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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경제 콘서트(58) Boom vs Doom Ⅵ

'Boom vs Doom' 시리즈 마지막입니다. 많은 관심 감사드립니다.





2003년 7월, 중국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떨고 있었다. 한 풀 꺾이긴 했지만 사스는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였다. 7월28일 후진타오 주석이 '전국 사스 방지 업무 회의'를 주관했다. 그가 회의에서 의미 심장한 한 마디를 던진다.



"전면 발전, 협조 발전, 지속 가능한 발전관을 가져야 한다"



한 분야의 발전이 아닌 전체적인 발전, 특정 계층의 발전만이 아닌 사회 전체의 조화로운 발전, 미래에도 지속될 수 있는 그런 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 발언에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 한 마디는 후진타오 주석의 국정운영 지침을 담고 있었다.



그 해 7월 10일 당 16기 3중전회가 베이징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심화 문제에 대한 당의 결정'이 채택되고, 그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을 기본으로 삼는(以人爲本)발전이어야 한다. 전면적이고 협조적이며 지속 가능한 발전관으로 경제 사회의 전면적인 발전을 추진해나가자"



'과학발전관(科學發展觀)'이라는 말이 처음 공산당 문건에 채택된 것이다. 과학발전관은 2007년 가을에 열린 17기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당헌에 삽입됐다. 마오쩌둥 사상-덩샤오핑 이론-장쩌민 삼개대표론을 잇는 당의 지도노선으로 자리잡았다.



"성장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성장을 이루자"는 게 과학발전관의 핵심이다. 영어로는 'Scientific outlook on development'로 번역된다. 격차해소, 사람이 중심 되는 성장, 그리고 지속 가능한 성장이 핵심 내용이다. 한마디로 성장제일주의에서 벗어나자는 선언이다. 사회적 조화를 뜻하는 '허셰(和諧)사회' 역시 이 개념에서 발전한 것이었다.







성장과 경쟁, 시장을 강조하는 신우파의 머리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논리들이다. 학계 주류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후진타오의 과학발전관 노선에 이론적 틀을 제공한 사람들이 바로 신좌파 지식인들이다. 천안문 사태의 한 태제였던 빈부격차와 불균형 타파를 외쳤던 바로 그들이다. 시장과 경쟁이 낳은 사회 불평등 문제를 치유하지 않으면 중국의 미래가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신좌파는 1990년대 초 형성돼 2000년 대 들어 본격 등장했다. 후진타오가 들어선 시기와 맞물린다. "장쩌민 시대가 신우파의 시대였다면, 후진타오 시기에는 신좌파에게 방점이 찍혔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과거에 대한 반성이다. 오로지 돈을 향해 달려온 중국은 지금 각종 '시장병'에 시달리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에 따른 빈부격차, 도시와 농촌 간 격차, 노동자의 소외 등 자본주의의 병폐가 중국에 그대로 이식됐다. 열악한 작업환경을 이기지 못한 노동자들이 잇따라 자살하고, 거의 매일 부정부패 관리들이 쇠고랑을 차고 있음에도 부패는 끊이지 않는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한 해 약 16만 건의 각종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게 지금 중국의 실상이다.



성장보다는 분배를, 시장보다는 국가의 조정을, 경쟁보다는 균형을 강조하는 신좌파의 이론이 먹힐 수 밖에 없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정치적 분위기와도 맞물렸다. 후진타오 주석이 장쩌민 주석으로부터 공산당 권력을 받은 게 2001년이었다. 이듬해에 3월 전인대에서 국가 주석에 오름으로서 '후(후진타오)-원(원자바오)체제'가 시작됐다. 후 주석의 정치적 배경은 공청단이다. '퇀파이(團派.공청단 그룹)'지도자들은 주로 내륙지역에서 정치적 역량을 쌓은 사람들이다. 도시보다는 농촌을, 기업인보다는 농민을, 연안보다는 내륙에 더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당연히 대중적 성향이 강하다.



미국 부루킹스연구소의 중국 전문가 리청 박사는 '퇀파이'를 '포퓰리스트(Populist)'로 표현한다. 연안 개방도시에서 성장해온 '엘리트(Elite)'태자당과는 근본부터가 다른 것이다. 대중적 성향이 강한 후 주석의 등장은 신좌파의 세력 확대에 결정적인 기반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신좌파와 신우파가 부딪친 첫 사례는 2004년 랑셴핑(郞咸平. 아래 사진)홍콩중문대 교수의 ‘국부 유출’ 논쟁이다. 그는 “국유기업의 민영화 정책으로 국가의 부(富)가 일부 특권층의 배만 불려준다”며 “시장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외쳤다. 당시 랑셴핑은 국유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국가 재산을 꿀꺽 삼킨 커롱(Kelon)그룹의 구추쥔(顧雛軍)회장을 공격했다. 그의 공격은 국유기업 유실 논쟁으로 옮았고, 당시 구 회장을 변호하던 인물이 대표적인 신우파 지식인이었던 장웨이잉 베이징대 교수였다. 장웨이잉은 ‘기업가를 추한 괴물로 만들지 말라’며 구 회장을 두둔하고 나섰다. 결과는 구추쥔의 감옥행으로 끝났다. 신좌파의 첫 승리다.







