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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명필 김생 탄생 1300년 … 신필 되살리는 박대성씨





글씨 옮겨 쓰고 재해석
경주세계문화엑스포서
대작 10여 점 특별전시







먹으로 한국화의 맥을 이어 온 박대성(66·사진) 화백은 요즘 ‘해동서성(海東書聖)’으로 불리는 김생(金生·711∼791 ?)에 푹 빠져있다. 올해는 김생이 탄생한 지 1300주년이 되는 해다.



 박 화백은 12일 개막한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 김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대작 10여 점을 특별전시하고 있다. 김생은 중국의 왕희지(王羲之)와 비견되는 서예의 성인으로 추앙 받아왔다.



『삼국사기』에는 김생이 ‘80이 넘었는데도 글씨 쓰기를 쉬지 않아 각 체가 모두 신묘한 경지에 들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는 문화의 황금기인 통일신라시대 글씨 미학을 정립했다. 추사 김정희는 김생의 글씨가 남은 비석을 찾아 탁본을 떴다. 하지만 김생은 지금 전설 속 인물 정도로 여겨진다. 남긴 글씨가 있지만 그동안 전시회 한 번 열리지 않았다.



 박 화백의 김생에 대한 관심은 여기서 출발했다. 한국 서예는 물론 한국 정신문화의 정체성을 되찾는 데 꼭 필요한 ‘어른’으로 규정한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김생의 글씨를 그대로 옮겨 쓰고 금강역사, 다보탑과 석가탑 등 신라의 형상을 한 화선지에 조화시켰다. 전시를 기획한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이동국(48) 큐레이터는 “글씨와 그림이 같은 데서 나왔다는 동양의 서화정신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라고 말한다.



박 화백은 서울에서 경주로 내려온 지 10년이 넘도록 신라만을 그려왔다. 또 신라를 재해석하는 박 화백의 붓끝은 그림 이전에 글씨로 단련돼왔다는 것이다.



 박 화백은 김생이 서법을 완성한 봉화 청량산 김생 굴을 1년에 한번은 꼭 찾는다. 계곡에는 검은 먹물이 늘 흘러내렸다는 곳이다. 청량산은 김생 이외에 원효와 이황도 낳았다. 그만큼 기운이 넉넉한 곳이라며 하루 빨리 정신문화의 성지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때가 되면 청량산에서 수묵화법을 완성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전시장에는 김생의 해서·행서 2500자를 집자한 태자사비의 탁본도 걸려 있다. 12월에는 전시가 서울 예술의전당으로 옮겨진다.



경주=송의호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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