아주머니가 있다. 이 양반은 표정으로 고등어 ‘일기예보’를 하신다. 내가 나타나면 올 한 해는 대부분 인상을 찌푸리셨다. 고등어가 비싸고 물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신이 나셨다. 멀리서부터 함박 웃으신다. 아, 고등어가 좋구나, 나는 알아챈다. 덩달아 신이 난다. 저 남쪽 바다에서 어부들이 힘겹게 잡아올린 고등어가 서울에서 새벽부터 사람들을 흐뭇하게 만든다. 무를 숭덩숭덩 썰어넣고 조림을 하면 좋겠다. 일본식으로 초절임을 하거나, 나처럼 스파게티에 버무려도 일품이다. 터키식으로 샌드위치가 안 될 것도 없다.

 고등어 요리는 솜씨도 별로 필요 없다. 좋은 고등어가 알아서 맛을 낸다. 누구 표현대로 감칠맛이 입안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붙는다. 가을이 들어야 진짜 고등어 제철이지만, 이르게 제 맛을 시작했다. 어디 마당이라도 있다면 연탄불을 피우고 석쇠에 고등어를 얹고 싶다. 왕소금을 술술 뿌리고 기다리면 고등어에서 기름이 뚝뚝 떨어져 푸른 불꽃이 피어오르고, 그 연기에 한 번 더 훈연돼 머리가 어질어질하도록 맛을 낼 것이다. 껍질이 익어서 바삭하게 부풀어오르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면 고등어가 다 익는다. 그걸 한 점 뚝 떼어 밥술 위에 얹으면 진짜 꿀맛인데.

 고등어는 민족의 인문지리 교재다. 한 마리의 고등어를 통해 우툴두툴한 삶의 현장을 더듬어갈 수 있다. 싱싱한 생선을 먹을 수 없었던 오지인 경상도 내륙에서 필연의 결과로 생긴 간고등어 얘기다. 보잘것없는 운송수단에 실린 고등어가 길 나쁜 내륙까지 당도하려면 소금 간은 필수였다. 그것이 신비한 간고등어의 맛을 잉태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염장을 담당하는 기술자들은 계절과 온도에 따라 양을 달리 먹이면서 그 소금 간의 미학을 완성시켰다. 살아서 사료 값이던 고등어를 금값으로 변화시킨 인간의 공력이었다.

 어머니가 간고등어를 살 때 치마꼬리를 붙들고 있던 어린 나는 늘 궁금했다. 왜 간고등어는 한 마리라고 하지 않고 ‘한 손’이라고 할까. 그리고 더 놀라운 건 한 손은 왜 두 마리일까 하는 점이었다. 그건 아마도 속에 들어 있는 작은 놈은 우리보다 더 가난한 옆집 몫이 아니었을까. 간혹 옆집에 전해진 고등어가 새우깡 한 봉지로 되돌아오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말이다.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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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