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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은 둘만의 캔버스, 사시사철 꽃과 나무로 채색하지요





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 ⑥ 무등산 자락 미술가 부부 박유복·황인옥의 지호락(知好樂)



지호락의 앞 마당을 거니는 박유복(왼쪽)·황인옥 부부. 집 앞뿐 아니라 뒤쪽에도 넓은 잔디 마당이 펼쳐져 있고 오동과 느티 나무, 백일홍과 보리수, 능수 벚나무가 훤칠하게 자라있다.





한때 당호(堂號)를 짓자고 주장하고 다녔다. 자신이 사는 세상 유일한 집을 302호, 506호 같은 번호로 무신경하게 불러서야 쓰겠는가. 철학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빛깔이나 나무 이름이라도 붙여놓고 자꾸 불러주면 집이 거기 화답하리란 주장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 바빠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광주 무등산 자락 아래 화가 남편 박유복(51)과 도예가 아내 황인옥(51)이 사는 집은 이름이 지호락(知好樂)이라고 했다. 아니 남편이 작업실 곁에 마련해둔 연주실 이름이 지호락이라기에 얼른 그걸 집 이름으로 확대하지 그러느냐고 제안했다. 시원시원한 아내 황인옥은 “그래불까? 좋지라~~” 하면서 당장에 수락했다. 지호락은 당연히 ‘지지자(知之者)는 불여호지자(不如好之者)요 호지자(好之者)는 불여락지자(不如樂之者)’에서 나왔다. 아는 것,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윗길이라는 공자 말씀이 집 이름이 되었으니 이 부부의 삶은 앞으로 더더욱 즐거움 지향으로 확대되지 않겠는가.



글=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사진=김성룡 기자



중학생 때 야외 스케치 왔다 반한 터









작업실에 있는 난로. 탈곡기 부품으로 만들었다(사진 왼쪽). 도예가인 안주인 황인옥씨는 생전의 아버지 모습을 조형물로 만들어 대문에 설치했다(오른쪽).



광주광역시 북구 청풍동 무등산 자락에 있는 지호락은 부부가 20년을 공들인 집이다. 넓은 터에 약 115㎡(35평) 규모의 2층짜리 살림집과 남편의 작업실(약 100㎡), 아내의 작업실(약 50㎡)이 있다. 군데군데 아름다운 부분이 아주 많다. 그러나 내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터잡기에 관련한 내용이었다. ‘이야기가 있는 집’이 가치를 두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이런 대목이다. “하고 많은 동네 중에 왜 하필 이곳으로 들어 왔느냐고 물었을 때 황인옥은 이렇게 답했다. “중학교 때 미술반이었지라. 그때 아이들과 주말 야외 스케치를 이 마을로 왔었네요잉~ 집집마다 돌담이 죽 둘러져 있고 돌담 밖으로 소가 고개를 내밀면서 눈을 순하게 껌뻑거려쌓고, 마을이 맘에 쏙 들어부렀어요. 나중에 어른 되면 이 동네 와서 살겠다고 그때 딱 마음을 먹어불었어라.~~” 스케치 온 소녀의 꿈은 현실이 되었다. 만 서른이 되었을 때 이 마을에 들어왔다. 남편인 화가 박유복과 함께였다. 둘은 동갑이고 일본의 미술학교에서 만나 연애하고 결혼했다. 대학에서 밴드활동을 했던 박유복은 연애 시절 ‘꿈의 대화’를 자주 불렀단다. ‘꿈의 대화’ 같은 집을 짓자고 약속했다. “아니 ‘꿈의 대화’에 무슨 집이 나온다고 그래요?” “아따, 이미지가 그렇다는 거제! 말을 그렇고룸 못알아듣소 잉?”









거실. 나무 탁자 뒤편으로 보이는 큰 그림은 바깥주인의 작품이고 도자기들은 안주인의 작품이다. 참새 그림은 박태후 화가 작품.












거실 밖 풍경. 앞집 지붕이 내려다 보인다.











뒷 마당이 보이는 화장실. 벽의 그림타일은 박 화가의 작품이다.



