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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 전 ‘변영태 편지’ … 김성환, 다시 꺼낸 까닭은





역사의 반복 … 1954년 ‘독도는 일본 침략 최초 희생물’ 인용



변영태 전 외무장관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12일 정례 브리핑에서 57년 전 변영태 당시 외무장관의 공한(公翰·공식 편지)을 직접 인용하며 독도 관련 발언을 했다. ‘변영태 공한’은 1954년 일본이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하자고 주장한 데 대한 우리 정부의 공식 답변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독도는 일본의 한국 침략에 의한 최초의 희생물이다. 해방과 함께 독도는 다시 우리의 품에 안겼다. 독도는 한국 독립의 상징이다. 일본이 독도의 탈취를 꾀한 것은 한국에 대한 재침략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 정부의 제의는 사법절차를 가정한 또 다른 허위의 시도에 불과하다. 한국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이 있으며, 한국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그의 권리를 증명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일본은 52년 1월 독도를 우리 영토에 포함시킨 이승만 대통령의 평화선(이승만 라인) 선포에 이의를 제기한 이후 계속 독도 영유권 주장을 펴왔고, 우리 정부는 독도에 경비부대를 상주시키고 독도에 한국 영토라는 표지를 세웠다. 이에 대해 일본은 자국 영토를 불법 점거했다고 공개 항의했으며 54년 처음으로 독도의 영유권 문제를 ICJ에 제소하자고 우리 정부에 제의했다.









김성환 장관



 브리핑에서 직접 변영태 공한을 읽은 김 장관은 “거의 60년 가까이 흘렀지만 변영태 외무장관이 밝힌 입장에서 우리 정부의 입장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독도 문제는 일제의 식민지 침탈의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영유권 분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는 “(독도와 관련해)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일 관방장관 발언의 맞대응 성격이 강하다.



 정부의 독도 대응 기조가 강해지는 분위기다. 올 3월 일본이 역사를 왜곡한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한 직후부터 정부는 그간 ‘차분하고 단호한’ 외교 대응 방침을 ‘엄정하고 단호한’ 입장으로 정리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일본 외무성의 대한항공 이용 자제령, 자민당 의원의 울릉도 입도 시도 등 일본의 노골적인 도발이 이어지면서 정부 내에도 정치권의 강경 기류가 반영돼 가는 모양새다. 정부는 일본의 독도 도발이 이어질 경우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교섭 등 다른 분야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전달하고 있다.



권호 기자



◆변영태(卞榮泰·1892~1969)=중앙고등보통학교 교사, 고려대 교수를 지내다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1951년 제3대 외무장관으로 임명돼 55년까지 지냈다. 교수 시절 대통령 특사로 정부 승인 교섭을 위해 필리핀을 다녀오는 등 외교 무대에서 활약했다. 54년엔 국무총리와 외무장관을 겸임했다. 퇴임 후엔 서울대 상과대 교수, 고려대 교수 등으로 후진 양성에 힘 썼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고 … ’로 시작되는 시 ‘논개’로 유명한 수주(樹州) 변영로가 동생이다.





변영태 공한(公翰) 주요 내용



독도는 일본의 한국 침략에 최초의 희생물이다. 해방과 함께 독도는 다시 우리의 품에 안겼다. 독도는 한국 독립의 상징이다. 일본이 독도의 탈취를 꾀한 것은 한국에 대한 재침략을 의미하는 것이다. … 한국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이 있으며, 한국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그의 권리를 증명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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