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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덮친 ‘반달리즘’ … 캐머런 “병든 사회 좌시 않겠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11일 소집된 긴급 의원총회에서 영국을 뒤흔든 청년들의 폭동에 대해 강력 대처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망가진 영국을 바로잡기 위해 거리의 갱들을 소탕하겠다고 약속했다. 왼쪽부터 닉 클레그 부총리, 캐머런 총리,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 [런던 AP=연합뉴스]


“식료품 등의 생필품을 훔쳤거나, 부호나 귀족을 단골로 둔 보석 가게를 털었다면 차라리 이해하겠다. 그런데 그들은 평소 사고 싶었던 물건을 파는 이웃 가게들을 주로 노렸다.” 영국 청년들의 난동 현장 중 하나였던 런던 동부 해크니 지역의 60대 은퇴 교사 린다 브라이언트는 11일(현지시간) 얼굴을 찌푸리며 이렇게 개탄했다.

 영국의 연쇄 폭동 사태는 그의 말처럼 ‘생계형’도 ‘저항형’도 아닌 단순 약탈에 불과했다. 경찰 총격으로 사망한 청년의 죽음에 대한 항의로 지난 6일 런던 북부 토트넘에서 시작된 시위는 곧바로 정치적 집단 의사 표시와는 무관한 노략질로 돌변했다. 학생·청년이 도심을 ‘해방구’로 만들어도 약탈 행위는 나타나지 않는 한국이나 일본의 집회 문화에 비춰보면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영국 신문에는 ‘쇼핑 폭동’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청년들이 수십 명씩 떼지어 전자제품 대리점이나 옷 가게를 턴 뒤 불을 지르는 신종 현상을 두 단어로 묘사했다. 언론들은 폭동 초기에는 가담자들을 ‘시위자’로 불렀다. 그 뒤 ‘폭도’로 호칭을 바꿨다가 현재는 주로 ‘약탈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시위나 집회와는 다른 차원의 반사회적 파괴 행위(반달리즘·vandalism)로 보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런던 도심에서 대학 등록금 반대 시위가 벌어졌을 때에도 상점 습격은 있었으나 물건을 노리지는 않았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11일 소집된 긴급 의원총회에서 “거리에 공포의 문화가 존재하는 걸 좌시하지 않겠다(We will not allow a culture of fear to exist on our streets)”며 “‘망가진 사회(broken society)’를 바로잡기 위해 거리의 갱들을 소탕하겠다”고 약속했다. 캐머런 총리는 전날엔 “우리 사회에는 단순히 망가진 부분만 있는 게 아니라 병든 구석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12, 13세의 청소년들이 약탈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매우 잘못돼 가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어떻게 부상당한 사람을 도와주는 척하다가 강탈할 수 있느냐”며 한탄했다. 총리가 말한 사건은 폭동 현장을 지나다 폭행당해 주저앉은 행인에게 흑인 청년 대여섯 명이 다가가 보살펴주는 척하다 가방을 뒤져 소지품을 빼앗은 일이었다. 이는 동영상으로 포착돼 인터넷에 올려졌다.

 체포된 약탈자들의 구금 연장을 결정하는 법원의 심리에서도 병리적 현상을 입증하는 사연들이 쏟아져 나왔다. 피의자들은 대부분 10대 후반과 20대의 실업 청년들이었으나 멀쩡한 직업을 가진 30대도 더러 있었다.

 11세 소년은 백화점에서 50파운드(약 8만7000원)짜리 쓰레기통을 들고 나오다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불구속 결정으로 석방된 소년의 양손에는 휴대전화가 한 개씩 들려 있었다. 전자제품 대리점에서 5000파운드어치의 물건을 훔쳐 재판에 넘겨진 19세 여대생의 아버지는 대기업 고위 간부로 밝혀졌다. 31세의 초등학교 보조교사도 상점에서 음향기기를 훔친 혐의로 신문을 받았다. 32세의 우체부는 18세의 조카와 함께 노트북 등을 훔쳐 법정에 섰다.

 영국 언론들은 거침없는 집단 약탈이라는 새 현상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일간지 가디언은 대량 소비 사회 속 청년들의 소비 욕구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막장’ 심리의 결합으로 설명했다. 소비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젊은이들이 엇나간 소비 본능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실업 청년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빌미로 약탈을 정당화하는 비현실적 심리 상태에 빠졌다는 해석도 나왔다. 비행 청소년들의 엉뚱한 경쟁 심리가 사태 악화를 초래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한 지역 청년들이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이 ‘성공적’ 약탈을 자랑하면 다른 지역의 또래 집단들이 더 과감한 행동에 나서는 형태의 악순환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인터넷 세대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 현장 중계를 하며 게임하듯 약탈을 즐겼다.




이상언 특파원

 동양에 비해 훨씬 심각한 서구의 가족 해체 현상과 교육 부실화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부모 권위의 상실, 인권 논란을 우려한 학교에서의 불량 학생 방치, 도덕 교육의 부재 등이 도마에 올랐다. 부모들의 무책임도 질타의 대상이 됐다. 해크니 거리에서 만난 한 시민은 “자녀가 길거리에서 강도짓을 할 때 부모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성공회 수장인 로완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인격과 도덕을 함양하는 방향으로 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 고 말했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반달리즘(vandalism)=다른 문화·종교·예술 등에 대한 무지로 그것들을 파괴하는 행위. 이 용어는 5세기 초 유럽의 민족대이동 때 반달족이 지중해 제해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로마를 무자비하게 약탈하고 파괴한 일에서 유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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