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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사이로 곰이 보였다,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week&은 청소년 오지탐사대와 함께 존 뮤어 트레일을 6일 동안 걸었다. 환상적인 풍광을 함께한 기억도 잊기 힘들지만, 길을 잃어 산속을 헤매고, 눈길을 헤쳐 나오고, 모기와 싸움을 하고, 함께 모여 앉아 라면을 끓여 먹었던 기억이 더 생생하다. 오지탐사대에 나선 한국의 젊은이뿐 아니라 week& 역시 올여름은 아마도 평생 잊기 힘든 여름이 될 것이다.



글·사진=홍지연 기자, (사)대한산악연맹



# 탐사의 시작, 파노라마 트레일









휘트니산 정상에서 한국청소년 오지탐사대원들이 깃발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존 뮤어 트레일의 필수품 곰통. 곰의 습격을 막기 위해 식량과 화장품 등을 여기에 보관해야 했다.





탐사대원들이 첫발을 내디딘 곳은 글레이셔 포인트였다. 어퍼 파인스 캠핑장 부근에서 시작되는 본래의 존 뮤어 트레일은 2박3일 정도 짧은 시간을 내서 트레일을 경험하려는 관광객으로 이미 포화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탐사대는 파노라마 트레일에서 시작해 우회하는 길을 택했다.



 요세미티 계곡 깊숙한 곳까지 진입했다. 둥그런 바위가 반으로 갈라진 모양인 괴암 하프돔과 네바다 폭포, 버널 폭포가 한눈에 들어왔다. 화강암으로 이뤄진 어마어마한 크기의 산들이 병풍처럼 줄지어 있어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칼로 베어낸 것 같은 절벽 틈 사이를 비집고 자라난 나무들이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했다. 파노라마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그야말로 최고의 풍경이었다.



 흙먼지를 마시며 그늘도 없는 길을 오전 내내 걸었다. 불에 타 넘어진 고목이 길 위에 스러져 있었고, 사람 머리만 한 솔방울들이 길을 가득 메웠다. 숲에 진입해 햇볕을 피할 만하니 모기떼의 공격이 시작됐다. 머리에 모기장을 쓰고 긴 팔소매를 내려 최대한 살의 노출을 피해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야생모기는 옷을 뚫고 대롱을 꽂았다. 마치 주사를 맞는 듯 따끔한 느낌이 들어 쳐다보면 모기가 피를 빨고 있었다. 모기에 물린 부분은 500원 동전 크기만큼 부풀어 올랐다.



# 만년설과 벌인 사투









괴암 절벽 옆으로 나있는 휘트니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













한 탐사대원 허벅지에 붙은 모기떼들. 바지를 뚫고 피를 빨아먹을 정도로 지독했다.





트레일을 시작한지 이틀째 첫 고난이 찾아왔다. 로워 오토웨이 레이크를 지나자 길이 눈에 덮여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지도도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도 무용지물이었다. 대원들은 길이 될 만한 곳을 눈으로 확인한 뒤 지도와 비교하면서 토론을 하고 나아갈 방향을 결정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지나니까 경사 가파른 바윗길이 이어졌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붉은색을 띠는 돌들이 많아졌다. 바람에 침식된 미세한 돌가루가 날려 눈에 섞였고 녹아내리는 물은 딸기 빙수처럼 달콤한 분홍빛을 띠었다.



 몇 시간 사투를 벌인 끝에 레드 피크 패스(3402m)에 올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내려가는 길이 문제였다. 온통 눈으로 둘러싸인 정상에서 길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서너 발자국 앞에서 끊기는 급경사는 마치 스키장 최상급 코스에 올라온 듯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엉덩이 썰매를 타고 레드 피크 패스를 내려오는 방법을 택했다. 눈밭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이날 12시간 산행 중에서 절반 이상을 눈 위에서 헤맸다.



 바위 위에 텐트를 쳤다. 모닥불을 피워 눈에 젖은 옷과 신발을 말렸다. 빛이라고는 머리에 매단 헤드랜턴과 모닥불이 전부였다. 헤드랜턴을 끄고 누워 하늘을 쳐다봤다. 이름도 알 수 없는 무수히 많은 별이 하늘을 촘촘히 채우고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이 머릿속 잡념을 몰아내고 대신 자리를 차지했다.



# 밤새 침낭 지퍼와 씨름을 하다









레드 피크 패스를 지나고 바라본 풍경. 산 정상 부근을 비롯해 온통 눈으로 덮여 있다.









