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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빚 900조 눈앞 … 소득·자산가치 하락, 고통 견딜 체력도 떨어져

가계부채발(發) 경제 위기의 비상등이 켜졌다. 지난해 첫 8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는 1년 새 더 빠르게 늘면서 900조원을 코앞에 두고 있다. 정부가 각종 규제를 들이대며 억눌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은행을 막으면 제2금융권 대출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 이창선 금융연구실장은 “제2금융권 대출은 저신용자들의 생계형 자금 비중이 높아 부실로 이어지기 쉽다”며 “이 정도 부채 규모라면 외부의 충격이 왔을 때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점 때문에 굵직한 경제위기 때마다 버팀목 역할을 해준 가계가 이번 유럽발 재정위기 상황에서는 오히려 국내 경제 위기의 시발점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빚이 갑작스레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소득은 줄고 자산가치가 떨어져 가계의 기초체력이 뚝 떨어지면 정부가 꺼낼 마땅한 카드가 없어진다. 금융계 관계자는 “과거 두 번의 큰 경제위기를 겪으며 만들어진 ‘가계=위기 완충지대’라는 공식이 더 이상 들어맞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빚에 비해 소득 증가는 더디기만 한 게 더 문제다. 국내 가계부채는 경제· 소득 규모로 따질 때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2009년 기준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53%(9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134%)을 크게 넘어서고 있다. 미국(132%)과 일본(130%)보다도 높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영일 연구원은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선진국은 가계부채가 조정국면에 진입했지만 한국의 가계부채는 꾸준히 늘고 있다”며 “이 추세가 이어지면 가계 빚이 경제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2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가계부채는 전 분기보다 18조9000억원 늘어난 876조3000억원이었다. 가계부채는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카드사 및 할부금융사 외상판매)을 합한 금액이다.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5조4000억원으로 1분기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마이너스통장 대출과 제2금융권 대출이 많게는 다섯 배까지 늘었다.

 한국은행 박승환 금융통계팀장은 “최근 통계 기준 개편으로 전에 잡히지 않던 가계빚이 일부 추가된 데다 가계 빚도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당장 돈이 급한 사람들이 돈을 빌릴 수 있는 여러 창구로 흩어졌다는 얘기다. 문제는 제2금융권 대출은 가계부실은 물론 금융시장 전반의 건전성에도 나쁜 영향을 끼치기 쉽다는 얘기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연구위원은 “제2금융권 대출 증가가 심상치 않다”며 “가계 체력이 떨어져 있어 과거 금융위기에 비해 고통 분담 여력이 크지 않은 게 문제”라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특히 중년층 이상의 가계 빚에 주목했다. 그는 “이들 대부분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약하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집을 사기 위해 무리하게 빌린 빚을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며 “주택 보유 비중이 높은 40대 이상의 ‘하우스 푸어’ 현상이 경제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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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층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비싼 대학 등록금 등의 탓으로 저축은커녕 사회생활을 빚으로 출발하는 게 드물지 않다.

 직장인 김모(31·여)씨는 “대학 졸업 후 3년 동안 고시 준비하면서 현금서비스로 근근이 생활해 왔다”며 “처음엔 대출금이 20만원에 불과했지만 매달 ‘돌려막기’에 추가로 생활비를 5만원, 10만원씩 빌려 쓰다 보니 1년 반 만에 당장 갚아야 할 돈이 150만원으로 불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중소기업에 취직해 첫 월급으로 70만원을 상환했지만 아직 갚을 돈이 더 많다”고 했다.

 저축률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만 해도 가계에 상대적으로 여유자금이 많아 정부가 고금리·고환율(원화가치 하락) 정책을 통해 기업의 체력을 키워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계의 버팀목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저축률이 낮아졌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은미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 가계 저축률의 수준과 하락 속도 모두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며 “지난해 한국의 가계저축률은 OECD 평균의 5분의 2 수준인 2.8%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고, 1990년 이후 가계저축률 하락 속도는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가계저축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경제성장률이 0.15%포인트 둔화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또 총고정투자율은 0.36%포인트,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소비 비중도 0.25%포인트 하락한다.

 가계부채 급증으로 통화정책을 펼칠 운신의 폭이 줄어드는 것도 큰 문제다. 가계가 금리 인상 충격을 감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금융지주 송태정 수석연구위원은 “가계부채 문제는 통화정책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35~54세 가구주가 올해를 정점으로 내년부터 줄기 시작하면 대출 수요도 다소 감소할 것”이라며 “이때가 가계대출을 건전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과거 경제위기 당시에 비해 가계의 체력이 많이 약해진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2003년 카드사태처럼 당장 가계부실로 이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권 실장은 “가계 빚이 늘어나면 소비심리가 더 얼어붙어 경기의 악순환을 가져오게 된다”고 말했다.

안혜리·윤창희·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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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