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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f&] 28세에 ‘전설’ 만든 보비 존스 … 애틀랜타 곳곳에 서린 그의 숨결




올해 PGA챔피언십이 열린 미국 애틀랜타 애슬레틱 골프클럽에 들어서면 ‘골프의 성인’ 보비 존스의 동상이 골퍼들을 맞이한다. 한 해에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보비 존스는 골프 실력은 물론이고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던 지성파 골퍼로 유명하다. [애틀랜타=문승진 기자]


미국 조지아주의 애틀랜타 하면 코카콜라·CNN 본사와 함께 1996년 올림픽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골퍼라면 ‘골프의 성인(聖人)’ 보비 존스(1902~71)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존스는 아마추어 골퍼로 유일하게 한 해에 그랜드 슬램(디 오픈, 브리티시 아마추어 챔피언십, US오픈, US아마추어 챔피언십)을 달성한 골퍼입니다. 이번 주 golf&은 20세기 최고의 골퍼로 추앙 받고 있는 존스의 숨결을 따라 애틀랜타로 떠나봤습니다.

애틀랜타 공항에서 자동차로 50분 정도 가면 한인타운이 밀집한 덜루스(Duluth)시다. 덜루스에서 보비 존스 도로를 따라 가면 올해 PGA챔피언십이 열렸던 애슬레틱 골프클럽이 눈에 띈다. 골프장 정문을 통과하면 가장 먼저 실물 크기의 존스 동상이 골퍼들을 맞이한다. 존스의 본명은 로버트 타이어 존스 주니어(Robert Tyre Jones Jr)다. 그는 1928년부터 이곳에서 회원으로 활동했다. 46년과 47년에는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의 동상 앞에는 ‘클럽의 전 회장이자 전설의 골퍼(Past club president& Legendary Golfer)’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보비 존스 무덤 앞에는 추모객들이 놓고 간 골프 신발·장갑·볼·티 등이 있다.

클럽하우스 안엔 그의 향수가 물씬 풍긴다. 클럽하우스 한쪽은 그를 위한 전시장이 마련돼 있다. 그의 초상화는 물론 그가 사용했던 클럽, 1930년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던 트로피, 각종 사진이 진열돼 있다. 특히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뒤 구름 관중이 모인 뉴욕에서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는 사진은 그가 이룬 업적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전시장 가운데 조지아텍, 에머리대 졸업장이 눈에 띄었다. 그는 조지아공대에서 기계공학, 하버드대에서 영문학, 에머리대에서 법률을 전공해 변호사 자격까지 취득했다. 하버드에 간 이유는 어머니를 위해서였고, 법대에 간 이유도 변호사인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서다. 또한 프랑스어, 독일어, 영국사, 독일문학, 고대문화사, 비교문학 등에도 조예가 깊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한마디로 ‘엄친아’였다.




1930년 존스의 그랜드슬램 트로피들. 왼쪽부터 브리티시아마추어·디오픈·US오픈·US아마추어 트로피.

그의 골프 전성기는 학업에 열중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운동과 학문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가 4대 메이저대회에 출전했던 기간은 고작 13년밖에 안 된다. 그것도 9년은 고교와 대학시절로 평생 출전 대회 52회 중 23회 우승했다. 탁월한 골프 기량에 풍부한 학식, 뛰어난 유머감각과 겸손함을 겸비한 그에게 온갖 최상급의 찬사가 따라다닌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느꼈다. 이 골프장의 헤드 프로인 릭 앤더슨은 “존스가 존경받는 이유는 마지막까지 아마추어 골퍼로 활동하면서도 학문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성만큼이나 정직한 골퍼로도 유명하다. 1925년 US오픈 마지막 라운드에서 그는 1타차 선두를 달리며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러프에서 어드레스하는 과정에서 볼이 움직이자 경기위원회에 자진 신고했다. 결국 연장전 끝에 그는 우승을 놓쳤다. 당시 언론은 그의 솔직함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정작 그는 “내가 은행 강도를 하지 않았다고 나를 칭찬하려는가”라고 말해 더욱 유명해졌다. 필드에서 동반자들의 눈을 피해 양심을 속이고 있는 골퍼들은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일이었다.

