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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 CD로 복원했다, 현 하나로도 연주하는 바이올린 천재 유진 포더




유진 포더의 LP음반을 복원한 CD세트.

‘빨리 올라와 더 빨리 추락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포더(1950~2011)의 일대기가 주는 인상이다. 그는 미국의 영웅이었다. 1974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1위 없는 공동 2위를 수상했다. 냉전 시대에 ‘적국’ 러시아에서 거둔 쾌거였다.

 콜로라도주 덴버 출신의 포더는 미국 내 각종 TV 쇼에 출연했다. 또 공연 앙코르 순서가 되면 악기의 현 세 개를 모두 풀어버리고 나머지 하나의 현으로만 화려하게 파가니니를 연주하는 재주꾼이었다. 특유의 남성적 이미지로 ‘바이올린을 든 믹 제거’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전성기는 불과 10여 년이었다. 갑자기 얻은 명예와 인기가 그를 불안하게 했다. 그는 89년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됐다. 이혼과 결혼을 반복했고, 알코올 중독이 이어졌다. 공연 기획자들은 그를 불러주지 않았고, 대형 음반사도 외면했다. 포더는 올 2월 61세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알코올성 간경변이었다. 타고난 끼로 바이올린을 가지고 놀았던 쾌활한 천재가 이렇게 잊혔다.

 전성기 시절의 포더가 음반사 RCA와 녹음한 음반 다섯 장이 한 세트로 나왔다. 차이콥스키 협주곡, 비탈리 샤콘느 등 바이올린 음악의 ‘교과서’ 들이 들어있다. 촉망 받던 연주자의 자신만만한 젊음이 느껴진다.

 음악 칼럼니스트 정만섭씨는 “70년대에 최고 수준에 올라섰던 유진 포더의 음반은 ‘샌드위치’라 할 수 있다. 동시대 청중은 60년대 이전의 음반을 최고로 쳤고, 80년대로 접어들자 CD의 시대가 열렸다. 따라서 뛰어난 LP로 남아있는 포더의 음반은 자연스레 외면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씨가 음반 기획자 이일호씨와 함께 포더의 LP를 최대한 모아 CD 다섯 장으로 복원한 이유다. 이들은 “소수 마니아들만 알고 있는 LP 음반을 CD로 복각하는 시리즈를 계속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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