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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목 조른 신창원, 죽음으로 탈옥 택했나









수감 중인 경북 북부 교도소에서 자살을 기도한 탈옥범 신창원이 18일 오전 경북 안동시 수상동의 안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은 안동병원의 폐쇄회로TV(CCTV)에 찍힌 신창원의 모습. [연합뉴스]






1997년 1월 부산교도소 쇠창살을 절단하고 탈옥해 2년6개월의 도피 끝에 붙잡힌 신창원(44)에겐 ‘희대의 탈옥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도피기간 중엔 자신을 검거하러 나선 경찰관의 권총을 빼앗아 달아나는 등 신출귀몰한 행적으로 유명했다. 그런 신창원이 18일 감옥 밖으로 나왔다. 14년 전엔 교도소 쇠창살을 부수고 나갔지만 이번엔 스스로 목을 졸라 자살하려다 병원으로 옮겨졌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신씨는 이날 오전 4시10분쯤 경북 북부 제1교도소(옛 청송 제1교도소) 독방 안에서 신음하고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목을 매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는 주방용 고무장갑으로 스스로 목을 조르는 방법을 택했다. 신씨가 있는 독방에는 끈을 걸 만한 문고리나 창살이 없다. 신씨는 인근 안동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의식을 찾지는 못하고 있지만 혈압과 맥박 등은 정상이라고 병원 측은 밝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병실과 병원 주위에는 교도관 5명이 배치됐다.

 그가 쓰던 독방에선 ‘죄송합니다’고 쓴 자필 메모지가 발견됐다. 교도소 측은 신씨가 지난달 아버지(86)의 사망에 충격을 받고 이를 비관해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교도관들에 따르면 신씨는 수감 초기엔 자신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은 아버지를 원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식을 끝까지 찾은 것은 아버지였다. 익명을 원한 교도관은 “다른 면회객은 별로 없었고 아버지만 교도소를 자주 찾았다”며 “아버지의 죽음에 자식으로서 회한이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씨는 무기수 신분이라 아버지의 빈소도 찾지 못했다.

 신씨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순탄치 않았다. 1967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때 어머니를 잃고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이후 절도죄로 소년원 생활을 했다. 20대 들어선 흉악범이 되고 말았다. 89년 3월 공범 3명과 함께 서울 돈암동의 주택에 침입해 정모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같은 해 9월 검거돼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복역 중 “재소자의 90%가 부모의 정을 받지 못했거나 가정폭력·무관심 속에 살았다”며 “교도소를 아무리 많이 짓고 경찰을 늘려도 범죄는 줄어들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씨가 세간의 관심을 받은 것은 97년 1월 부산교도소를 탈옥하면서다. 이후 2년6개월간 경찰의 포위망을 피해 다니며 절도와 강도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 서울·부산·대구 등지에서 신씨의 범행이 이어지면서 전국이 공포에 떨기도 했다. 그는 99년 7월 전남 순천의 한 아파트에서 주민의 신고로 검거돼 기존 무기징역에다 추가로 22년6월형을 선고받았다. 이로써 가석방 등으로 사회에 나올 수 있는 길이 사실상 막혀 버렸다.

 신씨는 그 후 경북 북부 제2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해 왔다. 이곳에서 종교인들을 만나며 달리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월간 쪽지 ‘해와 달’ 발행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지은 죄의 100분의 1도 갚을 수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속죄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해 이해인 수녀로부터 시집을 선물받은 것을 계기로 서로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2004년에는 중졸과 고졸 검정고시에 잇따라 합격했다. 최근에는 독학에 의해 학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독학사 시험 공부에 매달려 온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관들은 신씨가 모범적인 수감 생활을 했다고 전했다. 교도관을 만날 때면 언제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신씨는 지난해 6월 흉악범을 주로 가두는 제2교도소에서 일반 수형자가 있는 제1교도소로 이감됐다. 그는 교화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대신 4.09㎡(약 1.2평)인 독방에서 시험 공부를 해 왔다. 교도소 관계자는 “신씨가 공부할 수 있도록 독방을 배정했다”며 “착실하게 생활해 그의 방에는 폐쇄회로TV(CCTV)도 설치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교도소 측은 신씨가 의식을 회복하는 대로 자살 동기 등 정확한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청송=홍권삼 기자

◆경북 북부 교도소=경북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에 있는 교도소로 1981년 보호감호소로 문을 열었다. 재범 방지를 위해 형기를 마친 사람을 수용해 직업훈련을 시켰다. 2005년 보호감호제도가 폐지되면서 청송교도소로 이름과 기능이 바뀌었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주로 중범죄자를 수용해왔다. 교도소 이름이 지역 이미지를 해친다는 주민들의 지적에 따라 지난해 8월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됐다. 제1, 2, 3 교도소와 직업훈련교도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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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