그는 6세 때 애틀랜타 다운타운에 위치한 이스트 레이크 골프장에서 처음 골프를 시작했다. PGA 투어챔피언십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이스트 레이크 골프장의 클럽하우스 곳곳에도 그의 애장품이 놓여 있다. 1층에는 별도로 보비 존스 룸이 있을 정도다. 1930년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던 트로피가 있고 그가 애용한 전설적인 퍼터 ‘칼라미티 제인’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현관 한복판에는 화려한 트로피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로 1924년 US아마추어 대회에서 당대 유명했던 조지 본 엘름을 상대로 8홀을 남기고 9홀 차 승리를 거두며 받은 헤브메이어 트로피이다. 미국골프협회(USGA) 초대 회장의 이름을 딴 이 트로피는 그가 우승한 뒤 클럽하우스에 전시했었는데 1925년 클럽하우스의 화재로 모두 녹아 버렸다. 결국 USGA는 향후 우승자의 이름을 새겨넣을 수 있도록 더 크게 제작했다. 지금의 트로피는 1990년대 영국의 유명 보석회사인 가라드사가 원래의 모습과 똑같이 2개를 제작해 한 개를 기증한 것이다. 나머지 한 개는 USGA의 골프하우스에 전시돼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육군 소령으로 참전할 때 입었던 군복과 훈장도 만나볼 수 있다. 클럽하우스를 천천히 돌고 나면 그의 성장 과정부터 은퇴하기까지의 발자취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처음에는 그도 열혈 골퍼였다. 그는 1916년 미국 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첫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이때 결승에서 감정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며 무릎을 꿇었다. 7년간 그는 감정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배웠다. 터닝포인트가 된 것은 1921년 US아마추어 대회 중 클럽을 내던지고 부상으로 중도하차하면서 태도는 물론 게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그는 1923년 US오픈에서 우승하며 긴 슬럼프에서 탈출했다. 그는 “모든 행운은 자신만을 외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으나 그 후 이것을 반성하면서 인간은 패한 경기에서 진정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이긴 경기에서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보비 존스

1923년부터 30년까지는 그의 최고 전성기다. 그는 이 기간에 메이저 대회에서만 13승을 기록했다. 특히 1930년에는 한 해에 메이저 4개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그 해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달성한 그는 28세에 홀연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이유에 대해 그는 “아내(메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짧게 말했다. 미국 골프계는 그가 은퇴를 선언하자 ‘존스 없는 골프는 파리가 없는 프랑스와 같다’는 말로 슬픔을 대신했다. 은퇴 후 그는 변호사가 돼 아버지 법률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의 숨결을 따라가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시 꿈의 무대와 대회로 손꼽히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과 마스터스 대회다. 그는 은퇴 후 금융계 친구 클리퍼드 로버츠와 함께 1934년 조지아주 오거스타에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을 만들었다. 또한 이곳에서 마스터스 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는 지금까지 최고의 대회로 사랑받고 있으며 대회장은 유리알 그린과 아멘 코너로 전 세계 골프팬들이 가장 라운드하고 싶은 코스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이후 퇴행성 척수 장애로 더 이상 골프를 즐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서전은 물론 골프장 설계, 골프 레슨 제작 등 골프와 관련된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의 숨결을 따라 걷다가 마지막으로 발길이 멈춘 곳은 다운타운 내 위치한 오클랜드 공원묘지였다. 애틀랜타의 유명인들은 모두 이곳에 잠들어 있었다. 최고의 골퍼였던 만큼 화려한 대리석으로 치장된 묘를 찾았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담장 옆 비석 앞에 골프공과 장갑, 신발 등이 놓여 있었다. 바로 보비 존스의 묘지였다. 오클랜드 공원묘지의 방문센터 매니저인 샐리 스미스는 “존스는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다. 평소 검소한 생활을 했던 그는 죽어서도 한적한 곳에 묻어 달라고 했다”며 “하루에 보통 3~4명이 그의 묘를 찾는데 마스터스 대회가 열리는 주간에는 많은 사람이 찾는다. 그들은 볼·장갑·티 등을 놓고 간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명언을 남겼다. “골프란 그 누구도 정복할 수 없다. 골프란 끝이 없는 게임이다. 그 누구도 골프를 자신이 생각한 대로 플레이한 사람은 없었다. 또 절대로 더 잘 칠 수 없었다고 만족할 만한 라운드를 해본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골프가 모든 게임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다.” 

애틀랜타=문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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