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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의 시시각각] 노숙인, 서울역 차원 문제 아니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1925년 건립된 옛 서울역 건물에서 어제부터 ‘카운트다운’이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2년간 213억원을 들인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문화역서울 284’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을 기념하는 개관 프로젝트다(‘284’는 옛 서울역사에 매겨진 사적 번호). 전시회에는 구 서울역사의 벽돌, 손잡이 장식, 샹들리에 등도 선을 보였다. 식민지의 아픔이 서린 건물을 번듯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지혜가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전시회장을 나와 광장에 들어서면 86년 후의 새로운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서울역의 일상적 풍경이 돼버린 노숙인들과의 조우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광장에 누워 있던 한 노숙인은 지나가는 사람마다 “아저씨”라고 소리쳐 불러 세웠다. 나를 포함한 행인들은 애써 모른 체해야 했다. 다른 노숙인이 갑자기 휘청거리며 광장에 쓰러졌다. 장수막걸리 빈 병이 함께 뒹굴었다. 근처에서는 대여섯 명이 소주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옛 역사 왼편의 새 서울역은 하루 이용객이 30만 명이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은 철도 이용객들의 민원을 받아들여 오는 22일부터 노숙인이 밤에 역사 안에서 잠자는 행위를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외부 업체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서울역 이용객의 75.2%가 이 조치에 찬성했다”고 코레일은 밝혔다. ‘반대한다’는 의견은 5.5%였다고 한다. 그러나 “갈 곳도 마련해주지 않고 내쫓느냐”는 반발도 만만치 않다. 광장 한편에서는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철회, 공공역사 홈리스 지원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11일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공공역사 공간 일부를 노숙인(홈리스)을 위해 돌리라고 요구한다.

 “노숙인들이 테러집단입니까”라는 공동대책위(유인물)의 주장에도 이유는 있다. 몇몇 사건을 기화로 모든 노숙인을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17세의 소녀 노숙인이 54세의 여성 KTX 승객을 아무 이유 없이 흉기로 찌른 일(2월 28일), 술값 200원을 달라던 노숙인이 행인의 공격에 중상을 입은 일(6월 15일) 등 노숙인이 가해·피해자인 사건을 대하는 입장에서는 불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코레일은 최근 KTX가 멈추거나 고장 날 때마다 호된 비판을 받아왔다. 역사 관리를 잘못해 승객 안전이 위협받는다면 이것 역시 일차적으로 코레일 책임이다. 더구나 노숙인이 밤중에 역사 내에서 자는 것만 막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코레일의 결정에 찬성한다. 사실 서울역이 처음도 아니다. 부산역은 역사 3층에 상주하던 노숙인 210여 명을 2008년 10월부터 약 5개월에 걸쳐 다른 곳으로 유도했다. 대안을 마련해주고 한겨울 퇴거를 피하는 등 세심한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울역도 이번 조치를 원칙대로 시행하되 방법은 되도록 유연했으면 좋겠다.

 서울역 노숙인 문제는 코레일이 뒤집어쓸 일이 아니다. 정부·지자체 책임이 더 크다. 서울시내 노숙인 쉼터 39곳의 정원은 3044명이다. 서울시 최용순 자활지원과장에 따르면 현재 쉼터에는 823명분의 잠자리가 비어 있다. 많은 노숙인이 금주(禁酒)가 원칙인 쉼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노숙인도 집·일자리가 없어 정말 어려운 사람, 치료·상담이 필요한 사람, 단속이 필요한 사람이 제각각 있다는 말이다. 제각각 상황에 맞게 해야지 무조건적 온정주의가 만능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행히 지난 4월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해 내년 6월부터 시행된다. 국가·지자체의 역할과 함께 노숙인에게는 복지서비스를 받을 권리와 ‘스스로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성실히 노력’할 의무를 함께 부여했다. 체계적인 지원이 가능해진 만큼 우리의 노숙인 정책도 궤도에 오를 것으로 기대한다. 노숙인을 코레일이나 일개 역 차원의 문제로 보아선 안 된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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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