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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만에 500인분 밥 짓는 얘기 들어보시겠소




해인사 심우 스님이 들려준 ‘전설의 공양간 이야기’는 맛 있었다. 지금은 자취를 찾아볼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해인사에서 장을 출시한 이유를 묻자 해인사 총무 심우 스님은 “해인사 음식의 전통이 끊기는 게 아쉬웠다”고 털어놨다. 순간 해인사 음식의 전통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스님을 졸라 왕년의 절간 부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여기서 왕년이란 1987년 이전, 그러니까 가스 보일러가 절집 부엌에 들어오기 전이다. 처음에는 말을 아끼던 스님이 한번 추억에 빠져들자 이야기 보따리를 줄줄이 풀어놨다. 여태 세속에는 비밀로 부쳐졌던 해인사 공양간의 비화를 심우 스님 목소리로 공개한다.

글=이상은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깍두기 3.5cm 못 맞추면 불호령 … 자 대고 자르기도




해인사 비구니 암자인 ‘국일암’ 앞마당. 귀여운 장독이 올망졸망 놓여 있다.





스님들의 발우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지금은 부엌이 현대식이지만 1987년 이전에는 장작불과 가마솥이 있는 재래식이었지. 행자 생활도 훨씬 혹독했어. 행자란 속세에서 승가로 넘어갈 때 1년 정도 거치는 과정인데, 부엌 수행 역시 행자의 중요한 임무지. 절간 부엌엔 공양주·간상장·채공장·경두장·찌개장이 있어. 공양주는 밥하는 행자, 간상장은 상 차리는 행자, 채공장은 반찬 만드는 행자, 경두장은 국 끓이는 행자, 찌개장은 말 그대로 찌개 끓이는 행자야. 그런데 이 역할은 1년 고정이야. 밥하는 행자로 한번 정해지면 1년 동안 밥만 지어야 하고, 국 끓이는 행자가 되면 1년 동안 국만 끓여야 한다는 뜻이지.

 그때는 두부도 선배 비법을 따라 행자가 직접 만들었어. 간수를 잘못 맞췄다가는 두부가 딱딱해지기 일쑤였고 밥을 먹다 돌이 씹히면 노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졌지. 고기나 조미료를 안 쓰고서 맛을 내야 하니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더 엄격했던 게야. 지금도 그렇지만 재료가 겹치는 것은 금물이었어. 공양주가 콩밥을 지었는데 채공장이 콩나물 반찬을 하고 경두장이 콩나물국을 끓였다 난리가 난 적이 있지. 반찬 크기도 정확하게 맞춰야 해서 배추김치는 3cm, 깍두기는 3.5cm, 두부는 10cm로 맞추느라 자를 대고 자르는 간상장도 있었지.

 속세에서 승가로 귀의하기 전에 고된 부엌 생활을 거치는 이유는 진정 이 길을 가고 싶은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서야. 가장 허드렛일을 하며 ‘이 정도로 원하는 길인가’ 진지하게 되묻는 시간을 주는 거지. 과거 군사정부 시절에는 스님이 되려는 사람이 많아서 행자 수급도 원활했어. 하루에 거의 10명씩 들어왔지만 힘든 부엌일에 지쳐 속세로 다시 나가는 사람도 많았지.

누룽지는 차곡차곡 모아 고추장 만들어




부엌이 현대식으로 바뀌긴 했지만 공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공양간 식탁 위에 놓인 양념.

지금 생각해 보니 공양간에 가스 보일러가 들어오기 전에는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 우리 해인사 부엌에는 ‘5분 만에 500인분 밥 짓기’라는 필살기가 있었어. 나도 행자 시절엔 공양주였기 때문에 전설의 ‘5분 만에 500인분 밥 짓기’를 해야 했지. 일단 나무 해오는 사람이 소나무를 가장 좋은 것으로 골라 30cm 크기로 잘라 놔. 공양간 나무는 방에 불을 때는 나무와 달리 흠집도 없고 송진도 적은 깨끗한 것으로 골라 썼어. 처음엔 일반 장작으로 물을 끓이다 물이 끓으면 장작을 빼내고 공양간 전용 소나무를 우물 정자로 쌓아 아궁이에 넣었어.

 500인분 밥을 하려면 쌀은 스물닷 되가 필요했어. 여기서 ‘되’는 속세의 되가 아니야. 해인사 됫박은 많이 크거든. 무게로 하면 500인분 밥에 50kg 정도 들어갔어. 우물 정자로 쌓은 장작 아래 숯불을 지피고 공양주가 “스물닷 되입니다!”라고 소리치는 순간, 보조 공양주는 펄펄 끓는 물속으로 순식간에 쌀을 부어야 했어. 쌀을 부으면 얼른 솥뚜껑을 닫고 전기 부항기로 온도를 올렸지. 전기 부항기를 쓰면 불길이 거세지고 몇천 도까지 올라가거든. 그렇게 쌀을 붓고서 4분30초를 기다려. 4분30초가 되면 보조 공양주가 초를 세기 시작했지. 공양주는 그때부터 냄새를 맡았어. 밥 냄새를 맡던 공양주가 4분55초에서 5분 사이에 별안간 소리를 질러. “불 빼!” 그러면 보조 공양주가 순식간에 장작을 뺐지. 조금이라도 장작을 늦게 빼면 공양주가 “물 뿌려!” 하고 소리를 질렀어. 0.01초 사이로 밥맛이 결정났던 게지. 가장 잘된 밥은 누룽지가 살짝 눌어붙어 있어야 해. 너무 두껍게 돼도 잘못된 거지. 공양주가 냄새를 잘 맡는 게 중요했는데, 눈이나 비 오는 날은 냄새 맡는 게 참 힘들었어.

 참, 밥을 하는 동안 공양주는 가마솥 옆에, 그러니까 부뚜막 위에 올라가 있어야 했어. 뜨거운 가마솥 옆에 있으면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어. 더위를 못 견디고 부뚜막 위에서 쓰러진 적도 많았어. 그런 공양주에게 절 살림을 관장하는 원주스님이 몰래 주던 ‘특별식’이 있었어. 뭐였을 것 같아? 라면이야. 라면이 귀하던 시절이었고 더군다나 절에서 라면을 먹는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시절이거든.

 500인분 밥을 하다 보니 누룽지만 모아도 1년이면 양이 엄청났어. 누룽지 전용 대형 뒤주에 차곡차곡 모아뒀다가 가을이 되면 그 누룽지로 고추장을 담갔지. 고추장 담그는 날이면 근처 방앗간에 가서 누룽지를 아주 곱게 빻아 왔어. 해인사 스님들이 다 나와서 팔을 걷고 고춧가루에 누룽지 가루와 물엿을 넣어 고추장을 만들었지. 그 누룽지 정말 고소하고 맛있었는데. 재래식 가마솥에 눌어붙은 걸 박박 긁어다 이가 부러질 정도로 1년간 딱딱하게 말린 누룽지여야 제맛이 났거든. 그래, 젊은 기자 양반은 그 맛을 아시는가?

 
● 해인사에서 공양하려면 추억의 가마솥밥이나 누룽지 고추장은 이제 자취를 감췄지만 그래도 해인사를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양을 할 수 있다. 본당 공양 시간은 오전 6시·11시 그리고 오후 6시. 조금 더 옛날 모습에 가까운 분위기를 느끼고 싶으면 해인사 약수암 공양을 추천한다. 사찰음식으로 유명한 약수암에서는 운이 좋으면 산초장아찌 등 독특한 사찰음식을 맛볼 수도 있다. 공양 시간은 오전 5시50분·10시50분, 오후 4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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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