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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80) 개와 고양이의 시간




배우라는 직업은 촬영 현장에서 동물과 잘 어울려야 하는 숙명을 지녔다. 경북 영천 성일가에서 풍산개를 기르며 애완동물 예찬론을 펴는 신성일은 승마도 수준급으로 말과 친하다. [중앙포토]


최근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에서 35㎏짜리 골든 리트리버를 기르는 문제를 두고 송사가 벌어졌다. 내 입장은 이렇다. 홀로 사는 사람들에게 애완동물은 필요한 존재다. 크기가 작은 개는 어디서나 좋다. 대신 공동생활을 하는 곳에서 큰 개는 삼갔으면 한다. 개·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오래 길러본 후 내린 결론이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개는 황금색 털이 부슬부슬한 포메리언이었다. 영양 상태가 좋아 어찌나 멋진지 몰랐다. 1973년 무렵 동부이촌동 현대아파트 32동 1401호에선 포메리언을, 1402호에선 ‘이태원 181번지의 영웅’ 치와와를 길렀다. 어느 날 누가 찾아왔다. 문을 열어보니 분말소독약을 뿌리는 사람이었다. 포메리언은 그 사람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나는 불안한 생각에 얼른 포메리언을 끌어안은 채 그 사람을 돌려보냈다.

 한 두 시간쯤 지났을까. 포메리언은 비틀거리며 베란다 쪽으로 가더니 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힘 없이 쓰러졌다. 나는 즉시 태평로 단골 동물병원으로 달려갔지만, 개는 결국 눈을 감았다. 소독약 뿌리는 사람의 바지춤에 묻어있던 약물에 중독된 것이었을까. 내 자식을 잃은 것처럼 가슴 아팠다.

 이태원 181번지에서 도둑을 잡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치와와는 수명을 다하고 죽었다. 사람 나이로 12살, 개의 나이로는 24살을 살았다. 또 다시 치와와를 길렀는데, 이가 많아 아이들 공부에 지장이 될 정도였다. 나는 아이들 없는 틈에 치와와를 동물병원에 갖다 주었다. 아이들은 “아버지는 너무 잔인해요”라며 원망했다. 인정 머리 없는 아비가 됐다.

 70년대 초반 원효로 전차 종점 부근에 큰 부잣집이 있었다. 지금의 용산전자상가 끝자락이다. 그 집에서 촬영이 있었다. 다소 늦은 나는 차에서 내려 급하게 들어갔다. 대문에서 현관까지 20m나 됐다. 현관에 다다랐을 때 ‘왕’ 소리와 함께 커다란 셰퍼드가 나를 향해 뛰어들었다. 본능적으로 왼팔로 방어했다. 셰퍼드는 한 발로 내 왼쪽 어깨를, 다른 한 발로 내 왼팔을 짚고 섰다. 내 왼팔은 이미 셰퍼드의 입 속에 들어있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셰퍼드를 노려보았다. 사람의 눈에도 살기가 있어 눈싸움으로 동물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사냥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셰퍼드는 꼬리를 내리며 입을 벌린 채 내 몸에서 물러났다.

 그 장면을 저택 안쪽에서 집주인이 마침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응접실에 들어서자, 그가 내 어깨를 탁 치며 말했다.

 “미스터 신, 대단해. 대단한 사나이야.”

 아내 엄앵란은 64년 11월 결혼하면서 자신이 3년 동안 기르던 페르시안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다. 척 봐도 작은 표범 같았다. 그런데 이 고양이는 아내만 따르고 나에게는 경계심을 가졌다. 기분이 나빴다. 어느 날 결혼 1주년 기념으로 선물 받은 브로닝 5연발총을 조립하다 장롱 위에서 나를 노려보는 고양이를 겨냥하며 “확 쏴버려”라고 중얼거렸다. 바로 다음날 그 고양이가 집에서 사라졌다. 고양이는 정말 영물이다.

 요즘에는 경북 영천 성일가에서 풍산개 암수와 새끼 한 마리를 기른다. 지난 7일 암컷이 새끼 7마리를 낳았다. 벌써 네 배째다. 한여름의 경사다. 성일가에서 자유를 누리면서 밤에는 내 집을 지켜주는 풍산개는 나의 사랑스러운 영물이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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