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제천금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숫자가 많은 김씨는 금(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기(史記)』 ‘흉노(匈奴)열전’과 『한서(漢書)』 ‘표기(驃騎)열전’은 한 무제(武帝) 때 흉노의 휴도왕(休屠王)을 정벌한 이야기가 전한다. 휴도왕을 죽이고 그가 사용하던 ‘제천금인(祭天金人)’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제천금인이 무엇일까? 사기 주석서인 『사기 색은(索隱)』은 “금으로 사람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作金人以爲祭天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만큼 흉노족은 금을 숭상했다는 뜻이다. 『한서』 ‘김일제(金日磾)열전’은 휴도왕의 태자(太子: 김일제)가 한나라에 끌려와 황문(黃門)에서 말을 키웠는데, 망하라(莽何羅)라는 인물의 반란을 막은 공으로 투후(秺侯)에 봉해졌다고 전한다. 그가 현재 서안(西安) 무제의 능(陵) 곁에 묻힌 김일제인데, 김씨라는 성은 ‘제천금인’했던 선조들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그런데 삼국통일을 완성했던 신라 30대 문무왕(文武王: ?~681)의 『문무왕비문』은 자신들의 뿌리를 ‘투후 제천지윤(秺侯, 祭天之胤)’, 즉 ‘하늘에 제사 지내던 투후의 후예’라고 적고 있다. 중국사에서 투후는 오직 김일제와 그 후손들에게만 계승되었다는 점에서 신라 김씨는 흉노 왕자 김일제의 후손인 것이다. 아름다운 신라 금관을 비롯해 신라의 놀라운 금 세공술은 금을 성씨로 삼을 정도로 중시했던 전통의 소산이다.

 그러나 고려 이후 금은 별로 채굴되지 않았다. 『고려사』 충렬왕 3년(1277) 4월조는 원나라 다루가치(達魯花赤)가 고려에서 금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채취케 했지만 겨우 2돈2푼을 얻었다고 전한다. 또 원나라 중서성(中書省)의 요구에 따라 홍주(洪州) 등지로 관원을 파견해 인부 1만1446명을 동원해 70일간 채취했지만 겨우 7량 9푼을 얻었을 뿐이다. 최영은 ‘황금을 보기를 흙같이 하라〔見金如土〕’는 부친의 가르침을 큰 띠〔紳〕에 써서 평생 차고 다녔다.

 조선 건국세력은 최영을 죽였지만 그의 청렴정신은 계승해 금을 채취하지 않았다. 세종 4년(1422) 중국과의 조공무역인 세공(歲貢)에도 우리나라는 금·은이 산출되지 않는다고 주장해 무역 항목에서 빠질 정도였다. 평안도 성천(成川)과 황해도 수안(遂安)에서 한때 채취하기도 했지만 정조 23년(1799) 금지시켰다. 세계 경제위기 속에 금이 홀로 독주하고 있다. 그야말로 금으로 사람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 지내던 흉노의 풍습이 세계를 뒤덮고 있는 듯하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