그리고 터진 게 바로 2010년 말 장웨이잉 베이징대 광화(光華)관리학원장의 사퇴다('Boom vs Doom Ⅳ).



장웨잉을 물러나게 한 '외압'의 실체 역시 '신좌파(新左派)'였다. 장웨이잉은 '국가는 뒤로 물러나고 시장에 맡겨야 한다(國退民進)'고 주장한다. 신좌파 지식인들은 이런 그를 '시장병(市場病)'에 걸렸다고 비난한다. 왕휘는 "시장 숭배주의가 빈부격차·부정부패 등 고질적인 문제를 낳았다"며 "이제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진민퇴(國進民退·국가가 나서고 민간은 물러선다)'하라는 얘기다.



2008년 미국 발(發)금융위기이후 두 진영 간 논쟁은 더 치열해졌다. 미국 경제의 '몰락'를 목격한 신좌파 학자들이 신우파의 '서방화'정책을 집중 공격한 때문이다. 양빈(楊斌·양빈)중국사회과학원 교수는 "지나친 서방화 정책으로 중국은 지금 자본주의 진영의 주변국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탈(脫)서구'를 외치고 있다. 전선이 '시장병'에서 '서방병(西方病)'으로 확대된 셈이다.



장웨잉은 물러났다. 학계는 이를 두고 "신우파와 신우파 사이에 벌어진 사상 논쟁에서 신좌파가 승리한 것"이라고 말한다. 신좌파가 더 득세할 것이라는 얘기다.



논쟁은 학계를 넘어 정책으로 표현되고 있다. 태자당 정치인 보시라이(熙來)가 이끌고 있는 충칭(重慶)시는 그 현장이다. 충칭에서는 지금 농민을 위한 주택 건설 사업이 한창이다. 그간 발전과정에서 소외됐던 농민들에게 의료·교육·복지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게 시정부 정책이다. 그런가하면 충칭의 일부 대학생들은 농촌 체험 활동에 나선다. 그들은 붉은 깃발을 들고 농촌으로 찾아가 노력 봉사를 하고 있다. 문혁시기 하방(下放·지식인들의 농촌 노동 활동)을 연상케 한다. 요즘 중국 언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충칭 모델'의 현장이다.



충칭모델의 근저에 깔려 있는 게 바로 신좌파 논리다. 시정부는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를 적극적으로 설계하고, 제공한다. 그런가하면 도시 곳곳에서 마오쩌둥 주석의 혁명 정신을 배우자는 홍색 캠페인이 벌어진다. 국가의 간섭과 공평한 분배, 사회주의 순수성 회복 등 신좌파 주장 그대로다. 지난 해 12월 충칭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습근평)부주석이 "중국 발전의 길을 제시한다"고 평가하면서 충칭모델은 더 탄력을 받고 있다. 신좌파 사고가 정치권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신좌파에게 중국의 내일을 물어야 할 판이다.



그렇다고 신좌파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하나로 통일된 것은 아니다. 성향이 '좌파'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질 뿐 주장은 여러 갈래다. 유화 확대, 환경 보호, 심지어 문혁으로의 회귀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부 신좌파 학자들은 '나는 신좌파가 아니야'라고 부인하기도 한다.



신좌파의 역사는 길다. 마오시기에는 좌파가 주류였고, 덩샤오핑 시기에도 소수로 존재했다. 덩 시대 좌파들은 마르크스 공산주의 이론을 제시하며 개혁개방의발목을 잡았다. 후챠오무(胡喬木)·덩리췬(鄧力群) 등이 '원조 좌파'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우리 지금 주목하고 있는 '신좌파'는 개혁개방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70~80년대 원조 좌파와 구별된다.







신우파가 당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중국이 안고 있는 문제는 권력에 기대 시장의 이권을 빨아 먹는 '권귀병(權貴病)'에 있다"는 게 이들 신우파의 주장이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해 시장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논리다. 신우파 성향의 경제학자인 천즈우(陳志武)예일대 교수는 "중국의 발전은 서방이 구축해 놓은 시장경제체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신좌파 성향 지식인들의 생각대로라면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결국은 발전의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유주의 성향의 역사학자인 쉐친(朱學勤)상하이대학 교수는 "신우파 경제학자들은 그동안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하면서도 이를 위한 정치체제 개혁을 주장해 왔다"며 "그러나 신좌파의 주장은 비판 수준일 뿐 독립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류자리를 꽤차지는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 칼럼에 언급했듯, 학계 논쟁은 정치의 풍향계 역할을 한다. 특히 내년 등장할 시진핑 체제가 어떤 주장에 힘을 실어줄 지에 따라 향후 10년 중국 경제의 방향이 결정된다. 정권 교체를 1년 여 앞둔 지금 신우파와 신좌파 학자들의 학술 토론이 '투쟁' 수준으로 발전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왼쪽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오른쪽으로 갈 것인가. 계획인가 시장인가, 성장인가 복지인가. 겉으로 보기에는 일사분란해 보이는 중국 학계가 속으로는 좌·우파로 나뉘어 '사상 투쟁'을 벌이고 있다.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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