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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워런 버핏과 정몽준




박경철
시골의사


지난 17일 미국의 부자 워런 버핏이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수퍼 부자에 대한 총애를 중단하라’는 칼럼이 정작 미국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버핏은 기고문을 통해 “지난해 나는 소득의 17.4%를 연방세금으로 냈으나, 내 사무실의 직원 20명에 대한 세율은 33~41%로 모두 나보다 높았다”면서 “돈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노동으로 돈을 버는 사람보다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는데, 이 뉴스가 하필 전날 있었던 정몽준 의원의 공익재단 설립을 위한 사재출연과 맞물리며 묘한 상황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S&P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이후 재정적자 문제가 부각되며 민주·공화 양당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서, 워런 버핏이 오바마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으로 비춰지면서, 재선을 앞둔 정가에 가벼운 논란이 벌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 찻잔 속의 태풍으로 지나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즉각 각 포털 검색어 상위에 버핏의 이름이 실시간으로 등장했고, 언론사들도 앞다투어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세금문제에 대한 보혁 양쪽의 시각차를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정몽준 의원이 중심이 된 범(汎)현대가의 사재출연과,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던진 ‘공생 경제’라는 화두가 묘한 파장을 낳고 있는 와중에, 버핏의 기고문이 불을 지른 것이다. 이는 표면상 정몽준 의원의 기부가 미묘한 정치적 해석의 소지가 없지 않은 데다, 정 의원 개인의 기부가 법인의 기부와 동시에 이루어진 데 대한 불편함과 그 직후에 공교롭게도 대통령의 공생 화두가 나온 것 등이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본질은 다른 데 있었다. 그것은 대통령의 공생 화두나, 정 의원의 기부 선언이 소수 개인이나 기업의 선의를 통해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을 유발할 가능성에 대한 견제심리가 작동한 것이었고, 국가사회의 모순은 제도가 아닌 선의에 의해 구제될 수 없다는 부정적 기류가 이들과 충돌하며 형성된 무거운 기압골이었다.

 실제 미국에서도 이 문제는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다. 빌 게이츠 등이 주창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에 대한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빌 게이츠는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국가가 처리할 수 없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평생 동안 자신의 부를 모두 사용할 수 없는 수퍼 부자들이 자발적 기부를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국가나 비정부기구(NGO)가 할 수 없는 사각지대를 없애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실제 빌 게이츠는 자신이 세운 ‘빌 앤 멀린다’ 재단에 전 재산의 대부분을 기부하고, 다른 부자들과 앤젤리나 졸리 등 인기인들을 동참시키며 에이즈 추방, 아프리카 교육, 영·유아 백신사업 등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빌 게이츠의 운동에 대해 불편한 시각을 드러낸 쪽은 의외로 진보진영이었다. 이들의 주장은 개인의 선의에 기반한 운동은 시스템의 개편이라는 목표를 희석시키는 논점 흐리기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아예 버핏과 빌 게이츠의 기부는 주식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재산에 대한 지배권을 완전 상속하려는 고도의 술책이라고까지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런데 버핏이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버렸다. 버핏이 부자들에 대한 세율조정과 증세를 통해 구조적인 문제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섬으로써, 이번에는 보수 쪽이 난감한 상황에 몰리게 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우리나라가 높은 간접세 비중과 최상위 소득구간의 비효율성으로 인해 대기업의 부장과 회장님이 같은 세율을 적용받는 부자들의 안전지대 중 하나라는 것과,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서 정 의원의 기부와 버핏의 기고문이 동시에 이슈가 되면서, 두 가지 문제 모두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여기서 얻을 논점은 명료하다. 김밥 할머니건, 재벌가의 일원이건, 혹은 개인이건 기업이건 기부는 칭송받을 일이지만, 그것과 시스템의 문제는 별개라는 점이다. 즉 세금은 의무이고 기부는 도덕이며, 도덕은 권장되지만 의무는 강제되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는 머리를 맞대야 하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짚어야 하는 것이다.

박경철 시골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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