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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힌 캄보디아 자료센터 유크 창 소장





“킬링필드 잊지 않으려 모든 증거·기억 수집”



유크 창 캄보디아 자료센터(Documentation Center of Cambodia)소장(전 UC 버클리 석좌교수)은 “한국은 캄보디아의 실수를 교훈 삼아 지역분쟁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도훈 기자]





“집단학살(genocide)에서 살아남은 자는 축복 받았다. 모든 게 다시 시작이다. 살 집도, 직업도, 친구도, 가족마저. 다른 한편으론 불행하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었으며 괴로운 기억에 쫓긴다. 살아남은 것도 죄스럽다. 희망이 없다. 나는 킬링필드에서 살아남았다.”



 캄보디아 최고의 지성이자 양심으로 꼽히는 유크 창(Youk Chhang·50) 캄보디아 자료센터 소장. 200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킬링필드 주동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이 공로로 2000년 트루먼-레이건 자유상을 수상했고, 시사주간 타임이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2006, 2007년 연속으로 뽑혔다.



 크메르 루주 정권의 반인륜범죄를 알리는 데 앞장 서온 유크 창 소장이 한국에 처음 왔다. 동북아역사재단과 세계NGO역사포럼이 공동 주최하는 제4회 역사NGO세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창 소장은 21일 서울 연세대 위당관에서 열린 ‘동아시아 미래 100년의 역사를 다시 쓴다’ 세미나에서 캄보디아 집단학살 관련 기조발표를 했다. 인터뷰를 위해 따로 만났을 때 시종 미소 띤 얼굴이었다.



 -참혹한 현장에서 살아남아서 예일대 학위(정치학 석사)까지 마칠 수 있던 원동력이 뭔가.



 “당시 나는 14살이었고, 어머니와 여동생 둘을 제외한 가족·친척이 모두 몰살당했다. 고통스러웠지만 어머니를 지켜드려야 했다. 어머니는 결코 울지 않으셨다. 고통이 나를 주저앉히지 못하게 해야 했다. 학살 관련 연구를 위해 이라크·보스니아·동티모르 등을 다녔는데 국적을 떠나서 모든 어머니들이 비슷했다. 살아남은 자는 역사 속에서 살되 굴하지 않는 정신력이 필요하다.”



 -30여 년이 지난 이제서야 전범 단죄가 부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학살 책임자를 법정에 세우는 것만큼 중요한 게 후대를 위해 모든 증거와 기억을 수집하는 일이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왜곡될 수 있다. 자료센터는 이제까지 120만 개 정도의 증거자료를 모았다. 가해자 역시 역사의 피해자일 수 있기에 일단 증언을 청취할 뿐 판단은 보류한다. 미래세대가 역사를 잊지 않게 교육하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다.”



 창 소장은 “피해자가 자신을 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한 보복학살은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도 전쟁과 집단학살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이기기 위해서라도 역사를 직시하면서 자아를 발전시키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치 입문을 권유 받고 있지만 뛰어들 생각이 없다고 했다.



 “집단학살은 정치적 행동입니다. 제가 정치가가 되면 내게 고통을 준 이들에게 보복하고 싶어질지 모르잖아요. 정치라는 수면 위 행동보다 증거를 모으고 자료를 조사하는 지금 역할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학살을 치료하기보다 예방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죠.”



글=강혜란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킬링필드 전범 재판=급진 공산주의 크메르 루주 정권(1975~79) 치하에서 200만 명이 처형되거나 굶어 죽은 비극(일명 ‘킬링필드’)을 단죄하기 위한 재판. 유엔과 캄보디아의 합의로 2006년 7월 국제재판정이 세워져 지금까지 5명의 피의자를 체포·수감했다. 재판은 9월 재개된다. 폭정 주역인 폴 포트는 1998년 연금 상태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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