땅은 넓었다. 너무 넓어 둘이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이었다. 그 땅에 나무를 심었다. 지호락을 처음 내게 소개해 준 이는 나주에서 최고의 정원 죽설헌을 가꾸고 사는 화가 박태후였다. 박유복·황인옥 부부는 아닌 게 아니라 박태후 부부와 외양에서도 꼭 닮았다. 박태후 부부는 머리꼬리가 조금 길고 둘은 조금 짧은 것만 빼면! 나이도 머리 길이만큼 젊어 지호락 부부는 이제 갓 쉰을 넘겼다. 장강은 앞물결이 뒷물결을 끌고 흐른다. 아니 반대로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고 가던가. 아무튼 지호락도 죽설헌을 닮아가고 있다. 우선 울안에 가득 찬 나무다. 오동과 느티와 자귀와 목백일홍과 보리수와 능수 벚나무가 훤칠하게 자랐다. 1990년에 들어왔으니 나무 나이도 얼추 그쯤 된다. 특히 한창 꽃핀 백일홍은 그 한 그루만으로도 지호락을 화엄세상으로 만든다. 잔디밭도 넓다. 잔디는 말하자면 캔버스다. 그 위에 선 다른 나무들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푸른 바탕화면이다. “집 자랑 좀 해보세요!” 일하다 말고 달려왔다는 바쁜 박유복에게 나는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자랑할 게 정말 없어요. 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이어붙여 엉망진창이에요. 지붕에나 좀 공을 들였을까.” 그러나 이건 겸손이다. 돈을 많이 들이지 않았을진 몰라도 지호락은 세상 하나뿐인 공간들이 여기저기 오밀조밀 숨어 있다. 살림집 아래층을 먼저 짓고 나중에 화실을 짓고 다음에 거실과 방 하나뿐이던 살림집에 2층을 올렸다. 아이들 방과 부부침실이 새로 생겨 아래층에 남은 방은 황인옥이 만든 도자기를 전시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 공간 창가에 놓인 테이블 앞을 안주인은 지호락에서 가장 맘에 드는 곳으로 꼽는다. 거기 앉아 내다보니 과연 창밖의 잔디와 나무와 개울이 아름다운 각도로 늘어서 있다.



그리고 나중 집과 화실을 방과 계단으로 이어 붙여 한 동으로 텄다. 두 건물이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지면서 예상찮게 재미있는 공간들이 생겨났다. 그중에는 침대 한 개가 쏙 들어갈 정도의 자투리 공간도 있다. “여기 누울 때 잠이 제일 잘 오지라. 사람은 공간이 좁아야 숙면을 하는 거 같더라니께요” 거실은 넓어 둘의 전시실 겸 응접실 겸 작업실이다. 천장엔 집 지을 때 거푸집 떼어낸 자국이 아직 거칠게 남아 있다. 그게 되려 조형적이다. “요새는 저게 유행이데요. 20년 전에 돈도 없고 보기도 괜찮아서 내부마감을 않고 일부러 그냥 둬 봤더니….” 장식 없는 레일조명도 갤러리 분위기를 낸다.



삽·박카스병이 가구로 … 생활 속의 예술









아들(22) 방 2층 침대위 자투리 공간을 이용해 만든 미니책상.











이런 돌담길을 200m 정도 걸어 올라가면 지호락에 이른다.



둘은 예술을 생활 속에 끌어들이자는 문화운동을 하는 운동가들이다. 전시실에 걸어둔 그림이 아니라 일상 속에 들어오는 그림이 더욱 가치 있다는 주장이다. 둘은 그런 취지로 인스나인이라는 도자기 회사를 꾸리고 있다. 모토가 ‘부엌에서 화장실까지’다. 부엌도 화장실도 물을 사용하는 공간이라 세라믹을 쓰게 되는데 그 세라믹 위에 화가의 그림을 활용하면 변화 있고 아름답고 독특한 감동이 생긴다는 것이다. 커피잔, 접시, 대접 같은 그릇을 만드는 건 아내 황인옥이다. 그릇 위에, 타일 위에 얹는 그림은 광주 지역 화가들의 것만을 쓰기로 했다. 지역문화를 살리자는 취지다.



“캔버스 작업에 비해 성취감이 부족하지는 않냐?”고 물었더니 박유복은 펄쩍 뛴다. “왠걸요. 훨씬 보람 있어요. 내 화실엔 오래 들어가 보지 않았지만 이젠 세라믹이 내 캔버스인걸요” 한다.



그는 아이디어가 빛나는 사람이다. 지호락 군데군데 그게 보인다. 특히 탈곡기를 몸체로 한 난로와 삽이 엉덩이를 받쳐주는 철제 의자와 박카스 병을 뒤집어서 다리를 만든 자그만 유리탁자 같은 것은 우리 주변에 뒹구는 물건이 얼마나 다채롭게 변신할 수 있는지를 웅변한다. 과연 지호락이다. 삶의 정답은 주변 모든 것을 저렇게 싱그럽게 즐기는 데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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