베어크릭 트레일 부근에서 야영을 하는 대원들.





3일차. 레드 피크 패스를 지나 보겔상 패스까지 가는 길은 물줄기와 함께했다. 바위산 꼭대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에서부터, 폭이 10m가 넘는 드넓은 계곡, 어디에선가 본 듯한 그림 같은 호수 등, 물줄기는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했고 지루할 틈이 없었다.



 메세드 레이크 근처에서 점심으로 먹은 라면은 감동이었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밥이 되는 건조식품은 부피가 작고 간편하지만 매끼 먹기엔 금방 질리는 맛이었다. 젊은 대원들은 라면 하나로 지상 최고의 식사를 경험했다. 메세드 레이크에서는 물을 마시러 온 노루도 보는 행운을 누렸다. 애니메이션 주인공 밤비처럼 예쁜 모습을 한 노루는 가만히 선 채로 마치 신기하다는 듯이 우리를 쳐다봤다.



 탐사 시작 4일만에 존 뮤어 메인 트레일과 만나는 지점에 도착했다. 협곡을 따라 난 길은 여태껏 지나온 길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돌과 바위 대신 길 주변으로 녹음이 펼쳐졌다. 왼편으로는 넓은 강물이 흘렀고 멀리서 들려오는 터빈 돌아가는 것 같은 우렁찬 폭포 소리에 절로 힘이 났다.



 이날 야영지는 도너휴 패스 바로 직전에 있는 이름 모를 호숫가였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쉽사리 모닥불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긴팔 셔츠, 거위털 다운재킷, 고어텍스 재킷을 차례대로 껴입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추웠다. 침낭 지퍼를 끝까지 채우자 머리 위로 주먹만 한 구멍만 남았다. 그랬더니 얼마 안 있어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고도가 높아 산소가 부족한 탓이었다. 답답함에 지퍼를 열었더니 금세 찬바람이 들어왔다. 그날 밤은 그렇게 지퍼를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며 지새웠다.



# 야생 곰을 만나다









애그뉴 메도에서 본 경고판. 곰의 습격에 대비해 식량을 안전하게 보관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도너휴 패스를 지나고 탐사대는 사우전드 아일랜드 레이크에 도달했다. 넓은 호수에 수없이 많은 바위섬이 떠 있었다. 잔잔한 호수 위에 무질서하게 흩뿌려진 수많은 섬 풍경은 그윽하고 운치가 있었다.



 탐사대는 1차 보급지점인 애그뉴 메도우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사우전드 아일랜드 레이크와 비슷한 모양의 호수가 나타났다. 가닛 레이크였다. 장민규(24) 등반대장은 지도를 확인해 길을 잘못 든 것을 알아챘다. 어쩔 수 없이 두 시간 걸어서 온 길을 되돌아가야 할 상황. 그러나 누구도 언짢은 내색이 없었다. 맨 앞에서 길 안내를 하느라 가장 고생이 많은 등반대장의 수고를 다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연된 데다 마땅히 야영장소도 찾지 못해 탐사대는 쓰러진 나무가 울타리처럼 둘러싼 협소한 장소에 텐트를 쳤다. 그러나 마음만은 어느 날보다 가벼웠다. 1차 보급지점인 애그뉴 메도우까지 6.9㎞만 가면 되기 때문이었다.



 이튿날 애그뉴 메도우로 가는 길. 마침내 야생 곰과 마주쳤다. 곰에게 습격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미 겁을 잔뜩 먹은 상태였던 대원들은 빠른 속도로 뛰어가는 곰을 본 순간 얼음이 됐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곰의 머리와 등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우리를 지나쳤다. 다행히 곰은 우리를 못 본 것 같았다. 곰이 사라지자 대원들은 제각각 곰을 본 소감을 들뜬 목소리로 떠들어 댔다.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곰은, 매우 날렵했고 먼발치였지만 충분히 위압적이었다.



 마침내 애그뉴 메도우에 도착했다. 여기서 탐사대원과 이별을 했다. 6일이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탐사대와 헤어지는 순간 서운한 마음이 왈칵 올라왔다. 그들은 다시 긴 배낭을 메고 씩씩한 걸음으로 산속으로 들어갔다.



 지난 10일 청소년 오지탐사대는 존 뮤어 트레일 종주를 무사히 마치고 입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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